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넘어 교육하는 미술관 만들고파


사명감으로 망와 수집…학위 논문도 그림 모티브도 망와에서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 야박한 현실이 안타까워

고촌 현대 힐스테이트 아파트 단지를 지나 야트막한 산자락이 나온다. 보름산.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이름처럼 산도 둥글둥글하다. 산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따라 가다보면 산이름을 딴 '보름산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이름모를 들꽃도 피었고, 갖가지 모양의 크고작은 장독대가 나란히 줄을 지어 있다. 익살스런 웃음을 짓고 있는 석상, 쌀쌀하면서도 화창한 날씨 탓에 고운 단풍이 들어가는 낙엽들… 그 안에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탐나는 장소에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동양화가이자 '망와(望瓦:지붕 용마루중 마감하는 기와. 암막새라고도 한다)'라는 조금은 특이한 옛 것에 애정을 갖고 있는 '보름산미술관'의 장정웅 관장을 날씨 좋은 가을날에 만나보았다.

-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심부름으로 아버지 친구 댁에 갔는데 그 집 현관에 그림이 하나 있었다. 그 것을 보고 정신없이 빨려 들었다. 그 후로 그림공부를 시작했고, 중학교 때 조선시대 마지막 3대 화가인 소정 변관식 선생에게 사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집에서 반대도 심했다. 미술을 전공하면 잘 해야 학교 선생, 아니면 극장 간판이나 그리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그림이 좋았다. 평생의 일이 그런 것이 아닐까. 타고나는 게 있는 것 같고, 예술은 더욱 그렇다. 타고나는 재주가 7~80%고 노력이 나머지다. 그림이 좋았고, 평생의 일이 되었다. 이후 동양화를 그리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망와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지방으로 스케치를 갔다가 망와를 보게 되었다. 요즘이야 옛 집이라고 하면 국가차원에서 보수·관리도 하고, 지방문화재로 지정해서 지원도 하지만 예전에는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러다가 귀한 것들이 다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후손에게 전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겠다는 걱정과 함께 사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 전국을 이 잡듯 다니며 망와를 찾아다녔다."

- 수집가로서 망와의 매력은 무엇인지?
"워낙에 골동품, 특히 옛날 목가구에 관심이 많았다. 목가구를 보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장인을 집안으로 들여 방과 집에 맞게 가구를 만들었기에 집마다 방마다 가구가 다 달랐다. 망와도 마찬가지였다. 망와에 관심을 갖고 보니까 망와 역시 집마다 그 모양이 다 달랐다. 똑같은 것이 없었다. 망와는 많은 의미가 있다. 화재, 홍수, 전염병 등 나쁜 것을 물리치고 다산과 복을 기원하고자 지붕 끝에 망와를 달았다. 학위논문도 망와에대해 썼고 이후 그림의 모티브로도 삼게 되었다. 20년째
수집을 하고 있고, 약 4~5백개 정도 소장하고 있다."

- 어떤 미술관을 만들고 싶은지?
"지금까지의 미술관 혹은 박물관은 작품을 전시하고보여주는 차원에서 끝났다. 요즘에는 체험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 체험을 넘어서서 교육을 하는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어린이 교육뿐만 아니라 주부들, 특히 3,40대 주부들에게 진정한 아름다움, '미(美)'가 무엇인지, 삶에 '아름다움'을 어떻게 적용할 지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수백 명이 와서 들썩거리는 것보다는, 몇 명이라도 와서 여기 전시된 작품을 보고, 내가 그 작은 그림을 보고 인생이 바뀐 것처럼 작품을 보고 삶이 변화될 수 있었으면 좋
겠다. 그런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

장정웅 관장은 유럽여행을 하면서 작은 마을 구석까지 박물관·미술관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문화를 누리고 즐길 줄 알며, 예술이 삶에 녹아 들어가 있는, 그리고 그런 것을 지원해주는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것을 보며 아직까지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야박한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현실은 그렇지만 몇 년 지나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더 늘어날 겁니다. 예술은 단 시간에 결과를 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힘들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장 관장. 1년에 한, 두 차례 음악회를 열고, 한국적인 것을 담아내는 젊은 작가들의 전시회도 꾸준히 개최하면서 지역문화예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고자 노력하는 그 중심에 '보름산미술관'이 있다. 재개발 속에 미술관 터를 지켜내면서, '이만한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고 할 만큼 아름다운 '보름산미술관'은 가을 정취를 담뿍 담고,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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