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운 발행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방역이나 대책이 국가단위로 다르게 정리되면서 새삼스레 국가라는 인식이 높아졌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국가의 필요성과 중대함으로 애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자’는 마음들이 많이 싹 텄고, 국가를 움직이는 정치 지도자들과 정부의 힘이 섬세하게 드러나는 힘의 파장도 나타났다. 

그 결과선상에서 각국의 상황을 보면 특히 정치지도자들을 잘 뽑아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 두 지도자가 보여주는 선명한 경계선에서 그 해답이 나타난다. 잘못된 정책과 정치가 망쳐온 지구온난화 현상, 지구는 인류를 미래에도 품어줄까? 화급하다는 문제 인식은 같은데 세계는 국가별로 따로 간다. 글로벌 리더십의 부재다.

 

인류는 자연과 함께 태어나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연일 뿐이다. 어떤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고 자연 속에서 인간이 월등한 능력으로 자연을 하나씩 정복하고 인간을 위한 도구로 무수한 자연을 파괴하면서 오늘날의 위대한 과학문명사회가 어쩌다 이룩되었다.

70억 년의 우주 역사 말고도 가스 덩어리에서 출발한 46억 년의 장구한 지구 역사 변천 과정의 끄트머리에 잔혹성을 띤 인간이 외로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와 자연의 몇 번의 경고 이후 인류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비대면 사회, 비집합 사회라는, 인류가 이룩한 사회에 역행하는 사회를 조성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자연의 역도전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진실은 자연에 인간이라는 자연이 철없이 도전한 결과로 인간이 주체적으로 정의하는 ‘자연의 도전, 자연의 역습’은 주체와 객체가 바뀐 개념으로 자연을 부수고 피폐시킨 인간이라는 자연의 무모한 행적의 결과이다.

작지만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염려하는 양심 인간들의 노력이 있어왔지만 자만과 탐욕으로 무장한 무지한 인간을 깨우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2020년 드디어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인류를 덮쳤다. 참으로 묘하게도 이 전염병은 호흡기 질병이다. 자연이 허물어지면서 늘어난 인간 탐욕장 공장과 도시는 지구를 숨쉬기 어렵게 만드는 질병인데 금번의 코로나바이러스 또한 호흡기를 망가뜨리고 폐를 섬유화시켜 숨쉬기를 힘들게 하는 공통점이 있다.

코로나19는 감염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모습을 감추기도 하면서 무증상자의 가면을 쓰기도 한다. 교활한 인간의 습성을 그대로 닮아 보여준다. 바다가 뒤집히며 스스로 펄펄 끓는 몸체를 자정하는 몸부림으로 해일과 태풍을 통해 발산하는 바다의 고통 또한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지독히도 아픈 것과 어찌 그리 똑같은지 전율을 느낀다.

이제 마지막 숙제는 바이러스 전파 속도다. 마스크를 끼고 사람이 사람을 못 만나는 비정상 사회를 만든 것처럼 대자연에 어떤 마스크들을 씌울지, 그것도 코로나의 전파속도처럼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행동적 숙제를 던져준 것이다.

전 세계가 뿌린 오염씨앗, 전 세계의 빠른 동참만이 대자연에 구제받을 것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 문제를 다루는 세계기구인 파리 기후협약을 세계 GDP25%를 차지하는 미국이 탈퇴했다. 장사꾼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의한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행위였고 그동안 문물 선진국들이 대 자연을 해코지한 대표적 원인 국가이며, 이 시대를 이끄는 세계 패권국가인 미국의 무모한 몽니 행위다.

다행히 미국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50년까지 미국 경제를 ‘탄소제로’로 바꾸겠다”고 천명하며 재임 4년간 5조 달러(약 6천조 원)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중점 투입해서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그동안 세계 에너지 경제의 원동력 역할을 한 화석 연료의 급박한 퇴장을 예고한다. 대표적 행동 사례로 나타나길 기대한다.

이산화탄소 최대 배출국인 중국도 206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했다. 다만 2030년 이전에 이산화탄소 배출량 정점을 찍은 뒤 탄소 배출을 급격히 줄이고 친환경 에너지로 변환하겠다는 의지다.

유럽의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 40%를 우선 감축하는 목표는 그들이 오랫동안 저지른 재앙적 행위를 감안하면 선도적이지 못하다. 기후 재앙을 막기 위한 2℃ 이상 상승되지 않도록 전 지구적 자정노력을 하는 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면 탄소제로를 지향하는 2050년이나 2060년 이전에 만약 지구의 온도가 스스로 임계치를 넘게 되면 탄소 배출 제로운동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통한의 우(愚)가 될 수 있다.

탄소 배출 세계 3위국인 인도도 코로나로 인하여 일시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크게 감소하였지만 탄소 배출 1, 2, 3위인 중국, 미국, 인도가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지구온난화에 절반 이상으로 크다. 이미 중국의 배출량이 유럽 전체 배출량을 넘어섰고 한국도 세계 10위권 내에 속한다. 한국은 탄소 배출권 시장에서 EU 다음으로 높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증거다.

대한민국도 우리 후손들의 생존을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실재적 모습이 코로나19의 팬데믹 공포현상이다. 우리의 사소한 실생활까지도 꼼짝 못하게 점령당한 것을 통절히 느끼고 대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지킬 것은 ‘진실’이다 지금도 수평적 문화 속에 자유라는 개념을 방임에 가깝게 해석하는 유럽과 미주의 사회 현상은 “마스크에서 벗어나고 싶다” “마스크는 나를 구속하는 존재다”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한 국가를 지켜내고 통치하는 자는 무릇 상식에 맞는 행위로 국민을 선도해야 한다.

트럼프는 본인도 마스크를 안 쓰며 국민에게 안 써도 된다고 선동했다. 2차 세계 대전 때 죽은 숫자보다 더 많은 고귀한 생명 40만 명 이상이 코로나로 인하여 사망했고 전 세계적으로 2백만 명이 넘었다. 마스크로 선동한 트럼프 때문에 마스크를 벗어던진 사람들의 죽음이 있다면 누가 보상할 것인가?

정치인의 입과 행동은 ‘진실’이어야 한다. 선동과 교언으로 시민에게 다가서는 ‘위선’은 인기 영합의 대중 정치가 아니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악마와의 영합이다. 그래서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정치인들은 한결같이 ‘진실’에 입각해야 한다. ‘진실’의 행보야말로 소통이 되고 연결이 되고 통합을 이룩하는 근본이고 단서이기에 이 시대 우리 앞에 놓여진 기후와 자연생명을 되살리는 크고 작은 실천들도 ‘진실’로 무장하고 ‘실천’으로 터득하는 올바름으로 걸어야 한다.

그 최전선에 정치 지도자들의 모범이 있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후손을 살리고 지구를 살려야 하는 지금, 그러한 일들이 불행하게도 정치 지도자들의 손에 달렸다. 그들은 독재자의 모습으로, 민주투사의 모습으로, 선동가의 모습등으로 나타난다.

지구의 안정과 인류의 안전을 최우선하는 ‘진실을 숭상하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 그런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 나타난다면 반칙과 욕심은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다.
지구를 살리는 첫 행보는 욕심의 절제와 ‘진실’에 의한 작은 실천들이다.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