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숙 학운초등학교 교장

양촌마을 어귀 커다란 느티나무는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였다. 그늘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로 새로운 소식들이 전해졌다. 그날도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소식들이 흉흉했다.

   “아이고, 얼마 전에 나랏님이 독살당하셨대요.”

“으쩌까. 나라를 강제로 빼앗더니, 나랏님꺼정 독살했어. 썩을 놈들.”

 “그 일로 삼월 초하룻날 경성에서 각계각층 대표 33명이 모였는데, 손병희 선생이 대표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대요. 또 탑골공원에 모여 있던 수많은 학생과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는데, 일본헌병이 총칼로 수천 명을 마구 죽였대요.”

 “나쁜 놈들! 참, 그 소식 들었씨꺄? 훈장댁 큰아드님도 앞장서서 만세를 불러서 감시 대상자랼다.”

마늘밭에 가던 강화 댁이 그 소리를 듣고, 가슴을 두드리며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때 어깨에 장총을 멘 일본헌병이 읍내 쪽에서 급하게 오는 것이 보였다. 강화 댁은 서당으로 뛰어갔다.

“훈장니임, 큰일 났씨여. 일본헌병이요오, 충서 도련님 잡으러 오고 있씨다.”

강화댁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본 헌병들이 누산 서당 앞마당으로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오?”

훈장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조센징 박충서, 만세 주동자다. 샅샅이 뒤져라.”

헌병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하들이 훈장 집 문들을 벌컥벌컥 열어젖혔다.

  “나까무라 대장님, 아무데도 없습니다. 벌써 튀었나봅니다.”

“훈장이노, 박충서 빨리 주재소로 데려와라. 알겠나.”

헌병대장은 개머리판으로 서당마루를 쿵쿵 두들기며 큰 소리로 협박하고 돌아갔다. 훈장은 툇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으음. 큰애가 만세를 불렀구나. 우리의 목소리를 냈구나!’

훈장은 수염을 쓸어내렸다.

기미 독립선언식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독립을 염원했다. 두 차례에 걸쳐 경성 만세운동에 앞장선 충서는 배일 불온학생으로 낙인이 찍혔다.

봄비가 여러 날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바람까지 윙윙거리며 세차게 불었다.

  “우리 충서에게 아무 탈이 없어야 할 텐데…….”

훈장 내외는 큰아들 걱정에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니.”

밖에서 나지막한 소리가 들렸다.

“에구머니나, 우리 충서인가 봐요. 붙잡히면 어쩌려고 내려 왔노. 어쩌려고.”

충서 어머니는 재빨리 뒷문을 열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살폈다. 질기게 감시하던 일본헌병들은 비바람을 피하려는지 보이지 않았다.

“감시가 심한데 어찌 왔느냐. 잡히면 어쩌려고?”

훈장 내외는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장손인데 제사는 지내러 와야죠. 그리고…….”

충서는 생각에 잠겼다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마을도 만세를 부를 겁니다. 악랄한 일본 놈들을 쫓아내야죠.”

훈장은 말없이 충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다락 끝자락에 있는 밀실에서 지내게 하였다. 충서는 그곳에서 양촌마을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날이 밝자, 훈장네는 제사준비로 분주했다. 느티나무 근처에는 일본 밀정이 서성이고 있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또 일본 헌병대장이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부하들은 쿵쾅거리며 집 안 곳곳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충서가 있는 다락도 구석구석 장총으로 밀어보고 또 두들겨졌다. 충서는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대장, 박충서 없스무니다.”

“담장을 포위해라. 제삿날이니 꼭 나타날 것이다. 놓치면 가만두지 않겠다.”

헌병대장은 큰 소리로 협박하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종친 어른들과 일가친척들은 다른 때보다 일찍 훈장네 집에 왔다. 일본헌병들은 눈알을 부라리며 온몸을 수색했다. 종친과 친지 몇 명은 대청마루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로 의심을 피했다. 그리고 일부는 슬그머니 충서가 있는 다락 밀실로 갔다.

 “경성에서 큰일이 벌어졌다고 하던데 어찌 된 것이냐? 소문이 사실이더냐?”

“그럼요. 그 일로 분개한 수천의 백성들이 나라를 찾고자 경성으로 올라왔어요. 저도 그들과 함께 독립선언식에 동참했고, 종로 거리를 앞장서서 다니며 만세를 불렀죠. 그래서 쫓기고 있고요.”

