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조헌 선생의 애국애족의 의기와 충혼, 살신성인정신(임란 4대 의병장), 교육자로서의 문학정신을 받들어 기리기 위해 제정된 중봉조헌문학상의 제15회 수상자가 발표됐다.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는 지난달 15일 최종심사를 통해 대상에 박수봉의 <순의비를 읽다>를, 우수상에 임송자의 <풍란의 발>, 황진숙의 <호위무사>를 선정했다. 심사에는 인천재능대학교 홍성식 교수, 청운대학교 교양대학 이진영 교수, 행신고등학교 이시익 국어 교사 등이 참여했다. 수상작과 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주>

 

[대상]

박수봉

                                                                                  

순의비를 읽다

                          

돌이 찢어진 비문을 꽉 물고 있다

입술을 다문 침묵을 쪼아

빗돌의 늑골에 문신을 새긴 사람은

붓을 챙겨 떠나버리고

깨진 돌만 남아서 그때를 증언한다

돌은 침묵을 가장하고 있지만 돌에는

임진의 여름 풀꽃들이

폭풍우에 쓰러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스며있다

비문의 진술을 따라가 보면

북채를 쥔 사내 따라 삽을 놓고

기꺼이 졸(卒)이 된 사람들

탕, 타앙, 터지는 화구(火口)를 몸으로 막아

무명천에 펄럭이는 義를 몸뚱이에 감았다

돌의 찢어진 흉곽에서 진물처럼

마지막 비명이 묻어 나온다

지은 죄가 두려워 빽빽한 돌의 진술을

찢어버리고 황급히 꼬리를 감춘

섬나라 살쾡이들

아직도 속내를 해무에 감춘 채

호시탐탐 내륙을 훔쳐보고 있다

조각난 뼈를 맞추고 피부를 꿰맨

비(碑)의 깨진 이마에 순의(殉義)가 선명하다

군데군데 뜯겨나간 살점은

돌의 심장으로도 차마 발설할 수 없어

시멘트로 봉해버린 상실의 시간이다

 

<당선소감>

거대한 암벽을 타고 오르는 능소화 줄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수백 미터의 암벽을 덮으며 기어오르는 능소화에겐 두려움이란 없어 보였습니다. 암벽에서 품어내는 어마어마한 냉기와 폭염의 열기를 다 받아내며 한 땀 한 땀 오르는 지칠 줄 모르는 집념 앞에서 나는 알지 못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두리번거리지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오로지 오르기만 하는 거대한 오체투지, 깎아지른 벼랑에 써 가는 능소화의 육필을 나는 눈이 부셔 제대로 읽지 못하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다잡아 보곤 합니다.

수상 소식을 접하는 순간 한 노시인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석가헌 앞뜰에 연꽃을 심어놓고 바람을 가두어 여름을 출렁이던 시인의 웃음 띤 얼굴이 새삼 그리워집니다.‘繪事後素’를 강조하시던 선생님, 돌아가실 때까지 시를 놓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연못에 지금쯤 푸름이 범람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르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벼랑을 잡고 있는 가늘고 거친 줄기에 꽃 한 송이 피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한 박토에 시의 싹을 가꿀 수 있게 문학의 토양을 제공해 주시는 (사)중봉조헌선생선양회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고 격려히 주시는 오산 문인협회 문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여 부끄럽지 않은 작품으로 만나 뵙겠습니다.

*2018년 최충문학상 최우수상 수상

*시집 <편안한 잠> 2019년 상반기 한국예술위원회 우수 나눔 도서에 선정

 

[우수상-시 부문]

임송자

풍란의 발

--중봉 조헌선생의 동상 아래서

 

한 번 먹은 마음으로

돌에다 뿌리를 내리는 목숨이 있다

사람의 가슴으로 뻗어오는 천년의 뿌리

거친 바람 천길 벼랑도 두렵지 않다

바람의 상소를 움켜 쥔 한 사내가

허공에 발을 내딛고 있다

높고 순결한 저 보폭의 음계는

어느 가파름으로 깃드는 붉은 목청일까

상한 시절을 쳐내는가

우국충정 뜨거운 가슴 부셔내며 퉁퉁 부르튼 발 아래로

푸른 촉이 돋는다

 

지부상소持斧上疏

닷새장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북변동 가운데 서서

철물전 도끼를 무심히 들여다보시겠지요

오늘은 *낙조청강落照淸江에 내리는 빗소리 함께 데리고

그냥 시인으로 오시면 포장집 술잔에서도 살구꽃이 필테지요

그런 날에는 봄볕에 그을린 당신의 그림자 곁에서

꽃씨처럼 포슬포슬 꿈을 꾸는 일도 괜찮겠다

장터의 소란이 사그라들면

버들가지에 간고등어 한 손씩 꿰어들고 들판의 실핏줄같은 논두렁길을 따라

감정리로 스며들어도 좋을 저녁

 

