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골렛토(Rigoletto)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원작 '쾌락에 빠진 왕'의 스토리를 그대로 옮겨 작곡한 오페라다. 하지만 왕을 모욕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베니스 공연에서 허가를 받지 못했다. 베르디(Verdi)는 주인공 왕을 만토바 공작(il duca di Mantova)으로 바꿨다. 하지만 공작의 연애행각, 저주에 관한 부분도 수정을 요구받았다. 기존 프랑스어 대본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대대적인 수정이 이뤄진 이유다.     


 거의 모든 오페라의 주인공 역할은 언제나 테너가 도맡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꼽추광대인 바리톤 리골렛토가 주인공으로 나와 눈길을 끄는 인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ㆍ춘희)',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와 함께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작곡가 베르디의 3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귀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리골렛토 같은 꼽추 광대를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바그너의 웅장하고 권위적인 음악과 비교해 순진하면서 서민적인 면이 강하다. 스트라빈스키(Stravinsky)는 "매우 순수하고 높은 창작력"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베르디 작품에 언제나 등장하는 부녀간의 동지적·헌신적 사랑을 표현하는 점도 색다르다. 베르디의 작품에서 부녀지간은 언제나 서로간의 모든 실수를 서로 감싸주는 관계다. 아버지와 딸은 실수와 불명예스러움을 감춰주는 동지적 협력관계임을 스토리를 통해 보여준다. 여기서 아버지의 역할은 언제나 그렇듯이 바리톤이며 딸의 역할은 역시 소프라노가 맡고 있다.


 리골렛토는 만토바 공작의 저택에서 광대노릇을 하는 천한 꼽추광대지만 아무도 몰래 숨어서 키우는 딸 질다만은 그의 유일한 위안이다.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이 수 없이 여자를 납치하면서 능욕할 때 그 공작을 위해 충성을 다하지만 그의 딸만은 그 같은 비극을 당하지 않도록 몰래 숨겨두고 외출도 금지시킨다. 운명적으로 질다와 만토바 공작(가난한 학생이라고 그녀를 속인다)은 우연히 마주치게 되고 질다는 사랑에 빠진다. 만토바 공작은 여느 때처럼 질다를 납치해가고 리골렛토는 딸이 납치된 걸 안 후에야 그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저주임을 깨닫는다. 이후 리골렛토는 딸을 베로나로 보내면서 청부살인업자와 계약을 맺고 공작을 죽일 계획을 세우지만 몰래 아버지의 대화를 엿들은 딸 질다가 공작대신 죽기로 다짐한다. 공작의 옷을 입은 질다는 청부살인업자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서 대신 죽는다. 리골렛토는 멀리서 들려오는 공작의 노랫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시체의 주인공이 자신의 친딸임을 확인하고 또다시 '저주'를 부르짖는다.


 리골렛토에서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 스파라 푸칠레(베이스. 남성가수의 최고저음파트) 역시 아주 독특한 역할로서 이 작품의 또다른 캐릭터로 선을 보인다. 헐리웃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를 내세움으로써 파격적인 범죄 현장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주인공 리골렛토의 이기적인 성격을 십분 표현하였다. 리골렛토는 다른 여인의 고통에는 언제나 비웃고 웃어넘겼지만 그 범행이 본인에게 닥쳤을 때는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여 복수하려고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 전형적인 ‘악인’역이다. 그러나 악인도 사랑하는 딸 앞에서는 무한한 부성애를 보여주는 베르디 특유의 부성을 강조하는 것 또한 이채롭다. 그 유명한 공작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이'를 한번 들어보면 바람둥이 공작이 여자를 단지 물건처럼 여긴다는 저속한 내용의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 아름다운 멜로디와 익살에 많은 테너들로부터 영원히 사랑받는 노래가 되고 있다.

김현정

수원대 음대 교수/ 오페라 김포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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