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우리동네②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안병하 평전>

 

군대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만든 조직이라 살인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한다. 전쟁 중 군인들의 살인은 공훈이 되기도 한다. 군대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합법적인 조직이다. 합법 살인이라는 모순이 통용되는 군대에선 불합리하고 불의한 명령마저 정당화되기도 한다. 군대에선 “까라면 까”야 한다는 상투어로 ‘생각’한다. 군대에선 불합리한 명령이라도 실행해야 하고, 불의한 명령이라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대비해 만든 조직이라 평시에도 “까라면 까”의 문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군대의 총구는 국경 밖을 향해야 하고, 살인 허가는 적국의 무장 군인들에게 제한되어야 한다. 군인은 국경 내 시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되었고, 전시라도 아무에게나 총질하는 건 금지된다. 전쟁 역시 그 목표는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전쟁의 역설이요, 이렇게나마 군대는 자기모순을 극복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대의 중령이었던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은 유럽 내 유대인들을 제거하는 ‘최종해결책(Endlösung der Judenfrage)’의 수송책임을 맡았다. ‘최종해결책’이란 유럽에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나치의 프로젝트였다. 아이히만은 최종해결책을 결행하기 위한 반제 회의(Wanseekonferenz)에 참여했었고, ‘최종해결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유대인 이송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지휘관이었다.

아이히만은 유능했고, 근면했다.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모았고,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독가스를 마시며 죽어 비누 재료가 되었다. “까라면 까”라는 나치 군대의 명령을 충실히 따랐던 아이히만에 의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이송되었다. 아이히만의 기차를 탄 사람들은 어린이를 포함해 무장하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독일의 거주민들이기도 했다. 그는 “까라면 까”라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었으나, 무장하지 않은 심지어 어린이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안병하(1928-1988)는 5·18광주민주화항쟁 당시 전라남도 경찰국장이었다. 안병하가 경찰국장을 맡고 있을 당시는 박정희 서거 이후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끓어오르던 때였다. 전두환 신군부는 민심을 거슬러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내리고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려 했다. 그러나 계엄령은 명분이 없었고 신군부는 정통성이 없었기에 학생들과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에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해 잔인하게 진압하려 했으나, 광주시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급기야 신군부는 안병하 국장에게 시민들의 시위를 강하게 제압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는 발포를 종용한 것이다. 아무리 불의한 명령이라도 “까라면 까”야 한다는 게 쿠데타 군인들의 ‘생각’이었다. 안병하는 그러나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까라면 까”라는 상투어에 불복종했다. 경찰이 관리하던 총기를 군부대로 소산해 경찰이 시민에게 발포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애버렸다. 불복종의 대가로 안병하 국장은 5·18 직후 고문을 당했고 그 후유증을 앓다가 1988년 죽었다.

“까라면 까”는 군대 내 특수한 문화를 반영하는 상투어다. 상투어로밖에 생각할 줄 모르고 말하지 못할 때, 인간은 아이히만처럼 악하다. 아이히만은 “까라면 까”라는 상투어에 충실하여 수백만 유대인을 죽이는 데 기여했다. 반면에 안병하는 “까라면 까”라는 상투어에 자신의 생각을 가두지 않고 “경찰은 시민을 향하여 총을 겨눌 수 없다”는 생각과 말에 자신을 복무시킴으로 시민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사람의 생각은 말로 구성된다. 새로운 말로 생각할 줄 알아야 상투어에 갇히지 않는다. 상투어에 갇혀 생각할 줄 모른다면, 그래서 자신의 말을 할 줄 모른다면, 심각한 악에 빠져, 심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상투어가 아닌 새로운 말을 찾는 건, 사람으로 살고 사람을 살리고자 함이다. 상투어에 갇히지 않으려 떠듬떠듬 책 속의 ‘말’로 ‘생각’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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