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세이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 출간한 고선정 작가

사진 한 장으로 시작한 스리랑카 여행, 3년 공들여 에세이집 펴내

김포에 8년째 거주 중... 국내 스리랑카 이주민 도울 수 있었으면

‘나는 스리랑카주의자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는 듯한 이 강렬한 문장은 올 4월에 출간된 스리랑카 여행에세이의 제목이다. 스리랑카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의외지만 이것도 2017년에야 처음 나왔다)이 아닌 여행에세이로는 국내 처음인 이 책은 25년 동안 수능국어 유명강사로 일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고선정(48) 씨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에 하늘길이 꽁꽁 얼어붙어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던 때, 아니 집밖 외출도 삼가던 때 그는 3년여 동안 정성을 쏟은 이 여행 에세이를 내놓았다.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라는 우려와 달리 1쇄가 다 소진되는 관심을 받았다. 얼마 전 국내에서 발간되는 우수문학도서를 선정, 보급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목록에 당당히 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두 달 반에 걸쳐 꼼꼼히 심사해 선정한 것이라 의미가 있었다”며 “직장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행서로 대리만족하기도 하고 코로나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제 책이 ‘방구석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낯설지만 다정한 스리랑카의 모든 것 총망라

2017년 1월, 여행안내 책자의 아름다운 사진 한 장에 반해 그는 스리랑카 비행기 티켓을 사고 무작정 스리랑카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다시 일주일, 열흘씩의 여행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일자리를 버리고 한 달, 세 달, 6개월의 장기여행을 통해 스리랑카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서 수많은 장소와 사람과의 만남이 이루어졌고 마침내 스리랑카 북부에서 동부내륙을 지나 남부까지 그녀의 발자취가 찍힌 여행에세이 하나가 오롯이 남았다.

책은 그가 들렀던 지역을 통해 스리랑카의 역사, 종교, 정치, 문화 등 관련 정보를 간단한 감상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스리랑카와 관련된 모든 상식과 정보들이 총망라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단편적이지 않다. 그곳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꼼꼼하게 확인하지 못했다면, 나눈 이야기 속에 깃든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표현하지 못했을 내용들이다.

스리랑카는 인도양 한가운데 떠있는 섬이다. 인도와 가까운 불교국가라는 것 말고 우리에게 친숙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여행위험국, 최빈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인도양의 진주’라 불린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가이드 잡지 론리 플래닛이 ‘2019년 최고의 여행지 10곳’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더불어 동·서양이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가 매력을 끈다. 그는 이런 스리랑카에 어떻게 매료돼 ‘스리랑카주의자’가 되었을까.

“스리랑카를 아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오히려 영국산 ‘실론티’ 하면 바로 알아 듣는다.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 ‘실론’이고 지금도 세계 홍차 생산량의 반이 스리랑카에서 재배되고 있다. 차 말고도 사파이어, 루비 같은 보석과 후추 등의 향신료도 유명하다. 아라비안나이트 ‘신드바드의 모험’ 속 보물섬이 바로 스리랑카다”며 설명하는 그는 “그래서 서구 열강의 침략을 받아 오랫동안 식민지 상태에 있었고 독립 후에도 영국이 조장한 종교 갈등으로 27년 동안 내전을 겪었다”고 덧붙인다.

친절과 미소로 환대하는 스리랑카 사람들 그리워 수없이 가게 돼

강렬한 햇살에 체류 3개월이면 피부와 머리카락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곳이지만 그곳에서 그는 “그동안 살았던 규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물처럼 자유롭게 흐르고 공기처럼 가볍게 떠돌고 싶은 내재된 욕망이 본성임”을 알았고 수없이 오가며 “몸과 마음이 노곤노곤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다. 바오밥나무와 보리수, 불교사원, 색색의 물고기가 춤을 추듯 유영하는 바닷속, 흰긴수염고래와 바다거북과의 만남도 좋았지만 수십 번 그를 스리랑카로 이끈 원동력은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순박하게 살아가는 스리랑카 사람들과의 만남이었다.

여행 가이드로 만나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기도 한 사람들은 친절과 미소로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집으로까지 초대하며 친구가 되었다. 물론 사람들과 잘 친해지는 그의 털털한 성격도 한몫했다. 그렇게 쌓인 정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들이 보고 싶어 다시 스리랑카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스리랑카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땅을 구입하기에 이르렀다.

“비자 때문에 인도에 들르면서 요가 수련과 명상, 호흡법을 배웠다. 자격증을 따기도 했는데 최남단 히카두와 강변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요가 수련을 나눌 수 있는 글로벌한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세계 많은 여행가들이 인도에 들렀다 스리랑카를 거쳐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 이곳에서 쉬면서 요가와 여유를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10대가 대부분인 내 스리랑카 친구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작용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으로 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내가 그런 일을 연결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받았던 그들의 호의를 이 공간에서 조금은 갚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 않던가. 땅 매입과 함께 시작하려던 집짓기는 코로나 팬데믹에 3월 정부에서 마련한 전세기를 타고 귀국하는 바람에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에세이를 출간하고 바로 출국할 수 있으리라 싶었던 생각도 접어야 했다. 그리운 친구들과는 아쉬운 대로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는 계획을 다시 세웠다. 지금 당장 갈 수도 할 수도 없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작가로 들어선 일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다짐에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출간된 책을 들고 에세이에 등장하는 스리링카 친구들을 찾아가 한 권씩 나눠주려던 꿈이 무너져 아쉽지만 이곳에서 그들과 연결된 일을 하면서 기다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이주민사목위원회를 통해 결혼이주여성을 후원하는 월례회보에 연재를 시작했고 의뢰가 오면 강연도 하고 도움도 주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김포에 산 지 8년째로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그가 간다고 연락을 하면 킹코코넛과 파파야를 따서 부엌 한쪽에 놓고 익힌다는 스리랑카 친구 우데시의 아버지를 닮은 사람들을 이곳에서도 도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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