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수상 - 시부문 >

 

파키라 여인

                     이 용 호 (서울시 노원구)

사람을 멀리하던 그녀는 오늘도
화원 한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새벽에 길을 묻고 물어 걸어온 출근길
바오바브나무처럼 굵어진 팔뚝으로
화원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면
간밤에 아프지는 않았니
네 상처도 이제 곧 뿌리를 내리겠지
일일이 식물들과 눈을 맞추고 살피는 건
하늘이 부여해 준 그녀의 책무
말없이 앉아 공상하거나
가끔씩 물을 마시고
밖에 나가 하늘을 보고 볕을 쬐다 보면
어느새 발바닥이 간지러워 
이제 뿌리가 돋는 것일까
각질이 뚝뚝 떨어지는 발부리에서
거친 황야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나도 식물처럼 이 지상에 정박하고 싶어
어머니, 이제 저를 이곳에 뿌리 내려 줘요
아마 너도 발부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선
먼저 모든 걸 스스로 버려야 한단다
어머니의 지청구가 화원에 매일 가득차면 
이제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바람 한 점에 슬픔을 놓아 주고
적당하게 흔들리는 줄기와 가지를 지닌 채
말없는 파키라 한 채로 화원에 눕는다.

 

< 우수상 수상소감 - 이용호 >

수상 소식을 전화로 받은 때는 공교롭게도 시월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 건너온 반가운 목소리의 감흥을 뒤로 한 채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집에서 가까운 불암산 봉우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저마다의 단풍으로 가을을 물들이고 있는 산의 모습이 처연하게 다가왔습니다. 저렇게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어 갈 수 있는 시를 과연 나는 지금 쓰고 있는가하고 제 자신에게 되물어 보았습니다. 지금은 번잡한 일상의 시간을 마치고 저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이번에 제출했던 제 시를 다시 읽어 보는 밤입니다.

예년 같았으면 시월의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하며 지인들과 약속을 잡거나 산을 찾아 가을의 정취를 한껏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다가온 일상의 삶은 단풍처럼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만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문학은, 시는, 나의 시는 과연 무슨 존재 의미가 있을까 고민해 보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자기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의 이웃들이 있습니다.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세상. 제 시는 바로 이런 분들께 바치는 마지막 헌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게 있어 시 쓰기는 세계와 인간의 진정성을 회복하려는, 지상의 포유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 구원의 행위였습니다.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기대고 자신의 영혼에 힘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세상을 아름답게 지켜내는 따스한 시를 쓰겠습니다. 언어 미학이라는 허울 아래 정작 시를 쓴 시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시, 날선 이미지와 감각의 전위 등으로 포장해 소수의 사람들만 읽는 시가 아니라 인간의 진심과 이 세상을 아름답게 읽어 내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도록 밤을 새워 읽고 또 쓰겠습니다.


상을 주신 김포시의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약력
 서울 출생.
 2010년 계간 《불교문예》 신인상으로 등단.
 교단문예상, 목포문학상 등 수상.
 시집으로 『유배된 자는 말이 많다』, 『내 안에 타오르던
 그대의 한 생애』가 있음.
 현재 불암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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