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김종오 대한항공 기장




기장과 부기장이 수평관계일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있어
조종사는 희소성 높고 앞으로도 수요가 많아 장래성 밝아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길목인 김포. 김포시청 하늘 위에는 5분이 멀다하고 비행기가 지나간다. 공항에 내리기 위해 한껏 고도를 낮춘 비행기. 쳐다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비행기 유리창 안 사람이 보일 정도다. 수없이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며 저 커다란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의 세계가 궁금해졌다. 25년차 민항기 조종사인 김종오 기장을 만나 조종사의일 상과 조종사라는 직업에 대해 물어봤다.

출근은 비행기 출발 2시간 전까지

-회사 출근은 어떻게 하나.
“일반 직장인들처럼 매일매일 9시까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은 없다. 비행 스케줄이 나오면 그 날짜와 시간에 맞춰 공항으로 출근한다. 자기 책상이 있고 자신만의 컴퓨터가 있는 그런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공항으로의 출근을 자세히 말해 달라.
“보통 비행기 출발시간 2시간 전까지 공항 내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한다. 사무실 안에는 브리핑 룸이 여러 개 있는데 룸 문에는 각각 비행기 번호표가 붙어 있다. 그 중 내가 타고 갈 비행기 번호가 붙어 있는 룸으로 들어간다. 함께 운항할 부기장이 각종 비행자료-비행계획서와 날씨 정보 같은-를 준비해 오면 함께 검토한다. 시간은 한 30분 정도. 그러고 나선 객실 승무원들을 불러 합동으로 그날 비행에 대해 회의를 한다.”
-비행기에 탑승하러 갈 땐 일반 승객과 똑같은 절차에 따라 하나? 아니면 다른가.
“일반 승객과 똑같은 절차 대로 게이트를 통과한다. 물론 검색대는 일반 승객과는 달리 승무원 전용 검색대가 있어 줄 서고 그런 것은 없다. 전 세계 공항이 다 마찬가지다. 출발 1시간 전 탑승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비행기에도 자동차처럼 시동을 걸기 위한 키가 있나.
“비행기 시동을 위한 키는 없다. 문을 열기 위한 열쇠는 있지만 정비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탑승하기 전 문을 열어 놓고 있기 때문에 비행기 문을 열려고 열쇠를 사용한 적은 없다. 비행기 조종석에 앉으면 전원 스위치를 ON해서 비행기 내부에 에어컨 등 전원을 넣는다. 엔진 시동은 출발하기 직전에 한다.”
-공항에 가서 보면 조종사들은 바퀴가 달린 검은색 가방을 끌고 다니던데, 그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나.
“뭐 특별한 건 없다. 비행자료와 면허증, 여권을 빼곤 개인사물이다. 한번 나가면 며칠씩 있다오기 때문에 일반 여행객들과 같다.”

