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4월 들어 ‘여성도 남성과 같이 입대해야 한다’라는 청와대 청원이 사흘 만에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2~3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였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가녀린 여자들이 육중한 군사적 활동을 감당하기에는 열등한 체구로써 모자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에 많은 여성이 군대의 모든 분야에서 단순히 적응을 넘어 지도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례들을 통해 ‘여성은 가녀린 존재’라는 판단이 이제는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물론, 동일한 조건에서 여성이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하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동일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의 경우, 대개는 아들이 딸보다 키가 크고 힘도 세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들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동성 또래 집단의 사례도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특전사를 비롯한 근육을 쓰는 군사작전에서도 여성들이 만만치 않음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동일한 작전을 펼치면 여성은 진다’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이런 사고방식에는 끈질긴 편견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싸움은 붙어봐야 알고, 승리란 근육의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현대전은 창과 방패를 맞부딪히는 근육질 싸움이 아니다. 정교한 전자무기와 로봇이나 드론을 띄우는 기술은 남자들 못지않은 정교한 촉과 감을 지닌 여성들이 훨씬 더 우월한 전투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파치 헬기나 공군 전투기 조종 등에서 이미 이런 사실은 증명이 되고 있고, 전략적 작전 수립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고급 여성 지휘관의 배출은 현실로 드러난다. 사관학교나 경찰행정학교에서 여성 수석 졸업자의 배출은 상대평가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한 마디로 여성의 육체와 정신의 열패적 인식은 근거가 없어진 셈이다.

그런데 사실을 비틀고 있는 주범은 파당적 이기주의이다. 한때 공무원 임용을 비롯한 공채시험과 보수에서 군필 가산점을 주었다. 이 제도의 폐기를 주장한 것은 여성단체였다. 가녀리다는 핑계로 군대 안 가는 혜택은 당연하고, 그러나 직업의 보상은 줄 수 없다는 이기주의가 이 주장 속에 숨겨져 있다. 물론 그들만이 아니라 각종 묘수를 부려 군 면제를 받은 수많은 특권층의 아들들도 이 꼼수 이기주의의 공범들이다. 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느라 필부필부의 아들들은 군대에서 소중한 젊음을 ‘섞이고’ 있다. 현행대로 간다면 별일 없이 불평등한 국방의 의무는 계속 이런 악순환을 반복할 것이다. 문제는 이 불평등이 결국 국가적 분열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런 불평등의 악순환을 끊는 기회를 잡아야 한다.

한편, 군대가 뭐 그리 대단하냐, 용병제를 시행하면 되지라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은 나무는 보고 숲은 놓치는 어리석음의 발로이다. 로마제국에서는 귀족의 아들들이 솔선수범해서 군대에 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당연시했다. 거대한 제국에서 용병제를 부분적으로 실시하기는 했어도 전체적으로 제국의 난제는 오히려 높은 자리의 귀족들이 앞장서 실천했다. 제국의 결속과 안녕을 내다 본 고관대작들의 희생과 섬김의 하나로 이런 시범을 보였는데, 그 결과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수준의 천년 왕국을 지탱한 것이다. 국가의 소중함을 가슴에 새기는 일은 국방의 의무를 수료한 예비군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인데 반해, 군 면제를 받은 남자들이나 여성 일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사회지도층의 군필 검증은 당연시되었다. 이런 서구의 전통을 우리도 받아들여 고위공직자 청문회를 시행한다. 군필과 미필은 단순히 그것의 사실 여부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통한 국가관과 가치관의 확립을 확인하는 계기가 그 본령이다.

이런 측면에서 국가적 가치관은 모두가 공유해야 하고, 그것을 일부에게 강요하는 것은 보편적 시민들의 평등한 의식에 반하는 반국가적 행위이다. 그런데 때마침 여성의 병역의무가 여성들의 자발적 주장으로 제기된 사실이 고무적이다. 그것은 단순히 근육에서 남성과 여성은 동등하다는 주장이 아니라, 가치관과 기회에 있어서 남녀는 동등하다는 주장이며, 대한민국을 남녀가 똑같이 짊어지자는 자유롭고도 당당한 선언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드디어 남녀가 진정으로 공동하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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