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온 인생, 즐거우면 그만이죠”

꽃에 반해 커피향에 취해 보낸 반평생

생명 있는 것 다루고 싶어... 꽃 농사에 뛰어들어
커피 내릴 때 향은 너무 황홀해... 하루 10잔 마셔
커피마시고 노래들으며 보내는 여유...이런 게 곧 삶

운양동 용화사 옆 공터에 자리잡은 화원 ‘꽃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기자기 자그마한 화분에 담겨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 사이로 귀에 친숙한 노래가 잔잔히 깔린다.
화원 귀퉁이에 마련된 주방에서는 진한 초콜릿색 향기 좋은 커피가 주전자에서 끓고 있다. 꽃 화분 사이사이 저마다 다른 모습의 탁자와 의자들. 찬찬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구석구석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처음 보는 이상한 모습이지만 친근함이 정겹다. 틈만 나면 웃는 통에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한 하회탈 같은 순박한 모습의 주인이 땀에 절고 흙이 잔뜩 묻은 옷차림으로 기자를 맞는다. ‘꽃향’ 주인인 최용수(57) 사장이다.
이 남자의 사는 법이 궁금해진다.


생명 없는 거 다루는 것은 의미 없어

젊어서부터 전자제품 대리점에 심야전기 기기 판매업에 정신없이 사업을 벌이던 최 사장. 어느날 왜 이렇게 사나 회의가 들었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도 대박나는 것도 없는 삶. 어느날 문득 회의가 들었어요. 마침 IMF가 터지자 미련없이 접었지요. 그리고나선 해보고 싶었던 거 하고 싶어 덜렁 홍대 농대에 진학했지요. 살아있는 거 다루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6년 넘게 농사를 배웠다. 가진 돈으로 김포에 왔다.
“지금 이 곳에 화원을 차렸지요. 처음엔 ‘시크라멘’을 기르다 ‘앤시다’라는 꽃을 키우게 됐어요. 누가 일본에서 앤시다 5뿌리를 가져와 키우다 남은 하나를 제가 40만원을 주고 샀어요. 그걸 키워서 재미를 봤죠.”
노란색 꽃을 피우는 앤시다는 향이 멀리 퍼져 화원 밖에 지나가던 사람이 무슨 향이 이렇게도 좋냐고 하며 문을 열고 들어올 정도였다.
“기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앤시다를 키워서 전국에 보급시켰어요. 그런데 한 4년 키우다보니 집사람은 앤시다 꽃가루에 알레르기가 생기고 저는 꽃가루 때문인지 호흡기가 안좋아지더라고요. 그런데다 겨울에도 꽃을 키우려면 난방비가 큰 짐이지요. 꽃값은 그대로인데 기름값은 자고나면 오르니까요.”
최 사장은 겨울에도 난방할 필요가 없는 야생화로 종목을 바꿨다.

집안에 꽃을 두면 얼마 안가 누구든지 행복 느끼게 돼
“꽃은 희한해요. 물론 먹는 농사도 중요하지만 꽃을 키우다보면 그 기쁨 모르는 사람은 몰라요. 하나하나 연구해서 키우다보면 아름다운 꽃으로 결과가 나올 때 엄청 기쁘지요. 집안에 꽃을 두다보면 그 가치를 곧 알게 돼요.”
야생화로 종목을 바꿔 꽃 농사를 짓다보니 겨울엔 시간이 남았다.
“겨울에 한번 물 주면 4,5일은 가지요. 그러니 별 할 일이 없더군요. 그래서 손님들 편하게 꽃 구경하라고 탁자도 놓고 커피도 끓여내기 시작했어요.”
맛있는 커피 있다는 곳은 멀리 강릉까지도 한숨에 달려가곤 했던 최 사장. 어느새 커피 내리는 솜씨는 여느 전문가 부럽지 않은 수준에 올랐다.
“화원이 길 옆에 있어 지나가다 꽃 구경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들어와서 꽃 구경하다가 쉬다가 커피 마시다가 수다 떨다가 가라고 쉼터를 만들었어요. 몇 시간씩 앉아 있어도 꽃 덕분인지 머리가 맑아진다고 해요.”
이렇게 커피 대접받은 사람들은 돌아갈 때 한두 푼씩 커피값에 보태라고 돈을 놓고 가기도 한다. 주인이 없을 땐 손님들 스스로 커피도 마시고 도시락도 가져와 먹고 가곤 한다.


외롭고 힘든 사람들 얘기 들어주는 게 내가 할 일
“오는 손님들 살면서 힘든 일 들어주는 게 내가 할 일이지요. 직장생활에 가정사에 어려움과 곤란함을 겪는 사람들 얘기 들어주다보면 울면서 왔다가 속이 후련하다고 웃으면서 나가곤 하지요. 그게 보시예요.”
단순히 꽃을 팔고사는 화원에서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인생사 고달픔 들어주는 상담자로 그동안 입소문이 꽤 퍼져 이야기 들어달라고 찾아오는 사랃들도 있다.
“좋아하는 꽃 키우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 마음껏 듣고, 하루종일 향기 진한 커피 마음대로 먹고 이렇게 살다보니 어느날인가 이래도 되나 싶은 게 죄스러운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사는 게 곧 삶이겠지요. 인생이라는 게 이 땅으로 소풍나온 건데 즐거우면 돼지 뭐 다른 게 있나요.”
1000평 남짓한 농장. 한켠에 축하할 일 있는 사람들이 조촐히 파티도 할 수 있는 자연속 장소를 만드는 게 꿈이라는 최용수 사장.
“돈보다도 행복한 사람들 만나며 나도 즐겁고 싶어요. 열심히 살면서 꽃에도 취하고 커피향에도 취하며 사람들과 함께 하려 합니다.”
맛난 커피 한잔 대접받고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최 사장은 분홍색 작은꽃이 피어 있는 조그마한 시크라멘 화분 하나를 손에 쥐어준다.
“집안에 꽃이 있으면 마음이 행복해질 겁니다. 이쁘게 키우세요.”최 사장의 행복한 삶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해본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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