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떨림이 하나가 되는 순간 소설가 소재원을 만나다

소재원 작가

소재원 작가와 장원화 선생

‘손이 아닌 발로 쓰는 작가’ 소재원을 하성고 국어교사인 장원화 선생이 만나 소 작가의 작품과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재원 작가는 전북 익산 출신으로 2008년 ‘나는 텐프로였다’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장원화 선생은 김포신문에서 ‘NIE코너’를 날카로운 직관과 유려한 필체로 장기간 담당해 오며 신문바로읽기에 힘써 왔다.  <편집자 주>

소재원은 한국 문단에 공식 등단한 적이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1983년생인 그가 26살에 처음 쓴 장편소설은 <비스트보이즈>로 영화화되었으며, 그후 28세에 쓴 『소원-희망의 날개를 찾아서』가 이준익 감독의 영화<소원>으로 또 만들어지면서 2013년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하는 『아비』, 『밤의 대한민국』, 『형제』, 『터널』 등 다수의 소설과 감동적인 가족소설 『아버지 당신을……』, 팝아티스트 낸시랭과 함께 절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청춘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청춘』을 발표했다. 2년 6개월의 공백기 끝에 열 번째 작품 『그날』을 들고 돌아온 소재원 작가를 그의 집에서 멀지 않은 운양동 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페의 한쪽 벽면을 책으로 뻑뻑하게 채운 책장에는 ‘사랑으로 행하라’라고 새겨진 작은 나무판이 기대어 있었다. 그 앞에 앉아 따끈한 홍차를 몇 모금 마시자, 맑은 눈을 반짝이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가 들어왔다.

『그날』은 일본군위안부와 한센병환자에 대한 소설이다. 체험하지도 않은 역사를 쓴 계기는?

경기도 광주의 ‘한사랑마을’에 봉사를 다닌다. 가는 길에 ‘나눔의 집’이 있어 우연히 들어갔고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20대 초반에 처음 봉사활동을 한센병 어르신들이 계신 곳에서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센병 어르신들의 소록도 집단수용도 다 일제시대였다는 연결점을 찾아내는 순간, 글로 써서 남겨야겠다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일본군위안부와 한센병환자라는 일제시대의 아픈 역사를 대중에게 잘 전달하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순정’이라는 중심축을 작품에 넣었다. 좋아했다가 힘들면 쉽게 헤어지는 사랑이 아니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찢기지 않는, 영혼의 떨림이 하나가 되는 그런 깊은 순정 말이다. 
위안부 이야기는 다 실패한다며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울하니까 보기 싫다는 것이다. 다함께 가난했던 시절 정을 나누던 향수를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희망적으로 마무리된 역사도 아니다. 때문에 어둡게 그려질 수밖에 없고, 코믹을 어설프게 첨가했다가는 욕먹기 딱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더 오래되기 전에, 더 잊혀지기 전에 기록해 두어야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지금 생존해계신 위안부 할머니가 쉰다섯 분이다. 다들 연로하셔서 곧 그 분들의 증언 자체가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일본군위안부의 아픔을 소재로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선 작품을 나는 떠올릴 수 없었다. 한센병 환자들이 소록도에서 고통 받았던 시간은 또 어떤가?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너무 묵직해서 일반인들이 쉬 다가설 수가 없다.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를 학자들만 알고 전문가들끼리만 가치를 논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 누가 보아도 쉽게 이해되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문학적 완성도가 떨어진다거나 너무 쉽게 쓴 것 아니냐는 지적은 괘념치 않는다.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그날』을 같이 읽고 일본군위안부라는 아픈 역사를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겠다. 한센병 어르신들이 얼마나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끔찍한 고통 속에 살다 가셨는지 그 아픔에 같이 울었으면 좋겠다. 대학가는 공부도 중요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우리 역사를 자주 만나게 해주면 어른이 되었을 때 더 성숙해지지 않겠나. 씨앗이 시간을 먹고 싹을 틔우듯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날』에서 위안부 소녀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며 목숨을 버리지 않도록 돕는 ‘춘희’의 말처럼, 우리가 잊어버리면 우리의 역사는 남의 역사가 되어 난도질된다. 우리는 우수한 민족이며, 빛나는 역사가 함께 한다는 긍정적인 인식과 함께 우리가 잘못한 역사는 깊이 반성하고, 상처 입은 역사에 대해선 잊지 말고 당당하게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일본은 나쁘지만 일본인은 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착하다는 대다수의 일본인은 다시 아베를 선택했다. 아베는 일본군위안부를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인 보수정치인이다. 중국은 어떤가? 안중근 의사까지 중국인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재원 작가를 대중에게 알린 작품이 『소원』이라고 생각한다.

