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혹은 것들

                            이서빈

첫 잎사귀에 ‘첫’이란 상형문자를 쓰며 고물고물 기어가는 애벌레 
발가락 이빨 파르스름한 것들, 첫 잎들 흔들흔들 요람 타며
자라서 우르르 지기 위해 말발굽 소리 내며 뛰어가는 것들, 첫은 
또 다른 햇것 끊임없이 낳아 기르는 무지렁들, 첫잎 연하고 부드러움
자라면 한꺼번에 숨 거두는 소리 달가당달가당 나는 것들, 첫사랑 
지운 빗소리 파란 몸으로 뛰어내리는 소리 방울방울 딸랑이는
것들, 첫순들 초록무게 내려놓으며 몸 늙히는 나무, 발목 주름 
주름주름 젖어 우는 것들, 첫행 잃어버린 나무는 글자를 포기하고 
밤낮 계절 견디는 법만 살갗 부르트는 것들, 첫울음 울던 날마다 
죽고 태어나는 우주의 체위, 지루하게 끝을 보이지 않는 것들,
첫이란 말 사랑이란 말이 결합하면 아련함 낳는 것들, 
첫이란 돌덩이보다 무거운 말,
전원을 꺼야 하는 것들.


시 감상
첫, 이라는 말의 무게는 가볍다. 무겁다. 첫이라 가볍고 첫이라 무겁다. 겨울을 지나 다시 새싹이 돋고 첫 잎을 달고 첫 꽃을 피우고는 섭리다. 섭리는 순환이면서 새로움이다. 지난봄의 목련과 올해 봄의 목련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첫사랑은 풋풋하지만 평생 아련하게 남는다. 첫울음을 틔우며 아기가 태어나고 같은 날 누군가는 첫 천국으로 향한다. 과연 우리에게 첫은 무엇일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첫 이라는 말은 순환이다. 지금은 어려워도 다른 날의 첫날은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첫은 신선하다. 내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다. 내 첫은 온전하게 내 것이다. 보는 각도에 따라 첫은 첫이 되는 것이다. 매일, 자주 첫을 만드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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