모든 절차는 체크리스트를 보며 작동

-영화를 보면 조종사가 조종석 앞과 천장에 붙어 있는 각종 계기판의 스위치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이 있던데.
“물론 몇십 년을 다뤄 본 비행기라 눈을 감고도 조작할 수 있다. 하지만 외워서 조작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의 경우를 위해 모든 스위치 조작은 순서에 따라 체크리스트를 보고 확인하며 하도록 정해져 있다.”
-조종은 기장과 부기장 두 명이 하던데,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기장은 비행기 전체를 지휘, 감독하는 사람이다. 또 최종 결심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부기장은 기장을 보조한다. 기장과 부기장 중 한 명이 직접 조종할 때 다른 한 명은 모니터를 하는 게 원칙이다. 누가 조종하고 누가 모니터하는지는 기장의 마음이다. 기장마다 다르지만 내 경우에는 부기장에게 조종을 많이 맡기는 편이다.”
-자동항법장치가 많이 발달해 일단 하늘로 올라가 순항중일 땐 특별히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직까지 그럴 수는 없다. 물론 자동차처럼 핸들을 쥐고 좌우방향을 열심히 돌리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하는 그런 건 없지만 국경을 통과하거나 정해진 곳에서 반드시 통신을 해야 하고 모니터를 열심히 해야 한다. 사실 졸리긴 하다.”
-미국 등 먼 곳으로 갈 땐 10시간 이상, 가까워도 동남아 지역은 5시간 이상 비행해야 하는데 조종석에서 뭘 하고 있나.
“주로 대화를 한다. 기장이나 부기장 중 한 명이 필요 이상 과묵한 사람일 경우는 힘들다. 물론 너무 다변인 사람일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적응을 잘 한다. 음악도 듣고 게임하는 조종사도 있다는 글이 인터넷에 있다는데 나는 지난 25년 동안 그런 경우는 한번도 못봤다.”
-블랙박스가 있어 대화 내용이 다 녹음된다는데 부담스럽지는 않나.
“법적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녹음된 것을 들어볼 수 있어 불편한 것은 없다. 뭐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니 문제될 것도 없고.”
-10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게 힘들지 않나.
“규칙에 8시간 이상 12시간까지는 조종사가 3명 탑승한다. 3명이 한 명씩 교대로 쉰다. 그 순서는 기장 마음대로 이고. 12시간이 넘는 비행에는 4명이 탑승해서 2팀이 맞교대 한다.”
-유교정신과 선후배 질서가 확연한 우리나라 실정상 부기장 입장에서 기장과의 대화가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예전 내가 부기장일 땐 군인 출신인 조종사들이 많았다. 그 땐 기장이 부기장을 쥐어박는 일도 있었다. 요즘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내 지론은 기장과 부기장이 수평관계일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할 때도 부기장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려고 하는데 글쎄 그건 내 얘기일 수도 있겠다.”
-부기장에서 기장이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
“비행기에서 최고 책임자가 됐다는 거 외에 큰 차이는 별로 없다. 먼저 부기장 때보다 월급이 오르고 복장에서는 금테가 3개에서 4개, 모자에 금박으로 된 월계수 잎사귀가 붙는다는 거. 아 참, 조종석에 앉을 때 왼쪽에 앉는다는 게 가장 큰 차이다.”
-외국에 매일 다니니 여권에 도장 찍을 자리가 없겠다. 현지에 도착해서는 무얼 하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승무원에게는 여권에 도장을 찍지 않는다. 현지에 도착한 후에는 일반적으로 24시간에서 48시간 대기하다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게 된다. 대기하는 동안 행선지만 알리면 특별히 행동에 제약은 없다. 처음 조종사 생활할 때는 관광도 열심히 다니고 하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올 때의 컨디션 조절을 위해 주로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래야 시차 때문에 오는 피로를 줄일 수 있다. 시차적응에는 운동이 특효약이다.”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기쁨

하늘을 날고 싶은 것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로망일 터. 역사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날기 위해 여러 가지 발명품을 만들어 시도했었다. 놀이동산에서도 하늘을 나는 기구들의 인기는 제일 높고 시간과 돈이 허락되는 사람들은 경비행기 조종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미가 아니고 직업으로 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들에게는 애환이 많을 듯. 조종사로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물었다.
-조종사라는 직업을 택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글세. 창공을 날고 싶다던가 그런 멋진 이유가 나에겐 없어 미안하다. 대학 다닐 때 졸업하면 꼭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그냥 남들따라 학교 다니고 졸업하고 취직했다. 직장을 다닐 때 그냥 재미가 없었다.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다른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신문에 광고를 접하게 됐다. 대한항공에서 민간인 조종사를 육성하기 위해 비행훈련원을 열고 훈련생을 모집한다는 광고였다. 무엇에 홀린 듯 지원했고 합격해 조종사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제주도 훈련원에서 2년 교육을 받는 동안 무섭지도 않고 그냥 멋진 자동차를 운전하는 기쁨 같은 것을 느끼며 이 길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멋진 말을 기대했는데 실망이다. 조종사는 매년 발표되는 직장인 연봉 순위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직업이겠다.
“조종사는 직급이 달랑 2단계뿐이다. 기장과 부기장. 그래서인지 동료들이 경쟁관계가 아니어서 사이가 무척 좋다. 조종사들끼리는 거의 형제와 같아 취미생활도 같이 하고 봉사도 함께 하고 많은 시간 함께 어울리며 지낸다. 또 하나 좋은 점은 일반 직장과 달리 책상 서랍에 내일 일이 쌓여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같은 또래 직장인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 매일 같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도 없고 일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특히 남들 놀 때 일해야 하는 특성상 친구나 친척과의 교류가 어려운 점은 늘 아쉽다.”
-엄살이 심한 것 아닌가.
“바깥에서 보는 것과 달리 조종사의 세계는 많이 열악하다. 좁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해야 하고 1만m 이상 높은 고도에서 지내기 때문에 저산소와 시차에 많이 시달린다. 민감한 사람일 경우 시차 때문에 무척 힘들어 한다. 시차로 인한 고충은 만성 피로와 시도 때도 없는 졸음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시차 때문에 가족과 리듬이 달라 어울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차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다. 내 경우에는 평범하지만 운동이 시차극복에 제일 좋더라.”
-일을 하면서 특히 괴로운 점은 무엇인가.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와 부기장에서 기장으로 승진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가 크다. 대한항공 같은 경우 부기장 15년차도 기장이 못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시험은 많은 조종사들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국토부와 회사 자체에서 1년에 3~4번 운항능력 시험을 본다. 회사 시험은 시뮬레이터로 하지만 국토부 시험은 시험관이 동승해 노선 심사를 한다. 신체검사도 매년 있고, 등급에 따라 3년 또는 5년마다 실시하는 영어시험도 있다. 시험에 불합격하면 재시험을 봐야 하고 재시험에서도 불합격하면 해직된다.”
-조종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할 만한 직업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전체에 조종사는 4천명 정도 있는 희소성 높은 직업이고 앞으로도 수요가 많아 장래성도 밝은 직업이다. 정년이 보장되고 정년 후에도 자신이 원하면 촉탁으로 더 일할 수 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계기비행 말고 직접 비행기 조종은 어떻게 하나. 자동차 운전과 비슷한가.
“비행기 조종은 두 손과 두 발을 다 사용해야 해 자동차 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난이도가 높다. 우선 왼손은 핸들을 잡고 조종한다. 비행기는 3차원 공간을 이동하기 때문에 핸들이 좌우, 상하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왼쪽으로 돌리면 비행기 왼쪽, 위로 들면 비행기가 위로 상승한다. 오른손은 액셀러레이터(가속기)를 조작한다. 발은 페달을 밟는 데 사용하는데 페달은 꼬리날개의 방향타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움직이게 한다. 비행기는 자동차와 다르게 허공에 떠 있기 때문에 핸들만 움직이면 비행기의 조종을 할 수 없다. 꼬리날개가 중심을 잡아주므로 꼬리날개의 방향타도 함께 움직여야 방향을 마음먹은 대로 바꿀 수 있다.”
-얼마 전 고액연봉을 받는 조종사들이 파업이다 뭐다 해서 말들이 많았다.
“고액 연봉보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조종사들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우 연간 비행시간이 1천시간이 넘는다. 유럽과 가까운 중국을 보면 연간 90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려면