인터파크도서에 일일연재했던 소설이다. 늘 시간에 쫓겼기 때문에 사실 문장에는 많이 신경 쓰지 못했다. 문장보다는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두었던 작품인데, 아동성폭행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다루면서 쓰는 동안 참 힘들었다. 그 아이에게 끔찍한 상처를 준 어른들을 고발하는 글을,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공범인 내가 적는다는 자체가 죄악이라는 생각에 늘 아팠다.  온갖 추악한 짓을 하는 악마도 아이를 건들었다는 내용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소원』에서 ‘악마조차 하지 않은 것이 아동성폭력’이라고 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처벌이 너무 가볍다. 이런 사회에 침묵하는 것 자체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 출간과 함께, 아동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화가 나고 부끄러웠지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며 힘들게 쓴 작품이다.
물론 내가 그 아이의 고통을 다 받아들이고 내것으로 녹여내서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일을 문학적으로 담으려 했기 때문에 나는 늘 부끄러울 것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작품은 창작이 아닌 기록을 하고 싶었다.’라고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이의 아픈 이야기에 감히 창작을 들이밀 수 없었다는 한계와, 창작뿐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문학일 수 있다는 가능성, 이 두 가지를 담은 문장이었다. 

창작과 기록은 모두 문학일 수 있다는 것으로 들린다. 소재원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은?

나에게 문학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내가 책임지고 돌봐야하는 어르신이 58명이다. 문학은 내게 그분들을 먹여 살릴 수 있고, 내가 가장 돈을 잘 벌 수 있는 사업체다. 이런 나의 생각을 순수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렇다면 불멸의 작품을 쓰기 위한 노력은 순수하고 가족에게 버림받은 분들을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는 나의 노력은 순수하지 않은가? 순수문학이냐 아니냐 이전에, 이타적인 목적 없이 글을 쓰는 것보다는 이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되묻고 싶다.
문학인은 지식인이 아니다. 글을 잘 쓰는 전문가일뿐이다. 모든 지식과 역사, 철학을 아우르며 정답을 내려주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마음’을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날』을 출판했을 때, 베스트셀러 순위가 다 일본 소설이었고, 우리나라 작품은 『그날』 하나가 유일했다. 이전 작품들을 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우리나라에는 인생의 뭔가 거대한 것을 우쭐거리며 가르치려드는 문학이 많다고 본다. ‘문학은 이것이다.’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문학은 떡볶이니, 떡볶이만 먹으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을까? 문학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하며 다양한 형식과 시도를 존중하는 문화 속에서 꽃피어야 할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절대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한국 문학이 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나는 문학을 배워본 적이 없다. 처음 글을 쓴 이유도 단순히 유명해지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외로웠던 순간이 많았는데 그런 나에게 문학은 돌파구였다. 아직도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은 못 버린다. 외롭다는 마음이 꽤 오래된 것이라 금방 사라지지 않는데다, 내가 유명해질수록 어려운 분들을 더 안정적으로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내겐 크기 때문이다. 그래도 많이 변하고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다는 그 마음에서 벗어난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봉사를 끊으면 소재원 작가의 글도 못 보는 것인가? 

기초생활수급자의 사각지대가 참 많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 이게 대물림이 되다 보니, 진짜 필요한 분들이 법의 굴레에 걸려 혜택을 못 받게 되는 경우가 꽤 된다. 예를 들면, 자식이 늙고 병든 부모를 버리고 떠나 연락도 없는데 법적으로는 자식이 있는 것으로 분류되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못한다. 그분들의 열악한 삶은 상상을 넘어선다. 온기 없는 냉골에서 제대로 된 끼니도 챙겨드시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똥구녕 찢어진다는 말이 그냥 나온다. 사회의 구조적 결함으로 발생한, 또는 가족에게 버림을 받은 이런 분들을 물론 내가 다 챙겨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직접 보면 모른 척 할 수가 없다. 내가 만나게 된 그 분들만이라도 책임지고 도와드리고 싶다는 것뿐이다. 책을 한 권씩 더 내고 조금씩 유명해지면서 해가 갈수록 그분들을 돕는 것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부는 돈을 쓰면서 보람된 기억을 갖자는 거다. 만약 12월 20일에 쓴 돈을 기억하냐고 물었을 때 얼마라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거창한 액수가 아니라 자신이 보람을 느끼는 정도로, 정해진 날에 만 원씩이라도, 힘들게 번 돈을 기억할 수 있도록 가치 있게 쓰는 방법 중의 하나가 기부이다. 

