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인]관광버스 기사 조성철 씨

▲ 조성철 관광버스 기사

“여행은 다 맡겨” 나는 1인 여행사

아침 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지는 초가을. 이제 조금 있으면 파란 하늘 아래 세상 온 천지에는 빨간 단풍물이 들기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봄과 가을 반짝 일해 일 년을 마련하는 사람. 우리나라 방방곡곡이 좁다고 누비는 사람. 가을 행락철을 맞아 이번 호 ‘김포인’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면 남녀노소 누구나 안 타본 사람이 없는 관광버스 기사 양반을 만나봤다.

한낮에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운 오후 북변동 공영주차장으로 기사 양반을 만나러 갔다. 주차장에 가니 버스 전체에 멋진 조인성의 사진을 뒤집어 쓴 관광버스가 한 대 있다. 그런데 버스가 45인승 대형버스가 아닌 25인승 중형버스다. 버스 외관에는 16인승 리무진버스라 써 있다. 버스 앞에 도착하니 짧은 머리에 금목걸이와 금팔찌로 목과 팔을 두른 기사가 반갑게 맞는다. 조성철 씨다. 버스를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한 뒤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에 봤던 버스보다 작다. 작은 버스로 바꾼 이유가 있나?
“틈새 시장을 노려 버스를 바꿨습니다. 45인승 대형버스 운행하는 건 경쟁도 심하고, 요즘은 3~4가족이 모여 여행가거나 소규모 친구 모임 등이 많아졌더라고요. 좌석을 리무진으로 안락하게 꾸며 편안하게 여행갈 수 있는 시장을 노린 거죠. 아직은 예전 고객들이 대형버스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주위 동료들에게 연결해 주고 있지만 차차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어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 기사가 작은 버스로 바꾼 결정적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길을 떠난 조 기사 일행. 어르신들이 묵을 펜션에 거의 도착했는데 대형버스가 들어갈 길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어르신들은 가져간 짐을 이고 지고 1km 이상 걸어 들어간 것. 이곳저곳 풍광 좋은 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펜션들. 하지만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은 덕에 진입로는 겨우 승용차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많다. 은퇴 후 친구들 몇몇과 여행을 즐기러 떠난 길이 고행길이 된 것을 보고 조 기사는 결심했다.
 

-중형버스 이용은 주로 어떤 분들이 하나?
“친한 친구 가족이나 친족 몇 가구가 여행가려면 각자 승용차를 이용하거나 승합차를 렌트해야 한다. 길도 막히고 운전하려니 얼마나 힘들겠나. 그런 분들이 주로 이용한다. 또 모임의 회원 수는 많지만 여행에 모두 같이 갈 수는 없는 일이고, 나이 드신 분들의 모임 때도 많이 이용한다. 기억에 남는 일행으로는 외국에 살다 친지 방문차 한국에 나온 분과 그 분의 친척들과 9박10일간 전국을 일주한 경우다.”

 -사업 마인드가 대단하다.
“관광버스 업계에서 현행 법적으로 지입차는 없다. 하지만 관광버스 회사를 운영하려면 버스 10대가 기본인데, 버스 한 대에 2억원이 넘는 현실에서 그 만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실정은 회사에 명의를 두고 자영업을 하는 지입차가 대다수다. 회사로 일이 들어와 회사에서 기사들에게 분배하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의 일은 기사 스스로 영업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영업력이 좋은 기사는 월 수입이 1천만원이 넘을 정도로 대단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사는 버스 할부료에, 회사 지입료에 적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갈수록 경쟁은 심해져 요금은 떨어지고. 남과는 다른 특화된 영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지난 2000년부터 관광버스 운전대를 잡은 조성철 기사. 15년이 넘게 관광버스를 운행하는 데엔 그만의 노하우가 있을 터.

“저는 단순히 어디로 가자는 일이 들어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여행 그 자체를 손님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손님들이 ‘단풍철이니 설악산 쪽으로 가자’ 하면 맛집과 숙박, 연계할 수 있는 관광지 등을 제가 계획해 드리는 거죠. 주위 동료들에게 묻기도 하고 제 경험도 꺼내고. 요즘은 인터넷이 유용하게 쓰이죠. 관광버스 기사는 팔방미인이 돼야 하죠. 갑자기 급체한 손님들 대비용으로 수지침도 배워야 하고요.”

전국 어디든지 고객이 원하는 곳에 안내하지만 주로 봄이면 꽃구경하러 남쪽으로, 가을엔 단풍명소로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에 국내 명소는 그의 손바닥 안에 있다. 하지만 매번 같은 곳을 다녀야 해 지겨울 수도 있겠다.

“저도 처음 가보는 곳도 많아요.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곳이 우리나라죠. 그리고 여행은 언제, 누구와 갔는지가 중요하죠. 그래서 항상 새로운 기분입니다. 똑같은 적은 한번도 없어요.” 우문에 현답이다.

김포에서 나고 자란 조성철 기사. 김포에 적을 두고 지금껏 지낸 탓에 김포 내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고객이다. 한번 그의 버스를 이용한 사람은 평생 고객이 된다.

“아버지가 관광버스를 하셨어요. 대학 나오고 어디 조그만 회사 다니다가 아버지 하시는 일이 경제적으로 훨씬 더 매력이 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도 뛰어들었죠. 처음엔 스포츠센터 회원 통근버스를 주로 하고 주말에만 고객을 모아 운행했는데, 점점 자신이 붙고 단골이 생기면서 관광 전세만 전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곳을 다녀야 하는 직업. 좋은 점도 많지만 애환도 많을 터.

“관광버스 기사라는 직업은 매여 있지 않아 좋고, 정년도 없어 자신만 성실하면 이보다 좋은 직업은 별로 없을 거예요. 산을 좋아하는 기사들은 주로 산악회 손님들을 유치해 같이 산행도 하고, 낚시 좋아하는 기사라면 낚시동호회 회원들과 주로 떠나죠. 돈도 벌고 낚시도 하고. 이렇게 개인 취미까지 활용하는 기사도 많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죠. 버스값만 한 대에 2억원이 넘는데, 요즘 관광버스에 노래방 기계 하나 없으면 손님들이 화내죠. 대형 TV에, 조명에, 음향시설에 다 갖추려면 천만원은 훌쩍 넘게 들죠. 그런데 음주가무로 떠들썩하게 놀다가 경찰에 걸리면 벌금만 3백이고 운행정지도 100일 나오죠. 요즘은 많이들 자제하시는 편이지만 사실 나이 드신 분들은 평소에 노래방 가기 어렵잖아요.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주었으면 합니다.”

아직은 한창 나이인 조성철 기사. 이 정도 사업수완이면 버스회사를 꿈꿀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조성철 기사는 “전 이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있습니다. 명절 땐 집사람이 돈벌어 오라고 등 떠밀어도 쉬고, 일할 땐 열심히 하고, 나이 들어 힘들 때까지 열심히 하렵니다.”

유난히 조 기사의 목에 금이 번쩍번쩍해 무겁지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끝내 그 말은 묻지 못했다. 가을 한낮의 태양이 조 기사의 금목걸이 마냥 밝게 빛나는 오후였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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