우리나라 조종사는 대한항공에 2천5백명(외국인 5백명 포함), 아시아나항공에 1천5백명, 저가 항공사에 250명 정도밖에 없어 희소성이 높다. 더욱이 요즘 웬만한 대학을 나와도 청년실업이니 뭐니 해서 취업이 어려운 상황이고, 졸업 때까지 1억원이 든다는 로스쿨을 나와 변호사가 되도 예전과 달리 신분이나 수입이 열악한 현실에서 조종사는 꽤 매력적인 직업이다. 어떻게 해야 조종사가 되는지 물어보았다.
-앞에서 대한항공에서 설립한 비행훈련원에서 교육받고 조종사가 됐다고 들었다. 훈련원이 지금도 있나.
“대한항공은 그동안 조종사를 군 출신 조종사를 영입해 충당해 왔다. 그러다가 조종사 수급을 위해 1989년 제주도에 비행훈련원을 세우고 훈련생을 교육해 조종사로 육성했다. 당시 교육비는 전액 무료였고 오히려 훈련생들에게 적은 비용이지만 수당도 지급했다. 나는 운 좋게 훈련원에 들어가 돈 한푼 안들이고 교육받은 후 조종사가 됐지만, 곧 대한항공 역시 비용 부담 때문인지 2002년부터는 본인 부담으로 교육생을 선발해 교육하다가 2008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10년 동안 비행훈련원에서 배출돼 현재 대한항공에서 근무중인 조종사는 1천명에 달한다. 전체 한국인 조종사의 절반이다.”
-그렇다면 현재 조종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은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항공대학교와 같은 항공전문 대학교에 입학해 비행을 배운 뒤 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어 군복무를 마친 후 항공사에 입사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비용은 제일 적게 들지만 군에서 조종사로 선발돼 복무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두 번째 방법은 일반 대학을 졸업한 후 울진 등지에 설립되어 있는 사립 비행훈련원에 입교해 교육을 받는 것이다. 교육 기간은 2년이며 연간 학비는 5천만원 이상 총 1억원 정도 든다. 훈련원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저가 항공사에 취업할 수 있다. 저가 항공사에서 일정 이상 비행시간을 확보하면 대형 항공사에 취업할 수 있다. 마지막 방법으로는 외국에서 비행기 조종사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방법이다. 기간은 3년 정도 소요되며 체재비 포함 2억원 정도 비용이 든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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