소중한 사람에게 기부하고 싶은 자신의 작품이 있다면?
『아버지, 당신을……』과 『그날』이다. 독자들은 『터널』을 많이 좋아해주시지만 너무 주관적으로 쓴 글이라 나는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 당신을……』은 당시 나의 모든 것이 잘 스며들어있다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날』은 잊지 말아야할 것을 기억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세월호로 피울음을 삼킨 2014년에는 봄이 오지 않았다. 꽃이 피지 않았던 그 계절에 학생기자들과 함께 세월호에 대해 토론하고 학교신문을 만들면서, 70년이 넘게 마르지 않는 또 하나의 눈물 웅덩이, 일본군위안부피해자를 기획으로 잡아 취재해 나갔다. 변영주 감독의 영화 <숨결>을 보고 종범이는 큰 눈을 꿈뻑거리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라고 했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더 나아가 노벨문학상에 거론되는 이창래 작가의『척하는 삶』을 읽고, 학생들에게 그 책을 감동적으로 소개했다. 착실한 세희는 도서관에서 곧장 『척하는 삶』을 대출해서 읽고는 며칠 뒤 고백했다. 2장 읽고 안 넘어가서 그냥 반납했다고…….
지난 주, 문학 수업을 하던 중 작품과 관련성이 있어, 혹시 나영이라는 이름을 아느냐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가장 뒷자리에 앉은 가을이가 안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영이라는 흔한 이름 중에 내가 누굴 얘기할 줄 알고 손을 드느냐고 물었더니, 아동성폭행이라고 했다. 원래 잘 우는 가을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실에 있던 30여 명의 학생들이 거의 다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놀랐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렇게 끔찍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얼마나 많이 반복되다 잊혀지는데, 이 많은 학생들이 나영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게 마법 같아서, 이유를 물었다. 영화를 봤다고 했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소원>이라는 영화라고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울었다며 다들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영화는 소재원 작가의 소설 『소원』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나영이는 잊혀지지 않았다. 이것이 소재원 작가의 존재 이유이고 문학적 가치다.
그에게는 ‘약한 자들을 대변하는 작가’라는 별칭이 붙어있다. 입이 있되 말할 수 없고, 눈물은 흐르는데 소리낼 수 없는 사람들의 억울한 사연을 기록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잊혀짐을 강요당하는 그들의 여린 등을 뒤에서 꽉 끌어안아 쉽고 편안한 목소리로 잊을 수 없게 노래하기 때문일까. 그런데 약한 자를 대변하는 슈퍼맨인 그는 그리 강해보이지 않았다. 3월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 한 어르신의 산소호흡기를 떼야 한다고 했다. 죄의식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인세가 가장 적게 들어오는 12월과 1월을 지내면서,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분들에게 고정적인 기부를 하기 위해 차를 팔고 컴퓨터를 팔았다는 그는 이제 대출을 받을 생각이란다. 지원이 끊어지는 순간 냉골에서 이 겨울을 어떻게들 나실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법인을 설립하면 부정의 온상이 될까 봐, 독자 11명과 카톡으로만 교류하며 기부를 이어가고 있는 약한 자신을 대변하며 그가 말했다. 한 달에 만원씩 50명 정도만 꾸준히 마음을 모아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이 고비만 넘기면 세상 모든 사람에게 다 감사하며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다는 면죄부를 입언저리에다 돌려 붙이고 문학은 무엇이냐를 세월아 네월아 읊어대는 문학유령, 작가나부랭이들보다, 자신이 만난 세상을 어쨌든 적어내고 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드는 그가 더 문학적이다. 힘든 어르신들을 끝까지 돕겠다는 목적이 분명한, 티 묻은 그가 훨씬 순수하다. 그래서 당신, 이 겨울 꼭 견뎌내길 바란다. 만약에 올해 그리움처럼 꽃 피는 봄이 다시 온다면, 매서운 바람에 탄탄하게 길들어진 어깨 굽혀 작은 꽃망울 매만지는 그대를 운양동 어느 골목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기를 고대한다. 지난 봄 잃어버린 내 어린 친구들을 본 듯 눈물겹게 인사를 나누리.
그날, 돌아서는 당신은 당신의 순정을 받아들인 한 착한 여자와, 술맛보다 더 좋다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나누어 들고, 나란히 둘만의 따스한 불 켜진 동굴 속으로 돌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가 되길. 행운을 빈다.

 장원화/하성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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