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소통하는 법 배워

연극배우 김미숙 연희단 거리패 배우장

 

▲ 분장하던 중에

"남들처럼 거창하게 난 연극이 아니면 안돼! 라는 것은 없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광화문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대학로를 알게 됐죠.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았고 그때 처음 연극이란 것을 봤어요. 완전히 다른 세계였죠. 저 특별해 보이는 세상에서 나도 특별해질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처음 해봤던 것 같아요"
 양곡에서 하루 예닐곱 번 버스가 다니던 학운리라는 동네가 있었다. 지금은 이젠단지와 골드벨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대단위 공업단지가 들어서있지만, 삼십년 전 그 지역은 뻘을 개간한 논과 논 사이에 작은 마을 하나씩이 자리 잡은 김포의 변두리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개구리를 잡고 찔레를 까먹던 시골소녀 하나가 대한민국 연극계에 조용하지만 힘 있는 한 획을 긋고 있다.

시골 소녀, 연극의 자유로움에 취하다.
 목련이 뚝뚝 뛰어내리던 봄날, 김포출신 연극인 김미숙씨를 만나러 대학로로 향했다. 70명이 넘는 단원들을 거느리고, 전용극장까지 있는 '연희단거리패'. 배고픈 연극배우란 말이 있지만, 연희단거리패는 단원들에게 월급을 준다. 그만큼 연극계에서는 자리를 잡았다는 반증일 터. 그 곳에서 김미숙 씨는 배우들의 수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을 때만 해도 제 꿈은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것과 잘 놀고먹는 것이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극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방송대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배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동아리방에서 밤을 새가며 연극에 대해 배워가는 동안 행복해 하는 저를 깨달았죠. 배우란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제대로 된 연극을 해 보고 싶어 연희단거리패에 들어갔다. 그러나 연극을 시작한 지 5년이 넘게 지나서야 비로소 연극을 알게 되었다. 연희단거리패 15기로 입단한 그녀는 연극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함께 살아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연극배우는 다른 예술와 달리 관객과 직접 소통하죠. 그렇기 때문에 배우 자신은 물론 무대, 관객,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세계와도 소통하고 감지해야 해요. 물론, 처음 입문을 하면 신체훈련을 하고 발레도 배우고 전통악기나 우리소리도 익혀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상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잘 소통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타인에게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죠. 그래야만 배우가 맡은 역할을 배우의 몸속에 녹일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극이 뭐냐는 단순한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서슴없이 연극은 '소통'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연극을, 배우를 바라보는 관점이 확고했다. 개념을 가진 배우가 표현해 내는 연극무대는 그만큼의 힘을 가질 것임이 분명하다.


 그녀는 기자와 같은 나이인 마흔 다섯이다. 하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 마흔 다섯에 싱글 여배우로 사는 삶이 어떨까 궁금했다.
 "나에게 마흔이 넘어서 이런 인생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어렸을 때는 서른 이후의 삶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지금 마흔 다섯 싱글의 삶은… 남들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많이 사유하고, 조금 더 다른 이들과 교감할 수 있어서 좋아요. 싱글이라서 가능한 일일 테니까요. 연극하다 보니 결혼을 못했어요.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여력이 없었다는 게 정확하겠죠. 그런데 요즘은 결혼을 하고 싶어요. 함께 이야기하고 같이 걷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딱 좋은데 소개좀…(웃음…)."

▲ 플라멩코를 추는 어머니

내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한 무대에 서고 싶어
 "연극배우로서의 거창한 꿈은 없어요. 지금이 행복하기 때문이죠. 내 두 다리로 설수 있는 힘이 있을 때까지 무대에 연기자로 서고 싶습니다. 지금의 동료들과 하얀 머리가 되도 함께 무대에 서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건강해야죠"
 기자가 김미숙 씨를 찾아간 날은 토요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병원을 다녀오느라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여나 늦게 나타났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자 아무 말 없이 기자를 극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배우들의 연습이 한창인 그곳에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동료배우 하나가 나흘 전 소천했기 때문이다.
 "어제 공연을 마치고 쓰러졌어요. 3일 내내 장례식장과 무대를 오갔죠.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배우가 다 저와 같은 형편이예요"


 인터뷰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피곤해보이고 비쩍 마르기까지 한 그녀의 모습에 공연이 잘 될까 했던 걱정은 '코마치후덴'이라는 공연이 시작되자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방금까지 쓰러질 것 같았던 그녀는 사라지고 50여명의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고, 박수치게 하고, 기립하게 만드는 배우 김미숙이 있었다.
 "내년이 우리극단 창단 30주년입니다. 30주년 공연 끝내고 나면 1년 정도 안식년처럼 쉬면서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도 정리하고 산이나 세계 여러 나라를 걸어보고 싶다는 게 제 남은 계획입니다."


 기자는 그녀가 부러워하는 남들 다 가는 길을 가고 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부모로서의 삶을 산다. 하지만 1년 뒤 안식년을 꿈꾸지는 못한다. 결혼을 하고 싶다는 꿈과 지난 시간을 정리하고 세계 곳곳을 걷고 싶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배우 김미숙의 삶이 부러운 이유다.                 
윤옥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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