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의 꿈은 계속된다

인생 고비마다 변신...고난 끝에 항상 성공
문화와 예술로 김포만의 브랜드 만들어야

촉망받는 유도 꿈나무에서 재기 넘치는 코미디언으로, 국내 최초로 업종의 벽을 뛰어넘어 성공한 성격파 연기자로, 특종 낚아내며 인정받는 신문기자로, 여기에 머물지 않고 새정치를 만들겠다며 단기필마로 출마를 결심한 정치가로 인생 고비고비마다 과감히 도전한 변신의 귀재. 지난 7.30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1,884표만을 얻은 채 쓴잔을 마신 이재포(55). 선거가 끝난 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번 선거에 3등했지만 다음 번에는 꼭 1등한다

-무더위와 무소속이라는 한계에서 지난 선거에서 고생 많았다.
“수천 번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게 보통 아니더라고요. 뱃살이 쪽 빠졌어요. 뱃살 빼는 데엔 그 어떤 운동보다 효과가 있더라고요. 무소속이라는 한계 때문에 힘들었어요. 선거자금도 부족했고. 그래도 유세하는 차에 생수 한 박스를 던져 주고 간 시민도 있었고, 유세차를 따라다니며 이름을 불러주던 분도 있어 가슴 뭉클했어요.”
-널리 알려진 유명세에 비해 지지한 표가 의외로 적었는데.
“선거 초기엔 분위기가 좋았어요. 함께 박수 쳐 주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그런데 제 전과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부터는 표가 빠지는 소리가 우수수 들리더군요. 제가 연예인 생활 하면서 부업으로 술 장사를 오래 했어요. 손님들 접대에 할 수 없이 술 몇 잔 마시고 운전하다 그렇게 된 건데 사실 할 말을 없죠. 이런 생활 속의 소소한 전과도 문제지만 모 후보 같은 그런 전과가 사실 더 나쁜 거예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잘못한 건데. 그래도 동료 연예인 한 명 부르지 않고 정책과 현실 정치 비판으로만 3등 했으니 만족합니다. 비싼 수업료를 물었지만 앞으로 자신있어요.”
-국회의원이 됐다면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전 의원이 되면 세비를 일체 받지 않겠다고 공언했어요. 새정치를 만들고 싶었지요. 제가 무소속이니 여야의 중심에 서서 양쪽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국회 정론관에서 매일 이재포의 대국민 브리핑을 하려고 했어요.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 24시를 잘못된 점을 꼬집었을 거예요. 그렇게 매일 매일 하다보면 의원들이 정신차리지 않을 수 없지요. 이게 제가 말하는 새정치입니다.”

변신은 무죄, 개척자의 정신으로 고비마다 역전

한창 잘 나가던 코미디언 이재포. 거칠 게 없던 그도 세태의 변화 앞에서는 거취를 고민하게 됐다.
“어느 날 보니 코미디가 스탠딩 개그로 변해가고 있더군요.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대표적인 프로그램을 비롯 방송 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하나 둘 폐지되고요. 고민하다가 연기로 업종을 변경하기로 마음먹었죠. 근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때까지 코미디언에서 연기로 변경한 사람이 없었고, 다른 방송국으로 옮긴 사람도 없던 때였거든요.”
연기하기로 마음먹은 이재포는 드라마 피디 집에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찾아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눈치.
“3년 정도 그렇게 쫓아다녔을 거예요. 마침내 저를 이쁘게 봐 주시던 선배 연기자의 도움으로 국군홍보단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 다음에는 ‘수사반장’ 같은 드라마에도 출연하게 됐고요. 그러다 ‘은실이’, ‘야인시대’에 출연하면서 그야말로 빵 터졌죠.”
개성 넘치는 성격파 배우로 입지를 다지던 그. 그러나 드라마 제작 환경이 외주제작 체제로 변해가면서 그는 또 새로운 변신을 하게 된다.
“신아일보에서 홍보이사 제의가 왔어요. 그래서 그 일을 보게 됐는데 신문사에 있다보니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보이는 거예요. 문화체육관광부에 출입하겠다고 요청해서 기자가 됐죠. 기자라는 직업이 꽤 매력이 있더라고요. 연기자일 땐 피디와의 관계에서 제가 을이었는데 기자가 되고보니 피디와 제가 동급이 되더군요. 얘기도 잘 통하고. 처음엔 취재를 나가면 사람들이 '몰래카메라'인 줄 알더라고요. 비록 전보다는 수입이 무척 줄었지만.”
기자로서의 이재포는 국회에 출입하면서 진가를 나타낸다.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술품 비자금으로 특종을 낸 것.
“국회 출입기자 자리에 공석이 생겨 떼를 써 들어가게 됐어요. 국회에 들어가보니 잘 챙겨입은 국회의원들이 매일 싸우니까 정말 재밌더군요.”
그래도 나름 잘 나가던 인생에서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가장으로서 쉽지 않은 일일터.
“집사람이 내조를 잘해 줘요. 제가 이러이러해서 이걸 해보겠다고 설득하면 두 말하지 않고 적극 밀어줍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바로 집사람이 저를 신뢰해서 그렇습니다. 지금도 단 1원도 딴 주머니 안 찹니다. 배 고프면 제가 밥 차려서 아내에게 주고요.”
기자생활 하다보니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의리의 사나이 이재포의 눈에는 썩은내가 진동하는 국회의 모습이 보였다.
“국회를 출입하니 별별 모습이 다 보이더군요. 의원이라는 사람들 칼 끝 피해 다니는 도둑놈이 많더군요. 제가 나서서 새정치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정치는 새롭게 도전하는 꿈. 이번에도 쟁취한다

“김포는 북한과 강 하나로 나뉘어 있는 분단의 현장이지요. 6.25참전 16개 나라의 문화를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포는 공항과도 가까이 있어 제대로 된 인프라만 있으면 수많은 관광객을 모을 수 있지요. 문화와 예술로 김포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생력 있는 김포, 스토리가 있는 김포, 제가 만들 수 있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다음 번에 쉽게 지지 않을 겁니다. 아니 반드시 국회에 입성해야지요.”
얼굴만 알려진 그저 그런 연예인줄 알았는데 열변을 토하는 이재포는 그야말로 다부진 포부와 꿈이 있었다.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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