비는 그치고 어둠이 어둠을 덧칠해나가는 시간

새로 돋는 별들이 차례로 다녀가고

당신은 풍란 꽃 희디흰 함성으로 오시어

길눈이 어두운 계절의 한복판을

들었다 놨다 

 

*낙조청강----조헌선생 시조의 한 구절

 

<당선소감>

늙었으나 수형이 아름다운 뒤안 감나무 위에서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었습니다. 자주 감자가 막 꽃대를 밀어 올리는 오월 끝자락 푸른 소식을 접했습니다. 오래 아주 오래 시를 외면하고 살았으며 그럴수록 정신은 가난하고 아팠습니다. 집안 곳곳에 자리한 석부작을 보다가 문득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여문 것을 피하여 살아온 제가 한없이 부끄러운 풍란의 계절입니다. 늘 갈증이던 문학의 갈피를 접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의 글 올립니다. 초록을 따라 가 봐야겠습니다.

 

[우수상-수필 부문]

 

황진숙

호위무사

                                                        

낮달이 이울자 그림자가 물러갔다. 호위하던 무사들이 하나둘 처소에 든다. 내걸린 문패도 알전구도 없는 칸막이 거처에 발걸음을 부린다. 길 위를 점령한 된바람이 따라 들어와 무사들을 사열한다.

양털에 뒤덮인 어그 부츠가 회상에 젖어 있다. 폭설이 내린 지난겨울, 눈 속을 뒹굴며 만끽했던 환희의 순간을 되새김질 중이다. 동면에 들었던 샌들이 슬며시 눈을 뜬다. 서늘한 기운이 달려들자 소스라치게 놀란다. 아직은 나설 때가 아니라는 듯 몸을 웅크린다.

하루를 견뎌온 흔적들은 어둠을 타고 밀려온다. 접힌 시간으로 뒤축이 무너진 운동화는 뻣뻣한 힘을 놓아버린 지 오래다. 끈까지 풀어 헤친 채 맥을 못 춘다. 쉰내 나도록 길을 누빈 구두는 연신 잠꼬대다. 돌부리에 걷어차인 비애로 꿈속을 헤매나 보다. 발가락의 자유를 부르짖던 슬리퍼는 정작 여기저기 끌려다니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거처에 들지도 못하고 현관에서 한뎃잠을 잔다.

어차피 생은 불안정한 거라고 하이힐이 가늘고 긴 실루엣을 도도하게 드러낸다. 발가락이면 어떻고 발꿈치면 어떠냐며 내딛기만 하면 그만이란다. 숯 무더기에 묵은내를 내주던 등산화가 조무래기들의 몸짓을 굽어본다. 주어진 노역을 다 한 그는, 이곳에서 터줏대감이다. 작정하고 가풀막과 너덜겅을 오르내렸기에 누구보다 세상 물정에 밝다. 유행에 뒤처지면 구석으로 밀려나는 것은 한순간이다. 멀쩡한 육신으로 방치되느니 닳고 닳은 밑창으로 숫제 바닥을 쓸고 가더라도 신발로 남고 싶다. 등 떠밀리고 싶지 않아 마음 졸이지만 뭇사람들의 인심은 야박하기 그지없다. 쓰레기통에 폐기처분 되거나 운이 좋으면 헌 옷 수거함에 사장되어 재탄생될 날을 기다린다.

바닥에 붙어산다고 남루를 모를까. 지난날, 불분명한 행로로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허랑방탕 갈지자로 헤매기도 했다. 폭염 속 아스팔트 열기에 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이불 삼아 두멧길을 건너는 날에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뒹굴기 일쑤였다. 수없이 꺾여야만 나갈 수 있는 시시포스의 형벌 앞에 방패막이가 되어 앞코가 찌그러지는 일쯤은 축에도 끼지 못한다. 밑창에 돌이 끼이고 침이 박히는 상처쯤은 애써 모른 척 덮어두어야 했다.

상표를 떼지 않은 말끔한 새 신발은 알지 못한다. 끌고 온 무게에 겨워 긴장감을 놓아버리면 뒤집혀 널브러지거나 짓밟힌다는 것을, 제 살 닳는 것이 아까워 엎어져 시위해 본들 내일이면 툭툭 치는 발길질에 다시금 길을 나서야 하는 것을.

