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손 - 화로의 숯불을 헤집거나 눌러주는 도구

▲ 벽동 이도행 소설가
 '로'는 아궁이에서 타고 남은 숯불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그 그릇에 담긴 불을 화롯불이라 하며 추운 겨울에 방안에 들여놓은 화롯불은 실내온도를 높여주는 난로 구실을 넉넉히 해낸다. 아직도 강원도 깊은 오지에 가면 땔감을 이용하여 식사준비도 하고 온돌도 덥히는데 이때 타고 남은 새발깐 숯불을 화로에 담아 방안에서 된장찌개도 끓이고 알밤이 나 고구마도 구워 먹는다. 그러나 이 화로도 연탄이 취사용으로 대체보급되면서 대대적인 '자연보호운동'과 맞물려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아무도 몰래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알밤을 묻어 놓은 화롯가에 둘러앉아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귀 기울이는 손자 손녀들의 까만 눈동자는 얼마나 반짝거리던가… 그러나 이런 광경은 동화 속에나 있는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랑방에서도 동네 청년들이 화로를 중심으로 모여 앉아서 추억어린 정담이나 내일에의 꿈을 이야기하며 긴긴 겨울밤을 꼬박 밝히기도 했다. 화로의 모양은 솥과 비슷하지만 가장자리가 아주 넓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둥글고 높은 것, 둥글고 평평한 것, 세 발이 있는 것, 양 고리가 있는 것 등 종류가 많았다.

그리고 만드는 재료에 따라 놋쇠청 동, 도자기, 쇠 화로로 구분 하기도 했는데 이 화로 한 쪽에 가만히 얹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숯불을 헤집거나 눌러주 는 역할을 하던 ‘불손’이라는 것이 있었다. 불손은 크고 긴 숟가락처럼 생긴 것 이다. 물론 인두도 불손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재봉용으로 쓸 수 있었던게 인두였 다면 불손은 오로지 화롯불을 다독이는 데만 사용됐다. 나이 많은 어른들은 우리네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바느질을 하면서 옷감의 구김살을 피거나 혹은 동정이나 소매 끝에 달린 끝동을 다림질하고 모양새가 작은 직물을 재단할 때, 그도 아니면 땜장이가 그릇을 때울 때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불손의 모양은 여러가지였다. 쇠로 만든 것, 철사로 만든 것, 나무로 만든 것 등 재료에 따 라 달랐으며 쇠 로 만든 것은 시계추처럼 손잡이가 길고 그 아래 둥글고 넓은 손이 있었다. 그리고 철사로 만든 것은 지그재그로 구부려 긴 손잡이 아래 삼각형 혹은 사각 형의 '손'을 만든 것이다. 또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모양은 쇠로 만든 것과 비슷하나 화롯불 속에 꽂아 둘 수가 없어 서 불을 헤집거나 다독거린 다음 곧 꺼 내 다른 곳에 보관해야만 했다. 대개 불손은 화로마다 별도로 준비돼 있어야 했다.

따라서 사랑방, 안방, 건넌방 등 방마다 화롯불을 담아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안방 화로에는 인두가, 사랑방이나 건넌방 화로에는 불손이 꽂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두가 안방 화로에 꽂혀 있는 것은 어느 때고 옷감의 구김살을 펴거나 직물을 재단할 때 손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고, 불손은 단지 화롯불을 뒤적이거나 다독거리는 데만 사용되므로 사랑 방, 혹은 건넌방 화로에 꽂혀 있게 마련인 셈! 이 불손도 화롯불이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게다가 산림법이 크게 강화되고 연탄, 석유 등의 사용이 보편화하면서 목재 땔 감을 장만하는 일이 극히 어려워지자 가차없이 아궁이를 고치고 화로를 버리는 대신 시골 농가에서도 도시처럼 이제는 대부분 연탄이나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화롯불은 긴 긴 겨울밤 과 함께 우리와 아주 친밀했던 정다운 친구였을 뿐이고 이는 불손도 마찬가지 운명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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