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뿐 아니라 서비스까지 파는 게 장사

주변 도움으로 이만큼 성공...받은 만큼 돌려주고자 봉사
열심히 돈 벌어서 나 같은 못난이들 도우며 살고 싶어

대명항 입구에 자리잡은 한우굼터. 한우굼터는 매월 한 차례 장애우들을 초청해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료와 함께 보내온 사진에는 밥을 먹는 사람들 뒤로 색소폰을 멋지게 부는 남자가 있다. 맛나게 식사하라고 음악까지 연주해 주는 남자.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김기호 사장을 만났다.

밥 장사하니 밥으로 봉사한다

“영농법인 만들어 농사를 짓고 살았죠. 추수하고 나면 면사무소에 전화해서 수남정미소에 쌀을 맡겨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했지요. 누구냐고 묻길래 그냥 촌놈이라고 대답했어요.”
얼마 만큼 쌀을 맡겨 놓았는지 물었다.
“에이 얼마 안 돼요. 20kg짜리 50포대 정도였죠. 몇 년 계속했어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김 사장. 하지만 금액으로 따져도 한 포대에 5만원만 잡아도 250만원이나 되는 큰 금액이다.
“2년 전부터 이 장사를 하게 됐는데 밥 장사를 하니 이젠 쌀보다도 밥으로 기부하는 게 닛지 않나 생각했어요. 도시락을 만들까 했는데 이곳이 시골이다보니 도시락은 별 효과가 없을 거 같더군요. 그래서 시설을 소개받았어요. ‘소망의집’이라고 지적장애우들이 사는 시설인데 원생이 모두 20명 정도예요. 한 달에 한 번, 1년이면 12번이니까 대충 금액이 비슷하더라고요.”
소망의집 원생들에게 따뜻한 밥을 대접할 땐 주위 지인들이 모두 모여 함께 봉사를 한다. 색소폰 동호회 회원들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후배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른다.
“누구나 기회를 만들어주면 봉사할 수 있어요. 나 혼자는 큰 도움을 줄 수 없지만 같이 하면 커지지요.”
주위에서 물품을 후원해  주기도 하지만 김 사장은 물품보다는 몸으로 함께하는 봉사를 더 원한다. 물품은 한계가 있지만 몸은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날건달이던 김 사장, 농사에 뛰어들다

잘 나가던 농부 김 사장. 한때는 100만평을 위탁받아 농사를 지었다.
“27살에 결혼했는데 그때까지 반 건달이었어요. 결혼은 했겠다 뭐 하고 살까 고민이 많았죠. 태어나고 사는 데가 양곡이라 보이는 건 논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농사 한 번 안해봤지만 농사짓기로 맘 먹었죠.”
1996년 김 사장은 모내기 할 논 1평도 없이 농사에 뛰어들었다.
“땅 빌려주면 농사 열심히 지어주겠다고 땅 얻으러 다녔죠. 후배들 5명하고 영농법인 만들어서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어요. 주위에서 많이들 도와주셨죠.”
열심히 뛰자 1년 뒤 1997년에 벌써 논이 10만평으로 늘었다.
“1평 농사지어서 그때 돈으로 600원 받았어요. 그저 인건비만 받은 셈이죠. 그래도 믿고 따라와주는 후배들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일했어요.”
김 사장은 목표를 100만평으로 잡았다.
“동막으로 강화로 서산으로 큰 농장들을 찾아가 그동안 어떻게 농사 지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짓겠다고 구상을 보여주고 믿어달라고 했죠, 그랬더니 어느덧 정말로 100만평이 되더군요.”
논이 100만평이니 일년내내  이곳저곳 다니며 농사짓는 떠돌이 생활이 계속됐다.
“100만평 됐으면 목표를 200만평 잡아서 뛰어야 하는데 떠돌이 생활이 계속되니 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편안한 거 찾는 건 다 똑같은가 봐요.”

소 키우는 목장으로 사업 확대

“소를 키우면 꼼짝없이 집에 있게 되잖아요. 그래서 소를 키우게 됐어요.”
암소를 구입해서 소를 키우기 시작한 김 사장. 김 사장은 여기서도 사업수단을 발휘해 얼마 지나지 않아 200두의 소를 키우는 목장주가 된다.
“200마리 중에 암소가 50마리가 있는데 아침이고 밤이고 아무 때나 새끼를 낳는 거예요. 새끼 받으려면 꼼짝도 못하고 하루종일 우사에서 기다려야 하지요. 그냥 기다리고 있는 게 뭐해 보였던지 주위에서 색소폰을 배우라고 권하더라고요.”
동호회에 가입해 색소폰을 배우게 된 김 사장. 아무도 없는 우사 안에서 열심히 색소폰을 불었다. 이때부터 봉사생활이 시작된 것.
“제가 가입한 곳이 김포한강색소폰동호회라는 덴데 이 동호회가 여기저기 봉사를 많이 다녀요. 회원들의 직업이 다양하니까 봉사도 다양하게 할 수 있고요. 그동안 제가 주위에서 받은 게 많다보니 이제는 되돌려줄 때도 됐다 생각하고 봉사에 열심히 따라다녔죠.”
 
고깃집 차리고 장사에 뛰어들다

“소를 키우다보니 키우면 키울수록 적자가 나는 거예요. 송아지 한 마리를 250만원 주고 구입해서 2년 정도 400만원어치 사료를 먹여 키우는데 다 큰 소 한 마리 값이 500만원밖에 안 돼요. 그러면 인건비는 고사하고 원가도 안나오지요. 그래서 궁리하다가 직접 고기를 팔기로 했어요.”
농사만 짓다 장사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터.
“처음엔 좋은 재료를 내고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음식장사는 서비스를 잘 해야 하는 거라는 걸 깨닫게 됐죠. 서비스란 손님이 원하는 걸 주는 게 서비스죠.”
역시 사업수완은 어느 종목이나 다 통하는가 보다.

지금은 위탁 농사 50만평에 소 200두, 식당까지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김기호 사장.
“이만하면 성공한 셈이죠.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도와준 덕분입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고 돈 많이 벌어야지요. 그래야 나같은 못난이들 도우며 살 수 있지요.”
김 사장의 행복한 도움과 봉사가 기다려진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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