내게도 반평생을 동행한 무사가 있다. 세상의 벼랑에 선 스무 살 언저리에 그를 만났다. 가족이라곤 삽화 한 장이 전부였고 해진 종잇장에 의지하기엔 현실은 암담했다. 사고의 가해자가 되어 피해자가 요구하는 금액을 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뛰어든 상대방보다 배달을 위해 운전 중이던 내가 과실이 크다고 했다. 경찰서의 의자마저 죄인 심문하듯 딱딱하게 굴었다. 경황이 없어 벗겨진 신발을 찾지 못한 내 발을 떨떠름하게 쳐다만 봤다. 컴퓨터의 자판은 볼 것도 없다며 화면 가득 죄목을 채워 나갔다.

숨이 막혔다. 생의 바닥들이 모여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지만, 술로 하루를 사는 아버지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붉어진 눈시울에 그의 모습이 들어왔다. 작은 소읍이다 보니 사고 현장에서 나를 알아본 누군가가 연락했나 보다. 그는 맨발로 떨고 있는 나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서 신겨줬다. 종일 그의 체온으로 데워졌을, 쿰쿰한 냄새와 습기로 가득 찬, 그의 운동화가 왜 이리 안온하게 느껴지던지.

지켜주겠다는 그 말 한마디에 따라나섰다. 자갈밭에 굴러도 끄떡없을 단단한 심지에 믿음이 갔다. 헐벗고 옴지락거리는 발을 폭신하게 감싸줄 것 같았다.

그러구러 그와 함께 지나온 세월, 고된 날이 많았다. 철철이 갈아 신을 신발이 많지 않았기에 그의 운동화는 늘 최전방에 섰다. 맏이로서 부모를 대신해 동생들을 끌고 가느라 비틀거리는 날이 많았다. 더해진 지아비의 무게를 얹고 생의 능선에서 사투를 벌였다. 보증의 덫에 걸려 나뒹굴기도 하고 신용불량이라는 복병을 만나 진창에서 철벅거리기도 했다. 물웅덩이를 피해 간다는 것이 헛디뎌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된 날은 병원에 몸을 부리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그럴 땐 그의 운동화도 실의에 젖어 되똥해 보였다.

힘줄이 한번 끊어진 발은 온전히 힘을 싣지 못한다. 통증으로 절뚝거리는 발에 호흡을 맞추느라 무게중심이 쏠린 신발은 쉬이 낡고 헤졌다. 작은 돌멩이에도 뒤축이 흔들렸던 그는, 스스로를 내팽개치고 싶은 날도 있었을 것이다. 배 까뒤집고 해볼 테면 해보라며 세상에 항거하고 싶었을 터이다.

허나 그는 무사다. 하루를 벗어놓는 시간에 한숨처럼 불거지는 속내마저 침묵으로 재운다. 식솔들을 지켜내야 할 소임으로 무너지고 주저앉은 시간을 추스른다. 날이 밝으면 남편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난다. 매복한 적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시야를 확보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신발 밑바닥에 찰거머리같이 붙어서 거세게 저항하는 껌딱지를 단칼에 제거한다. 밑창 틈새로 숨어든 돌멩이를 끄집어내고 허를 찌르겠다며 냅다 박힌 압정도 뽑아낸다. 여기저기 흙 부스러기를 흘리고 다니는 진흙 잔당을 제압한 후, 제집인 양 묻어 든 얼룩을 지워낸다. 무기를 벼리듯 운동화 끈을 조이고 결의를 다진다. 가장이라는 이름을 방패 삼아 황막한 세상을 내달린다.

오늘도 종일 따라다니며 호위했을 무사들을 본다. 원 없이 뛰고 싶은 러닝화, 더 높이 치솟으려는 킬 힐, 광을 앞세우는 구두 등 그네들의 호들갑을 뒤로 하고 고단한 삶을 꿰고 있는 그의 운동화를 들여다본다. 살아온 동선이 퇴적되어 살아낸 흔적으로 초라해질지언정 결코 멈추지 않을 발걸음이 듬직하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써 내려갈 생애에 영원히 동행할 무사가 있어 외롭지 않다. 가만히 내 발을 그의 신발 속으로 밀어 넣는다.

<당선소감>

수필과 동행한 지 이제 육 년째입니다.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면 습관처럼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주저앉히고 가라앉은 말들을 흔들어 깨우고 침묵에 든 속내를 꺼내 놓습니다. 사물들과 담소를 나누며 사연을 풀어 놓기도 합니다. 세상사의 무게로 영혼이 탈탈 털리고 생채기로 너덜거릴지라도 수필을 포기할 수 없는 건, 또 다른 나의 분신이기 때문입니다. 숱하게 무명의 시간을 보내겠지요. 수필과 등을 맞대고 치열한 고민과 갈등으로 버무려지는 궤적을 쌓기 위해, 내 안의 나를 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시는 분들 고맙습니다.

