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택룡
본지 논설위원세무사/
경영학박사/수필가
어머니는 이 씨 집안에 외며누리로 시집오셔서 5남1녀를 낳아 기르시고, 아버지는 수 만평의 농토와 선산을 장만하셔서 우리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다. 그러는 동안 어머니는 손에 물마를 날이 없이 일하셨고, 농번기 때는 산후 조리는 커녕 아이를 업고 농사 뒷바라지하시느라 허리가 굽어지셨다. 그러니 얼마나 몸이 아프고 불편하셨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금년은 어머니 돌아가신 지 어느새 13주년이 되었고,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셨지만 내 가슴속엔 늘 살아 계신다. 지난 설 명절 땐 어머니 산소에 성묘한 후 잡초를 뽑으며 “어머니, 편히 쉬셔요,” 말하는 순간 어머니의 나직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어떤 심리학자는 “우리의 과거를 더듬어 첫 번째 기억을 찾아내면 어른이 되어서도 자주 느끼는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 담벼락에 붙어 울던 일, 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돈을 훔친 기억, 왜정 때 불장난으로 뒷간에 감춰 둔 벼 가마니가 발각 돼 아버지가 주재소에 끌려간 일 등 마음속에 남아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의식에 표면화되어 있다.

그리고 네댓 살 때였다. 어머니가 "아랫말에 사진쟁이 왔다"고 하셔서 나는 "엄마! 사진 찍으러 가자, 응?"하고 어머니의 손을 끌며 졸랐다. 내 얼굴을 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래, 가자"하시며 나를 등에 업고 아랫마을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아낙네들이 모여 있었다. 사진사는 나를 보자마자 "참 잘생긴 도련님이시네"하면서 나를 추켜세웠다. 흰색 바지저고리에 개떡모자를 쓴 나는 얼른 마루에 올라가 포즈를 취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자! 저 자식 봐라"하시며 대견해하셨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찍는 사진임으로 얼른 보고 싶어졌다.

그 이듬핸가, 어머니는 정월대보름이 되자 시루떡을 찌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셨다. 시루에 쌀가루와 붉은 팥고물을 켜켜이 얹고 시루떡을 쪘다.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드디어 먹음직스런 시루떡이 완성되었다. 어머니는 시루떡을 칼로 자르고 그릇에 담아 장독대·대문·다락·뒷간에 가져다 놓고 “고수레!” 하면서 악귀를 쫒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식을 하셨다. 그러고 나면 나는 목판에 시루떡을 담아 허기진 배를 달래며 동네 집집에 휭하니 한 바퀴 돌렸다. 빨리 떡 먹을 생각에 얼른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춥지, 애썼다!" 칭찬하시면서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나는 포근함을 느끼며 울컥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따듯한 안방 아랫목에 나를 앉혀 놓고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조청을 가져다주셨다. 그때 조청을 찍어 먹던 시루떡 맛은 정말이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늘 손이 놀 새가 없이 부엌이나 들에서 일을 하셨다. 어떤 때는 동네 사람들이 어쩌다 사고나 병이 나면 내 집안 일처럼 마음아파 어쩔 줄 모르고 걱정하셨다. 그리고 나의 중·고 시절 인천에서 자취생활을 할 때, 쌀·김치·반찬 보따리와 심지어 장작을 ‘무내미고개’ 버스 정류장까지 머리에 이고 날라 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고개는 선열들이 3.1독립만세를 외친 곳이기에 더욱 숙연해지고 귓가에 그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잊히지 않는 장소이다.

그 만큼 우리 어머니는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물론,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깊으신 분이었다. 아버지는 순수한 농군이시면서 동네에서 구장(현 이장) 일을 20여 년간 맡았기 때문에 공직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집을 찾으니 어머니께서는 이분들의 식사대접이 끊이지 않아, 지역에서는 어머니의 부덕(婦德)함을 칭송하는 말들이 자자했었다. 우리 조상들이 가훈처럼 여긴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착한 일을 많이 한 집안은 언제나 경사가 넘친다는 그 가르침대로 어머니는 평생을 적선(積善)하며 사셨다. 스님에게는 넉넉한 시주를 하셨고, 걸인에게도 먹을 것을 듬뿍 주셨다. 그런 어머니의 후덕으로 우리 집안이 평안하고 번창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보면 우리 어머니의 적선하신 삶이란 따뜻하고, 넉넉하고, 자애롭고, 아름다운 것 등 모든 위대한 선(善)이 다 내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우리 어머니의 모상(母像)을 기리며 이해인 수녀님의 '사모곡'을 음미해 본다.

어머니 그리울 적마다/ 눈물을 모아둔/ 항아리가 있네/ 들키지 않으려고
고이고이 가슴에만 키어온/ 둥글고 고운 항아리/ 이 항아리에서
시(詩)가 피어나고/ 기도가 익어가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빛으로 감싸 안는/ 지혜가 빚어지네/ 계절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는
이 눈물 항아리는/ 어머니가 내게 주신/ 마지막 선물이네.
어머니! 정말로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세상에서 시리고 아픈 기억들을 모두 내려놓으시고, 아무쪼록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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