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무릇 생명을 가진 존재는 시간 속 에 살아간다. 생명은 유한한 것이다. 일정한 시간을 지나면 생명체는 생명을 반납하고 죽는다. 사는 동안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다른 것을 먹는다. 먹는 과정은 썩힘을 동반한다.

이것을 산화라고 부른다. 쇠붙이에 붙은 녹마저도 산화작용을 한다. 거꾸로, 산소만 차단해 주면 먹는 작용은 멈추고 생명 현상은 정지된다. 
먹는 일뿐 아니라 죽는 일도 산화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죽고 썩는 과정은 산소를 끌어당겨 분해되는 과정이다.

만약에 썩을 정도의 산소를 공급하는 대신, 적당량의 산소를 소비하고 순환시키면 생명 작용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 생물들의 생태이다. 그런데 생명 작용은 사물 마다 조건을 달리한다. 그 조건이 잘 맞추어진 생물들은 목숨을 최대로 부지하는데, 이것을 수명이라고 한다. 

수명은 며칠에서 몇 년까지로 다양하다. 하루살이 동물이 있는가 하면, 수백 년 된 나무도 있다. 1년초는 한 해를 사는 풀이고, 다년초는 여러 해를 사는 풀이다. 사람은 100년 내외를 살고, 개는 10여 년을 산다.

인간에게 영양을 제공하는 곡식과 채소는 겨우 몇 달을 살면서 우리에게 자신들의 잎이나 뿌리 또는 열매를 통째로 먹이로 제공하고 목숨을 끝낸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많은 생물이 저마다의 생애주기를 말없이 돌면서 생명을 이어간다.

식물들은 자기 삶을 살면서 영양을 섭취하고, 그 일부를 어떻게든 축적해서 씨앗으로 남기고 죽는다. 그런뒤 씨앗에 보존된 생명은 다시 영양분을 섭취해서 스스로 싹을 틔워 앞의 생명을 끈질기게 이어간다. 동물들은 이런 씨앗을 살아 있는 몸에서 후대를 만들면서 스스로는 죽는다. 이 끈질긴 활동은 연어의 생태에서 보듯이 눈물겹도록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조물주는 이런 세대 교번을 위해 식물에는 보이지 않게, 동물에게는 열정적인 성욕을 제공 하고 있다. 
생물의 세대교번에도 숨은 법칙이 있다. 동식물이 일정 기간을 자라면 번식에 나선다. 몸집을 일정하게 불려야 생식이 이루어진다. 몸집은 영양기관이라고 하고 생식기는 생식기관이라고 부른다.

사람은 사춘기를 중심으로 갑자기 몸과 마음이 동시에 어른이 되는 특이한 체험을 한다.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서 세대교번의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대체로 식물은 영양기관이 자라면 자연스레 생식기관으로 그 힘이 전환되며, 조건이 성숙하지 않으면 영양기관의 성장만 계속되기도 한다.

이것을 웃자람이라고 부르며, 과수의 경우에는 인위적인 전정 등을 통해 그 전환을 유도한다. 반대로, 악 조건이 조성되면 갑자기 생식기관의 성장이 앞당겨지는 때도 있다. 초여름의 이상 한파에 갑자기 가을 꽃이 피는 경우가 그러하다. 동식물을 가까이 두고 애호하는 것은 인간에게 오래된 역사이다.

인간은 애완동물과 관상식물을 조작하면서 자기의 욕심을 과도하게 투영시켜왔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 들을 싫어한다) 단순히 자연스러운 번식도 하지만, 더 나은 먹거리와 볼거리를 위해 온갖 모양의 동물들 (애완견과 같은)과 식물들을 조작하 였다. 식물을 예로 들자면, 각종 생명현상을 연구하여 생명을 유지, 보존시켰다.

포도를 많이 먹으려고 단 번에 수많은 그루의 가지들을 꺾꽂이하고, 큼지막한 감을 먹으려고 고욤나무 대목에다가 왕 감나무 순을 접붙이기하고, 아름다운 장미를 보기 위해 찔레나무에다가 장미 눈을 갖다 붙이는 눈접을 한다. 게다가 어떤 관상목은 생가지를 땅속에 끌어다 넣어 휘묻이로 개체를 불려 나간다. 큼지막한 이파리가 보기 좋다고 고무나무 가지 중간을 돌려 공중 취묘를 하기도 한다. 

바람직하든 않든 간에 이런 작업은 식물의 생명 보존 현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것은 식물의 모습이 대동소이한 것 같아도 다양한 생명현상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기제라는 사실로서, 음미할 가치가 있다.

삼라만상의 생명 작업은 이렇게 우리가 보지 않는 가운데서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고, 또 계속될 것이다. 이런 엄존하는 사태를 우리의 눈을 돌려 더 많이 관찰하면 지구의 생명 작업의 고동 소리를 더 자세히 들어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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