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의 발전을 꿈꾸는 '얼리 어답터'


인터뷰 시간에 늦은 기자는 헐레벌떡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어긴 기자에 대한 언짢음인지, 내심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 못하는 기자 앞에 이내 도착하여 "기다리다가 차 안에서 컴퓨터 작업을 했는데, 그것을 마저 끝내고 오느냐고 늦었습니다"라고 말한다. 15분 남짓되는 짜투리 시간에 컴퓨터 전원을 키고 인터넷 접속을 하며 일을 하는 정해창 대표의 바쁘게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67세의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회사는 시그네틱스코리아라는 곳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 자본 100%로 설립된 회사다. 이후 군대를 갔고 제대 후에는 일본합자회사인 오리엔트 시계에 입사했다. 당시 일본에 출장을 여러 번 다니면서 우리와는 많이 다른 일본 문화와 발전된 일본의 환경을 접했다. 이후 태평양 화학에서 일을했다.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면서 더 열심히 일을 했고,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왔다. 쉽지 않았지만 나름 뿌듯함도 많았고, 보람도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기계나 도구에 대한 관심도 많아 자동차도 남들보다 일찍 샀다. 컴퓨터가 도입되면서는 컴퓨터 시스템이 변할 때마다 새로운 컴퓨터를 샀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기계가 나오면 남들보다 먼저 구매한다.

'요즘 말로 평생을 얼리 어답터로 사셨나봐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웃으며 답을 한다.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다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앞선 기술, 선진 문화를 빨리 배울 수 있었고, 기계나 기술만이 아니라 경제관념이나 삶의 방식도 얼리 어답터로 적응된 듯하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상황에 질질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발 앞서 움직이고, 행동하고 있었다. 인터넷 상에 운영하는 까페가 몇 개나 되고, 블러그는 물론 SNS 활동도 활발히 한다고. 올해 정 대표의 나이는 67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여실히 증명해 준다.

김포와 인연을 맺다
정 대표는 김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고 말한다. 강화도로 놀러갔다가 오는 길에 아파트분양광고를 보고 갔는데 마침 미분양된 것이 몇 채 있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계약금을 걸어 놓고 김포로 이주했다. 그 때가 1996년, 아직 김포군이던 시절이다.

"당시 신도림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 앞에 도림천이 있었는데 창문도 못 열어 놓을 만큼 냄새가 고약했어요. 시끄럽기도 했구요. 그래서 은퇴하면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죠. 안식구도 이왕 이사하는 거면 깨끗한 새 아파트에서 시작하자고 했죠. 그래서 김포로 들어왔습니다. 서울에서도 가깝고, 조용하고… 그래서 이곳에 정착했어요."

너무 앞만 보고 내달려서인지 퇴직 후에는 말 그대로 '후리(free)한 삶'을 살고 싶었다고. 잠시 관광회사에 다니기도 했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라 그만두고 '내 사업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에 빵집을 시작했다. 빵 파는 것은 당연하고 테이블과 의자롤 놓고 까페자리도 만들어 놓은 넓은 매장이었다. 요즘이야 까페를 같이 운영하는 곳이 많지만, 당시는 빵만 진열해놓고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다.거기에 배달서비스도 했고, 배달 10회 이용시 무료로 쨈을 제공하는 쿠폰행사도 했다. 요즘이면 신기할 것도 없지만 당시는 동네 빵집에서 생각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저녁에 팔고 남은 빵을 다음 날 아침 근처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으로 날랐다. 그러기를 몇 년, 사우동이 개발되고 대형마트가 입점하면서 그 안에 빵집이 생겼다고 한다. 경쟁력이 떨어질 꺼라 생각하고 얼마 안 되어 빵가게를 접었다.

김포의 변화를 논하다
"젊어서는 솔직히 정신없었죠. 처자식도 있고, 먹고 사는 것에 몰두하다보니 봉사활동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은퇴하고 나서 지역사회를 위해 무언가 봉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김포에 와서 처음으로 시작한 활동이 아파트입주자대표와 통장이었다. 꽤 오랫동안 이 일을 했고, 그러다 보니 김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겨났으며, 문제점도 보이기 시작했다. 고속화도로 주변 방음벽 설치 요구를 비롯하여 김포도시철도 문제, 일산대교 통행료 문제 등 김포의 현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계, 학계, 종교계 등 여러 단체 대표들이 모여 만든 '행동하는 김포시민들'에서 활동하며 김포의 발전과 변화에 대해 강경한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정 대표는 "나는 지금 김포에 주소지를 두고 사는 김포사람입니다. 내가 살고 싶어 들어왔고, 내가 사는 동네가 더 좋아지고 발전하기를 원하는 거죠. 김포철도 문제만 해도 그래요. 그래서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대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갈 길은 멀지만, 보다 살기 좋은 김포를 위해 노력한다는 보람은 누구보다도 큽니다. 후배들에게 좋은 김포를 물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정 대표는 '미지근하게 남들을 쫓아가기보다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는 리더형'이라고 자신의 성격을 말한다. 그리고 '비판적인 마인드보다는 긍정적인게 좋다'고 한다. 현재 중앙일보 언론사 차량 운전업무를 하면서 전국구로 다닌다는 정 대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확신과 신념에 가득찬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은 퇴근 후 넥타이 대신 매고 다닌다는 볼로타이에 달린 하회탈의 넉넉한 웃음과도 닮았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열정과 희망이 담겨있었다.

이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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