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 해병, 시를 품다


껑충한 큰 키, 바짝 치켜 깎은 짧은 머리, 군살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가냘퍼 보이기까지 하는 잔근육으로 빠진 몸매. 김근열(49) 시인의 첫모습은 강인한 군인의 모습이다. 순한 눈망울만 빼곤.
바다라곤 볼 수 없는 충청도 공주 태생인 김 시인. 아이러니하게도 백령도, 강화도를 거쳐 지금은 월곶면 조강앞바다에서 평생 바다를 벗삼아 나라를 지키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전혀 무적 해병의 모습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게 감수성 풍부한 시를 쓰는 시인. 시인에게 군인과 시와의 관계를 물었다.

시를 통해 부대원과 소통

-얼마 전 임 병장 사건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을 텐데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저번 강화도에서 일어난 사고 부대는 제가 근무도 했던 곳이고 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저와 같은 부사관들은 군대 내에서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지요. 젊고 자유롭게 살다 군대에 온 대원들을 잘 보살펴 강한 군인으로 만드는 게 임무예요. 제가 시를 쓴다는 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시 쓰는 시인으로서 욕도 할 수 없고요.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합니다. 시를 써서 그런지 제가 설득력이 좀 있어요. 대원들의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제가 살아온 경험도 이야기해 주고. 제가 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대원들은 존경심도 갖더라고요.”
-대원들과 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까
“제가 시를 완성하면 제일 처음 독자는 와이프에요. 와이프가 읽어보고 평도 해주고 좋다고도 해주고 지적도 합니다. 오랜 기간 이렇게 하다보니 제 집사람은 고급 독자가 다됐어요. 부대에서도 대원들에게 낭송해주고 설명도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더군요. 나중에 찾아와서 시 쓰기에 대해 물어보는 대원도 있고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훈련으로 고달픈 가운데서도 나름 열심히 시를 쓰는 대원도 있어요.”

시를 쓰다보면 육체의 고통도 뛰어넘을 수 있다

-김 시인이나 대원들 모두 근무하면서 시를 쓴다는 것은 만만치 않을 텐데
“ 처음에 대원들과 면담할 때 아이들에게 군대 오기 전 자신의 삶을 글로 써 보라고 하면 글을 쓰지 못해 이모티콘인가요? 그런 걸로 종이를 채우는 대원도 있어요. 대원들에게 늘 얘기합니다. 창작의 기쁨은 육체의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요. 육체는 비록 피곤하지만 시를 쓰는 과정에서 정신은 맑아지고 행복해진다고요.”
-시를 처음 접하는 대원들이 많아서 시에 대해 얘기하기가 쉽지는 않지요?
“대원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국민들 거의 대다수의 수준이 김소월에서 멈춰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는 의미를 함축한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느끼고 편안한 시만을 읽으려고 하지요. 시에는 시를 쓰는 시인의 인생과 철학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거기에서 독자들은 감동을 받게 되고요. 시를 쓰면 스스로 반성이 됩니다. 따라서 어려운 일도 참을 수 있고요.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화가 나도 저 자신 대원들에게 욕도 안하게 되더라고요.”

다재다능했던 김근열 시인, 글쓰기의 매력에 빠져

공중에서 고교시절까지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축구와 탁구 선수도 했고, 브라스밴드부에 들어 악기도 좀 다뤄봤다는 김 시인. 그러나 그 시절부터 다른 학생들의 연애편지도 대필해 주는 등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친구들이 군대에 가면 10장 이상씩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어요. 친구들이 휴가 나와선 편지좀 짧게 쓰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직업군인을 택해 근무를 하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은 늘 김 시인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이것저것 많이는 썼는데 이게 잘쓴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시 창작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습니다.”
당시 김 시인은 일주일에 두 번 집으로 퇴근하던 때였다. 부대 안에서는 인터넷도 할 수 없었고. 공부할 수 있는 이틀 동안 김 시인은 잠을 반납한 채 밤을 새워 수업을 따라갔다.
“신경림 시인 등 당대의 훌륭한 교수님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지요. 치열하게 공부할 수 있어 행복했고요.”

한 사람이라도 내 시를 보고 감동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쉬우면서도 편안한 시, 그러나 그 안에 뼈가 들어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시 공부도 더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노래하는 연시는 아직도 힘들다는 김 시인. 시를 쓰고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는 김 시인. 김 시인은 출퇴근하며 보는 일상의 모습, 병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풍경에서 모티브 잡아 시를 쓴다.
“한 사람이라도 제가 쓴 시를 보고 감동받는다면 민들레 홀씨처럼 그 감동이 퍼지겠지요. 군대생활과 병행해서 시를 쓴다는 건 힘들고 귀찮을 때도 많지만 그런 희망을 갖고 시를 씁니다.”
56세면 정년. 군인의 길은 짧은 시간만 허락된다. 은퇴하면 시인학교를 만들어 시 보급에 힘을 쏟고 싶다는 김근열 시인. 강인한 전사의 몸에서 나오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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