충서는 경성에서 있었던 일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를 찾으려고요. 반드시 그래야 해요.”

충서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얘야, 너는 종손이야. 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쩌느냐? 에헴.”

“만세 부르는 것 그만둬라. 너 말고도 만세 부를 사람, 얼마든지 있을 게다.”

종친 어른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종손임을 어찌 잊겠어요. 하지만 지금 나라 꼴을 보세요. 제 소꿉동무 민수 아버지는 농토를 다 빼앗기고, 남의 땅을 일궈 간신히 먹고사는 소작농이 되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빚쟁이가 되어 야반도주하거나, 생판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로 떠나간대요.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먹으며 벌레처럼 죽지 못해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가는 백성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나라를 빼앗은 일본 놈들과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 도적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요.”

충서는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충서의 뜻을 지원해야만 해요. 온 백성이 함께 소리를 내야 해요. 우리 모두의 일인데요. 만세운동의 활시위는 이미 동경, 경성, 평양 등에서 당겨졌어요.”

묵묵히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작은아버지 승각이, 충서의 결심을 거들었다. 어른들은 제사도 잊은 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쌀값은 폭등하고 전염병은 여기저기 번져 사람들은 맥없이 죽어 나가는데, 총칼 찬 일본헌병들은 걸핏하면 태형을 휘둘러 인정사정없이 괴롭히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흠 흐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소이다. 우리 모두 충서와 뜻을 같이합시다!”

문중 어른들도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비바람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제사는 다른 때보다 일찍 끝났다. 제삿날이라 어르신들에게 인사하러 들렀다며 찾아든 20, 30대 승각, 승만, 그리고 친지들은 3월 19일 안성환의 골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약속한 날이 왔다. 그들은 일본 밀정의 감시망을 피해 안성환의 집 골방에서 뜻을 모았다.

“오라니 장터는 경기서북부지역에서 제일 크니, 장날에 거사하면 어떻겠나?”

  “그게 좋겠군. 2시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니, 23일 2시로 하세.”

“장날 꼭 장보러 오라는 통문과 선언문, 격문, 태극기를 많이 준비해야겠어요.”

“어서 서두르세. 시간도 사람도 턱없이 부족하네. 믿을 만한 사람을 모아 보세.”

  “주재소의 통신선을 절단해야겠네.”

“막내 작은아버님은 만세 부르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그날이 출산일이잖아요.”

그러나 승각은 조카 충서의 만류에도 끝내 만세운동에 적극 동참하기로 하였다. 선언문을 필사하고 수백 통의 통문과 격문, 경고문을 만들었다. 억만과 인환은 추가 인원을 서너 명 더 확보하여 통문을 면내 각지에 배포하였다. 모두 구슬땀이 흘렀으나 독립에 대한 희망으로 태극기 목판을 만들고 찍어내는 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승각은 누산교회와 김포읍교회에도 만세운동을 알렸다. 흥신리와 구래리 뒷산에 머물던 의병에게는 열살배기 덕칠이가 연락했다. 강화댁은 용화사 큰스님에게 다녀왔다.

드디어 오라니 장날이 돌아왔다. 이른 새벽부터 장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종 곡식과 산나물을 팔려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잡았다. 희귀한 물건이 가득한 방물장수 아저씨도 물건을 늘어놓았다. 약장수와 그 딸의 구성진 선전용 춤과 노랫가락이 울려 퍼졌다. 장보러 오는 사람과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들로 장터는 북적북적했다. 오라니 장터 재래시장과 이어진 우시장에서는 소와 송아지들이 한편에서 음매 음매 구슬피 울어댔다.

300여명쯤 되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 앞에 충서가 우뚝 섰다. 뜻을 같이한 동지들은 재빨리 오라니 장터 여기저기에 벽보와 경고문을 붙였다.

  “으째 이런 일이 있씨꺄? 일본 놈들이 나랏님을 독살했다고 써 있씨다.”

  “뭐, 나랏님이 독살당했다고. 이런 염치없고 나쁜 놈들을 그냥!”

수십 명씩 벽보 앞마다 모여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아 글쎄, 어제는 월곶과 검단에서 만세를 불렀대요. 오늘 또 부른답디다.”

  “우리도 함께 만세를 부릅시다. 우리 뜻을 보여줍시다. 일본 놈들을 쫓아냅시다.”

