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사설·기고 기고
‘4는 事’다
임종광
김포우리병원
기획관리실장

최근 장기화되어가는 코로나19로 정신과 육체가 힘든 가운데 장미, 아카시아, 찔레꽃이 피고 본격적인 농촌의 농번기철인 싱그러운 5월을 맞는다. 무거운 머리도 정리할 겸 나선 계양천 산책로변을 걸으며 문득 떠오르는 게 숫자들이다.

아마도 오늘을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번호(番號)의 사회인 듯하다.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차량번호, 은행계좌번호, 주소지지번, 학번, 아파트 현관번호, 인터넷 비밀번호, 출입문번호, 금고번호, 옷장번호, 남자는 군번 등등. 이밖에도 허다한 번호를 지니고 함께 살아간다.

번호가 나를 존재하는 상징성으로 나를 보호하고 다양한 일을 해결하는 과정의 도구로 쓰인다. 한때는 남들보다 이색적이고 차별화된 전화번호, 좋은 차량번호를 선택해서 선호하는 경향도 꽤나 있었다. 이사집은 2424, 부동산은 4989, 민원실 8272, 차량은 3333 등등

그러나 예전에 비해 요즘은 특별히 눈에 띄는 이색번호를 선호하였던 전화번호나 차량번호 신드롬도 많이 시들해진 듯하고 최근에는 주어진 대로 쓰는 데 불편과 불만을 갖는 이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전화나 차량번호에 좋은 번호란 것을 찾는 관념 자체가 사실은 유치하다. 순번에 의해서나 전산망에 의해서 주어진 번호가 나의 번호가 되어 이용하다 보면 그 번호에 애착이 가기 마련 아닌가.그렇지만 아직도 ‘4’자나 ‘四’자는 죽을 사(死)와 같다하여 무척 기피한다.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에는 4층은 F라 표기하든지, 아예 없이 3층에서 5층으로 건너뛰는 데가 많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이웃나라 중국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중국 광동성(廣東省)에서는 차량 번호판에 4자를 없앨 작정으로 번호판 생산 컴퓨터 데이터 뱅크에서 4자를 영구 삭제했다고 한다. 중국 발음으로도 넉 사(四)자가 ‘쓰’라고 하여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똑같은 모양이다. 이에 논란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의 일반시민들은 “인민의 마음을 헤아린 조치”라고 좋아하는 반면에 지식층에서는 “미신을 부추기는 잘못된 처사”라며 반대한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의 차량 번호판의 4자에 대한 비호감은 미신 관념으로 어지간한 것 같다. 반면에 8자는 부를 상징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 해서 좋아하는 번호 중 하나로 꼽힌다.

2008년 8월8일 8시 8분에 2008년 북경 올림픽 개막식이 이날 이 시간에 열린 걸 봐도 이들이 얼마나 8자를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마을의 명칭인 사거리(四巨里)가 ‘死去里’같다 하여 이름을 바꾼 적이 있는 전례의 경우 같으면 또 모르겠다. 숫자는 아니지만 지명이 바뀌지 않은 사례가 있다.

30년 전인 90년대 초. 김포시청 앞 사우동 풍년마을 공영개발사업이 완료되고 마을명과 지번이 부여 받을 때다. 48번 국도를 중심으로 논바닥이었던 이곳에 650,000㎡(20만평) 규모로 약 2만여 명이 새로 전입하는 큰 단지가 조성된 것이다.

김포가 8만여 명의 군(郡)시절에서 풍년마을 택지개발 성공으로 시(市)승격 요건인 인구 10만 명을 돌파하면서 366년간의 군(郡)시대를 종지부 찍고 시(市)로 승격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시청 앞 풍년마을은 사우동과 북변동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당시 새로 전입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마을명 변경 민원이 강하게 대두된 적이 있다.

바로 ‘북변동(北邊洞)’ 때문이다. 외지로부터 새로 이사 온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마을 이름에 ‘변’자가 있어 싫고 혐오감을 느끼고 급기야는 아파트값에 영향을 미칠 거라며 변경을 강력 고집했고 집단민원 성격을 띠었다. 지금이야 지방자치제가 시행 중이어서 당연히 지방 위임사무로 있지만 그 당시에는 중앙집권 관선시대로서 마을명 개정의 승인권은 내무부장관(현 행정자치부장관)의 권한이었다.

반상회, 주민대표 간담회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고유 마을 지명이며 여론수렴 설문결과도 ‘70% 이상의 주민들이 마을명 변경에 반대한다’는 요지로 이에 대한 설득과 이해를 구하려 해도 반대 주민들의 반응은 이해하려 하지 않고 요지부동이었다.

고심 끝에 경기도를 통해 중앙부처까지 간 마을명 정정 요구 민원은 전국의 안좋은 선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이해될 것, 지역 정서의 양분이라는 등 내용으로 민원은 끝내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 민원은 자연스럽게 묻혀졌다.

반면에 지명이 바뀐 사례도 있다. 정부에서는 2005년도에 분당신도시에 이어 양촌면(陽村面)일원에 16,500,000㎡(498만평) 규모로 마지막 5기 신도시를 전격 발표했다. 신도시 이름은 ‘김포 양촌 신도시’다. 농촌 지역인 이곳에 햇빛이 쨍쨍 비추듯 양촌에 새로운 태양이 떴다.

그러나 당시 시청 홈페이지가 몹시 뜨거웠다. 김포에 신도시가 발표되어 훗날 이상적인 신도시가 건설될 것이라는 희망적이고 비전적인 여론이 아니라 신도시 이름에서다. 양촌(陽村)의 ‘촌’자가 촌스럽다는 민원이다.

4백여 년 전부터 양촌이란 지명을 오늘까지 이어져 살아온 원주민들은 어이가 없어들 했지만 새로 전입 할 예비시민들은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급기야 신도시 이름 바꾸기 작업이 착수되었고 여론수렴 절차 등을 거쳐 ‘김포한강신도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이렇듯 지명이든 숫자든 한자표기든 간에 쓰기 좋고 부르기 편하고 이러한 것에 익숙해지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할 듯하다. 이런 면에서 4(四)자를 기피하는 공연한 관념은 오늘날 문명화, 뉴미디어 정보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

일사(事)자로 여기면 된다. 일이 없는 사람은 불행하고 일이 많은 사람은 행복하다. 그래서 ‘사’는 곧 ‘事’인 것이다.

임종광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임종광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