 

<심사평>

2021년 제15회 중봉조헌문학상에는 시 955편(194명), 수필 193편(97명)이 도착하였다. 모두 291명 문사(文士)들이 자그만치 1,148편의 작품을 정성껏 보내주었다. 작년인 2020년과 비교해보면, 참여인원은 약 50명, 작품 수로는 대략 220편 정도가 증가한 것이다. 중봉문학상이 전국적인 관심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이를 반증하듯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서 빠짐없이 작품을 보내주었다. 미국은 물론 연길시와 흑룡강성, 길림성 등 중국에서도 여러 작품이 도착했다. 이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할 때 걱정스런 여러 목소리를 이 같은 관심과 성원으로 잠재울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문학상의 제정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는 자평을 하게 되었다. 전국의 문사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렇다고 책임감의 무게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피할 수도 없다. 중봉문학상에 응모하는 작품들의 모양새가 해가 다르게 매력적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매력적인 작품들을 모두 소개하여 기쁨을 공유하지 못해 안타까울 따름이다. 중봉문학상의 틀을 확대할 필요성이 매우 심각하게 제기된다고 하겠다.

제15회 중봉조헌문학상 응모작품들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다양해졌다. 중봉 조헌 선생의 삶과 사상을 형상화한 것과 일반적인 작품들이 골고루 응모되었다. 중봉 선생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이전 작품들에서는 그와 의병의 삶을 의지와 희생의 관점에서 형상화한 것이 많았다면, 올해는 중봉과 의병, 당시의 상황을 현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었다.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만, 중봉에 대한 접근이 다각화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하겠다. 또한 일반적인 작품들의 수준도 상당했다. 이전에는 소재 중심의 습작들과 성긴 문학성을 노출하는 작품들이 경험의 차원에서 제출된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그 어떤 것도 그냥 넘기기 힘든 문제성을 지니고 있었다. 중봉조헌문학상이 진화하고 있는 현상이고 그의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시 4편과 수필 3편이다. 시에서는 최교민의 <사당에서 내리지 않고 버틴다>, 박수봉의 <순의비를 읽다>, 김종빈의 <목이 먹으로 갈려져>, 임송자의 <풍란의 발>이고, 수필에서는 김소희의 <자연의 물산을 소모하다>와 이정희의 <눈 오는 밤, 새 한 마리 때문에>, 황진숙의 <호위무사>이다. 모두 일정 이상의 수준과 새로움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해도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모두 의식의 단단함과 형식의 세밀함을 보여준 작품들이었다. 그만큼 심사에 어려움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숙고 끝에 최종 선정한 작품은 대상에는 박수봉의 시 <순의비를 읽다>이고, 우수상에는 황진숙의 수필 <호위무사>와 임송자의 시 <풍란의 발>이다.

박수봉의 <순의비를 읽다>는 금산 칠백의총 안에 있는 ‘중봉조선생일군순의비’를 소재로 하였다. ‘순의비각’이라는 이름 아래 찢긴 채 놓여 있는 비석의 역사, 즉 “깨진 돌만 남아서 그때를 증언”하는 것을 듣고 있다. 북채를 쥔 사내와 그를 따른 백성들 그리고 치열한 전쟁을 읽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는 항쟁의 뜨거운 역사만 증언하지는 않는다. 해무 속의 몸을 숨긴 어두운 세력들, 무엇보다 “돌의 심장”으로도 말할 수 없는 “상실의 시간”을 증언하고 있다. 이 시는 감정 분출이 일부 과한 측면도 있지만 크게 거슬리지 않고, 깨진 순의비각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소환하고 해석하는 참신한 상상력을 보여줘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황진숙의 수필인 <호위무사>는 인생의 굴곡을 여러 신발들을 통해 속도감 있게 들려주고 있다. 다소 뻔한 갖가지 사연들이 가진 기억과 자랑 속에서 새롭게 들린다. <규중칠우쟁론기>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체와 현실과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읽는 맛을 더하고 있다. 임송자 시 <풍란의 발>은 ‘중봉 조헌선생의 동상 아래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김포시 북변로 거리에 서 있는 중봉의 동상을 올려다보며 과거의 그를 현재로 불러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입상작으로 선정한 시 두 편이 모두 중봉을 매개하는 유적과 유물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동상이라는 상징물이 갖는 권위와 목적성과는 대비되는 지점의 상상력을 함께 드러내 절묘한 균형을 이룬 작품이라 하겠다.

이번 제15회 ‘중봉조헌문학상’도 열성적인 참여로 풍성하게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내년의 ‘중봉조헌문학상’은 수많은 관심과 성원에 화답할 수 있도록 좀 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의 문학적 역량이 더욱 발전하기를 바란다. 문운과 함께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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