그때 충서가 가슴에서 커다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만세! 일본 놈은 물러가라. 만세! 만세……!”

장날이라 경계하던 일본 헌병들과 경찰들이었지만, 순식간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만세를 부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음. 박충서 이 노옴. 기어코 큰일을 벌였구나.’

“맨 앞에서 만세를 부르는 놈이 박충서다! 빨리 잡아들여.”

헌병대장은 핏빛 가득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소리쳤다. 그리고 충서와 동지들을 잡아갔다.

   “박충서, 대일본제국은 조선을 도와주려고 왔다.”

  “새빨간 거짓말. 대한 사람 중에 그 누가 우리를 짓밟아도 된다고 동의했느냐? 너희는 강제로 우리나라를 빼앗았다. 일본 사람은 일본에서 대한 사람은 대한에서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 만세……!”

충서의 만세 소리와 함께 주재소 안 여기저기서 만세 소리가 들렸다.

이때 밖에서 만세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또 만세를 부르며 떼거리로 몰려옵니다.”

   “초원지리 정인섭, 임철모, 이효원이 앞장서서 몰고 옵니다.”

   “뭣이라? 이놈들, 가만두지 않겠다.”

눈이 벌겋게 충혈된 헌병대장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똑똑히 보아라! 만세운동은 세찬 바람에 타오르는 산불처럼 번질 것이다. 대한독립 만세……!”

손발이 묶인 채 마룻바닥에 꿇려 취조를 받던 충서가 외쳤다. 이어서 잡혀 온 사람들이 만세를 불렀다. 주재소 안팎이 만세소리로 넘쳐나자 헌병대장은 험상궂게 얼굴을 찌푸린 채 두 귀를 틀어막았다.

 “누산리 박충서, 박승각을 석방하라. 전태순, 오인환, 안성환……학운리 정억만을 석방하라……!”

  “정인섭 선생님, 임철모, 이효원을 석방하라……. 대한독립 만세! 만세……!”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주재소 밖에서는 수천의 사람들이 다음 날 아침이 되도록 체포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만세를 불렀다. 전화벨이 울렸다. 다음 장날 또 오라니 장터에서 만세를 부를 거라는 소식에 헌병대장은 고래고래 악을 쓰며 혹독한 고문을 해댔다.

“박충서, 이 모든 것이 네 놈 탓이다. 누가 시켰느냐? 엉, 누가 시켰느냔 말이닷.”

“숨을 안 쉬어요. 대장님, 숨을…….”

“찬물을 끼얹어라. 말할 때까지 불인두로 가슴을 지져라.”

“어푸프. 으아악. 아 아악…….”

충서는 혹독한 문초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잡혀 온 사람들도 그랬다.

한편 부하들은 장터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고 있었다. 늦게까지 아무 일도 없자 헛소식에 속았다며 툴툴거리며 돌아갔다. 만세소리는 한밤중에 울려 퍼졌다.

“대장님, 큰일 났습니다. 수천 명이 횃불을 들고 이쪽으로 몰려옵니다!”

   “일본 놈들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대한독립 만세! 만세……!”

   “뭐하나, 총을 쏴서 쫓아내.”

헌병대장이 소리쳤으나 부하들은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대장은 부하들을 향하여 한 발의 총을 쏘았다. 그제야 부하들은 꾸물꾸물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탕, 탕, 따다다다…….”

   “악. 아악. 으 으 으윽…….”

총을 맞고 쓰러져가는 소리가 화약 냄새와 함께 비바람에 섞여 밀려왔다. 정신을 잃고 있던 충서가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네놈들의 악행은 우리 대한의 만세소리와 함께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이 도적놈들. 여기는 우리 땅, 우리가 주인이다. 네 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겠느냐. 네 나라로 돌아갈 때까지 만세소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충서의 피 끓는 외침은 감옥 창을 통해 오라니 장터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발췌 - <<소년문학 2020.12월호(통권337호)>>

 

고현숙 학운초등학교  약력

인천광역시 강화에서 태어나 42년째 초등학교 아이들과 꿈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동화창작스토리텔링 과정을 수료하고, 2020년 KB창작동화제 수상, 2020년 아동문학사조 제1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작품으로 「우리 집에 태풍이」「고마운 건 나인데!」「옥수수밭 지킴이」「오라니 장터 만세운동」「황조롱이 푸름이」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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