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운 발행인

고난을 모르는 자의 인생은 마치 사상누각과 같아 일장춘몽의 신기루와 같다. 자식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부모의 욕심이 자식의 인생을 쪼그라뜨리듯 고난을 두려워하는 인생 또한, 어떤 조건에서도 패배한다. 고난을 벗 삼을 때 피어나는 용기와 절제는 하나님이 선사한 인생 최고의 선물이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겨우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어머니 따라 상경하여 주로 점원과 심부름꾼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역시 심부름꾼 자리인 의학 강습소 급사를 하였는데 주로 하는 일이 강습소 학생들이 공부하는 자료를 등사기로 밀어 공부자료를 백업해주는 뒷일을 챙겨주는 자리였다.

 등사하면서 의학용어를 접하고 의학이란 공부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등사에서 파지로 나온 것을 모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이었지만 예전만 해도 밤에 공부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어서 겨우 등잔불을 켜는 것인데 송진으로 불 켜지 않는 것만도 다행인 시대여서 밤에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난관이었고 형설지공이란 말처럼 오죽하면 반딧불과 달빛에 비친 눈빛으로 공부한다 했을까.

 모르는 글과 뜻을 독학으로 돌파하는, 초인적 인내로 이겨낸 것은 오로지, 자신이 평생을 몰입할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었고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외길을 선택한 집요한 집념의 덕택으로 마침내 의사의 지위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고생을 뭐라 표현하겠는가. 당시만 해도 의대를 다니지 않아도 의사 검정시험에 합격하면 의사가 될 수 있는 시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의사면허시험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비로소 정재원 의사가 탄생한 것이다.

 그가 이루어낸 것은 각종 심부름꾼에서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이니 의사 정재원이라는 아주 판이한 사람으로의 변화는 찬란한 인간승리요 감격 이리라. 그런데 거기에 더하여 또 한 번의 인생 도약도 드라마틱하다.

 인간을 사랑하는 깊은 정신이 항상 내재하다 보니 진료한 갓난아이들이 원인 모르게 영양실조와 합병증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고 보장된 의사 생활을 접고 마흔 네 살 나이에 영국으로 유학 가지만 그곳에서 원인을 찾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계속하던 중에 비로소 “유당불내증”(모유나 우유의 유당 성분을 소화하지 못하는 증세)이라는 단서를 찾아내고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준 콩국을 생각하며 귀국하여 바야흐로 콩으로 만든 우유를 만들어 유당불내증 아이들의 생명을 살려내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고귀한 노력과 정성은 마침내 50의 나이에 정식품을 창업하여 베지밀이라는 두유를 대량 생산하여 국민건강 증진에 막대한 이바지를 하며 국내 두유 시장의 큰 이정표를 세웠고 창업 50년이 지난 올해 10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가난이 벗이 되는 시절과 남들이 시키는 심부름이나 하던 시절 또한 견딜 수 없는 수모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인생진로를 결정할 목적을 발견했고 인간 사랑이 사업 승리의 동인이 되는 영광도 얻었다. 성공한 사업가로 안정적 고용을 창출하고 장학사업을 하는 사회사업가로도 사회적 헌신을 한 인생이었다. 단편적이나마 고 정재원 정식품 회장을 상기하는 건 세상엔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인간 승리한 분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 많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밥 굶기를 밥 먹는 끼니보다 많이 하고 6학년 땐 열흘간 물만 먹고 흑판을 보니 선생님 글씨가 무슨 글씨인지 구분이 안 되어 눈만 열심히 손으로 비비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타나 선생님께 열흘 굶은 “ 우리 애 도시락 좀 주러 왔습니다” 아이들 눈치 볼 것 없이 허겁지겁 먹고 나니 흑판 글씨가 보였단다. 그리고 무슨 용기가 났는지 밥 한 끼 먹고 앞으로 나가서 친구들에게 “누가 내 도시락 좀 싸 와서 나 좀 줬으면 좋겠다”라고 큰 소리로 말했는데 다행히 옆에 앉은 짝이 손들어 줬고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하루 한 끼 밥은 때웠다고 한다. 졸업앨범 사진은 찍었지만 사친 회비를 안 내서 졸업장과 앨범은 못 받았다고 한다. 

 일화의 주인공은 김포의 TOP 10에 들어가는 큰 기업을 키운 어느 사장의 눈물겨운 어린 시절이다. 배고픈 것을 알고 싶다면 3일만 굶어보라고 한다. 물론 3일 굶은 후에도 계속 굶을 수 있다는 조건으로.

세상에는 실패와 성공이, 고달픔과 희열이, 의미와 무의미, 진실과 거짓, 선함과 악함이 교차한다. 계속 힘든 것도 없고 계속 즐겁기도 행복한 것도 없다. 불운에 불운이 겹치는 고난이면 어떻고, 편안함에 행운들이 겹치면 어떠한가! 모든 건 아침이 오면 저녁이 찾아오고 저녁이 오면 깜깜한 밤이 온다.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성공이란 걸 모두가 공유할 순 없을 테지만 힘든 사람들을 슬프고 자애롭게 보는 감성과 자신을 아끼고 존중하는 의지로 나를 보고 주변을 살필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인생 아닌가.

 나의 아집과 그릇된 자부심, 편견, 불만, 자만 등등이 얼마나 허무인지 꼭 살아봐야만 아는 건 아니다. 누구든 먼저 깨닫는 자가 고 정재원 회장님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난을 귀중하게 수용해야 고난의 진통이 성공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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