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⓸ <연중무휴의 사랑>

아침에 책방에서 남편이랑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면서 ‘누가누가 더 힘들었나 대회’를 했다. 오늘은 ‘집 구하기’가 대결 종목이었다. 각자 해외 생활을 이야기하며, 외국인으로 집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샌드위치를 우걱우걱 먹으며 기를 세웠다.

인종차별주의자 집주인을 종종 만나던 때였다. 나는 “백팩에는 늘 정장 재킷을 넣고 다녔고, 집주인 인터뷰가 생기면 학교 화장실에서 구겨진 재킷에 물을 묻혀 탈탈 털고 뛰어갔다”고 남편에게 의기양양했다. 남편은 “집주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세입자가 될 건지 보여주기 위해서, 자신의 연구 실험 물질을 가져가서 보여줬다”고 했다.

나는 질세라, 더운 여름에도 재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서 집주인 면접을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얘기했고, 남편은 독일 집주인에게 자신의 연구 이야기를 영어로 이해시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얘기했다. 그러다 서로 마주 보고 샌드위치를 잔뜩 문 입으로 웃었다. 그래, 지금 웃을 수 있다면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입을 크게 벌리고 먹어야 하는 샌드위치를 들고 얘기 나눌 수 있는 일이라면, 그건 힘든 일은 아닌 것이다.

어제 책방 옆 돈가스 가게에서 냉메밀을 시켰다. 냉메밀을 먹으면서 여성학자가 쓴 칼럼들을 읽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읽다가 먹고 있던 냉메밀을 절반 이상을 남기고 책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탑 사이에서 임지은 작가의 <연중무휴의 사랑>을 꺼냈다.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 몇 가지를 꺼내본다.

작가는 한국에서 남자가 없는 집에서 여자 세 명이서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임을 이야기한다. 슈퍼마켓 사장님이 아빠 없이 사는 거냐고 묻고 피자집 배달원이 원치 않은 연락을 해온다. 하자가 많은 빌라를 지은 시공사는 남자가 없는 이 집을 소홀히 대한다.

작가는 90년생이다. 2000년대를 살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왜 이리 몇십 년 전의 일 같을까. 왜 이리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까. 작가는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다. 자신의 엄마부터 설득시켜야 하는 그 모든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그리고 단정한 문체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순간, 공격을 당해야 할까. 80~90년 전, 20세기에는 대중문화가 출현하고 인권 신장이 일어났다.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20세기부터 달려온 인권 신장과 여성의 권리에 왜 우리는 멈춤 신호를 거는 걸까. 이것은 힘든 일이다.

오늘 하루도 좋은 일, 기쁜 일, 서러운 일, 안쓰러운 일, 쓰린 일, 답답한 일, 미치고 팔짝 뛸 일이 누군가에게 일어난다. 지나고 나면 모두 웃을 수 있는 일이 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큰 상처로만 남겨지진 않았으면… 큰 상처만은 아니었으면…. 인종차별주의자를 만나서 입에 담기도 힘든 욕을 듣던 날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길에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뒤통수를 세차게 얻어맞은 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바닥에 누워 울기만 했다. 그래도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다시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던 건, 나에게 끊임없이 문자와 전화로 응원하던 친구들의 힘이었다.

<연중무휴의 사랑>의 임지은 작가도 댓글로 엄청난 공격을 받던 때에 그녀를 집에서 꺼낸 것도 응원하는 이들이었다. 시간이 지나… 샌드위치 우걱우걱 먹으면서 잠시 열을 낼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이야기로 남길. 샌드위치 잔뜩 물고 크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큰 바람까지도 욕심내본다. 오늘도 모두 파이팅! 샌드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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