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안상학

세상 모든 나무와 풀과 꽃은
그 얼굴 말고는 다른 얼굴이 없는 것처럼
늘 그 얼굴에 그 얼굴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꽃은 어떤 나비가 와도 그 얼굴에 그 얼굴
나무는 어떤 새가 앉아도 그 얼굴에 그 얼굴

어쩔 때 나는 속없는 얼굴을 굴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과장된 얼굴을 만들기도 한다
진짜 내 얼굴은 껍질 속에 뼈처럼 숨겨두기 일쑤다

내가 보기에 세상 모든 길짐승, 날짐승, 물짐승도
그저 별다른 얼굴 없다는 듯
늘 그렇고 그런 얼굴로 씩씩하게 살아가는데
나는, 아니래도 그런 것처럼, 그래도 아닌 것처럼
진짜 내 얼굴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나는 오늘도
쪼그리고 앉아야만 볼 수 있는 꽃의 얼굴과
아주 오래 아득해야만 볼 수 있는 나무의 얼굴에 눈독을 들이며
제 얼굴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시 감상
가끔 거울에 보이는 것이 나의 민낯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내 얼굴이 지금 나의 얼굴인지 아니면 오래전 잃어버린 나의 얼굴인지? 사실 생긴 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내 민낯을 더 꾸미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그 민낯의 얼굴이 민낯이 아니라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내 얼굴은 내가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내 얼굴이다. 그것이 민낯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안상학 : 경북 안동,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집 <그대 무사한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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