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문 - 한옥 방문에 달린 한지로 발라진 문

서구문명이 물밀듯 유입된 것은 해방후 부터였다. 생활양식에서부터 환경까지 빠른 템포로 서구화되어 갔다. 요즘 젊은이들 가운데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만 해도 대부분 국민들은 한복을 입었으며 짚신을 신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다. 수십 년 사이 너무나 많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났다. 주거환경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지어지는 건물은 모두 서양식이고 집안의 구조나 진열되는 가구도 모두 서구적이다. 한옥(韓屋)은 기와나 볏짚으로 지붕이 이어지고 대들보 서까래 기둥이 모두 통나무일 뿐 아니라 벽은 흙으로 발라지고 문은 대부분 살문이었다. 방은 땔감을 대어 덥혀질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마루를 놓아 뜰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최근 건립되는 양옥들은 시멘트 벽돌에 연탄 및 석유 보일러가 대부분이고 슬라브에 툇마루 대신 거실을 만들고 문은 유리를 끼운 창문 및 베니어판이나 통나무로 만든 도어이다. 살문은 한옥의 방문에 달리는 한지로 발라진 문으로 단문(單門)과 쌍문으로 구분된다. 안방이나 사랑방 등은 쌍문이고, 웃방, 건너방 등 너비가 좁은 방문은 모두 단문으로 한다. 살은 좌우로 여러 개의 나무를 엇갈리어 만드는데 상 중 하로 나뉘어 가로의 살을 대고 세로살은 일정한 너비로 덧대어 만든다. 매년 가을이면 떨어진 문을 벗겨내고 새 한지로 바르며 이러한 문 바르기는 한겨울 추운 바람을 막는데 중요한 구실을 하므로 추분을 전후하여 온 가족이 합심, 일을 해야 하는 필요하고 절실한 연례행사였다.

'오동나무 잎지는 가을 달밤'이라면 살문으로 비치는 정취가 그럴듯 하고 '귀뚜라미 울음소리'도 문살을 통해 들려야 제격이다. 유리창문 앞의 오동나무나 현관 앞의 귀뚜라미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우리네 정서다. 규중처녀가 시집을 가면 첫날밤을 치러야 하고, 첫날밤 살문 앞에는 결혼을 앞둔 동네 처녀 총각이 모두 몰려와 문종이를 찢고 안을 들여다 보곤 했다. 손가락에 침을 발라 종이를 찔러 구멍을 만들어 자정이 넘도록 기다리던 이러한 풍습은 수백 년간 전해 내려왔다. 지금은 첫날밤을 치르는 별다른 행사를 갖지 않고 더구나 이웃 처녀총각이 첫날밤 정경을 보기 위해 몰려오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유리문으로 되어 있는 창을 깨고 방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주택개량이 전국적으로 실시되자 농촌에 까지 2층 양옥이 들어서고 한지를 바르는 살문보다 유리를 끼우는 창문을 달고 현관이나 방문도 모두 유리를 이용한 도어를 만들었다. 매년 한지를 다시 발라야 하고 겨울이면 온기를 쉽게 외부에 빼앗기는 살문은 비경제적이어서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활양식도 변해가고 주거환경도 발전되는 것은 당연한 추세로 살문은 점점 우리의 생활주변에서 사라져 갈 전망이다.

▲ 벽동 이도행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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