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동 이도행소설가
'일 소'는 우리나라 농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축이었다. 논밭을 갈아 씨를 뿌릴 수 있도록 하고 우마차를 끌어 짐을 나르는가 하면, 조선조에서는 연자방아를 돌려 곡식을 찧었으니 이 '일 소'가 없으면 결코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이러한 일소가 경운기 등 동력식 농기계가 농촌에 널리 보급되면서 점점 사라지지 시작, 현재는 일을 시키기 위해 키우기보다는 맛있는 고기를 제공하는 한우로서만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우가 '일 소'로 각 농가에서 사육될 때 주로 먹이던 음식이 '여물' 또는 '쇠죽'이고, 볏짚이나 풀을 가마솥에 넣고 부엌에서 나온 구정물과 함께 끓여 만들었다.
그러나 이 '쇠죽'은 물을 붓고 가마솥에 끓여 만들기 때문에 사실상 생풀이나 볏짚의 영양분이 많이 파괴 돼 먹이로서 효과가 반감된다는 학설이 대두된 이후 생풀을 그대로 먹이거나 엔실레지를 만들어 먹이기도 했다.

쇠죽은 고열로 먹이를 끓여야 하기 때문에 연탄불로는 도저히 많은 양의 쇠죽을 끓일 수 없어서 대부분 따로 가마솥을 걸고 장작불을 땠다. 그러고는 어느 정도 쇠죽이 익었을 때 외양간의 구유로 옮겨 소에게 먹이로 주게 되는데 이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쇠죽 갈쿠리'와 '쇠물박'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쇠죽 갈쿠리는 'ㄱ'자 모양의 나무를 잘라 만든 것으로 손잡이는 약간 길고 여물을 담는 부분은 약간 짧다. 그리하여 이 쇠죽 갈쿠리로 여물을 쇠물박에 옮겨 담아 외양간의 구유로 옮겨 가는데, 이런 따위가 확실히 필요한 것은 자칫 사람이 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갈쿠리는 구유 그리고 쇠물박과 함께 농촌에서 직접 만들어 썼다.

쇠물박도 처음에는 통나무를 깎아 만들어 사용했으나 그후 쇠로 만든 것이 나왔고 요즘은 어느 것도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소의 사육이 집단화·기계화·자동화하면서 그 쓸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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