책 읽는 우리동네⑤ <유원>, <알로하, 나의 엄마들>

▲<유원>, 백온유, 창비, 2020
▲<알로하 나의 여자들>, 이금이, 창비, 2020

 

“엄마, 이 책 완전 마음에 들어! 이 작가가 쓴 다른 책 또 없어?” 중학교 2학년이던 딸은 <유원>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 이 작가 팬 할래’라고 외쳤다. 특히 작가의 문장 스타일이 매력적이라고 했던가. 얼마 후 백온유 작가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들에게 책 권하는 것이 직업이지만 딸에게 추천한 책이 이런 반응으로 돌아오니 그 어느 때보다 기뻤다.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유원>(백온유, 창비, 2020)은 어렸을 때 비극적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여고생 유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다치고 가정이 무너진다면, 게다가 인터넷에는 당시 기사와 온갖 댓글이 박제되어 떠돈다면, 그는 과연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살아가는 내내 씨름해야 할 상처와 아픔은 과연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을까.

작가는 모순투성이인 관계 속에서 ‘진짜 나의 삶’을 찾아가는 유원의 심리를 예리한 관찰과 흡입력 있는 묘사로 펼쳐 보인다. 무겁게 짓누르던 죄책감과 연민, 자기혐오, 부채감과 같은 감정이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용기’,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라는 생각’, ‘나를 더 좋아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바뀌어 가기까지, 숨죽이며 유원의 성장을 지켜보도록 말이다.

트라우마로 인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힘들었던 유원은 마침내 친구 수현의 도움으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게 된다. “이렇게 가벼워져 본 적은 처음이었다” 고백하며 날아오르는 순간, 독자는 함께 환호하다 그제야 깨달을지 모른다. 열여덟 유원의 감정에 깊이 몰입한 나머지, 책을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을.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알로하, 나의 엄마들>(이금이, 창비, 2020)에도 열여덟 살 나이에 자기 손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경상도 사투리의 대화가 낯선 듯하다가도 이내 빨려 들어가는 이 책은 작가가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한미동포재단, 2002) 속의 사진 한 장을 계기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문학적 재미는 물론 의미까지 더한 소설이다.

120년 전, 남편 될 사람의 사진 한 장만 들고 조선에서 하와이로 삶의 터전을 옮긴 ‘사진신부’ 버들, 홍주, 송화. 여자이기 때문에, 양반이어서 또는 양반이 아니어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그들은 낯선 땅에서 자신의 삶을 찾겠다는 꿈을 안고 떠난다. 상상과 다른 현실을 맞닥뜨리면서 높고 험한 인생의 파도는 끝없이 밀려오고, 다른 가치관과 사연을 가진 세 친구는 크고 작은 선택 앞에서 싸우고 흩어졌다가도 이내 손을 내밀며 서로를 돌보는데... 남은 자들, 약한 자들, 외로운 자들의 연대와 우정은 각자의 색깔로 빛나면서 하나로 이어진 무지개를 떠올리게 한다. 갈등을 겪으면서 서로 다독이며 오랜 세월 관계를 이어가는 지금 나의 친구들과 이웃에게도 존재할지 모르는.

“바다가 있는 한 없어지지 않을 파도처럼, 살아 있는 한 인생의 파도 역시 끊임없이 밀어닥칠 것이다…. 함께 조선을 떠나온 자신들은 아프게, 기쁘게, 뜨겁게 파도를 넘어서며 살아갈 것이다.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마다 무지개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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