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표출한 게 시, 할 줄 아는 건 시쓰기 뿐


노인이란 내 나이보다 15살쯤 많은 사람, 나는 항상 젊은 기분으로 산다.
한하운 시비 건립과 유택가는 길 단장은 김포시 문화의 척도이다

기자는 ‘한 단체의 장을 만나 들을만한 얘기가 있을까. 뻔한 자기 자랑일 텐데’ 다소 심드렁한 마음으로 최종월 회장을 인터뷰하러 갔다. 인터뷰 장소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테이블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차를 음미하고 있는 최 회장의 곱고 단아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지나지 않아 기자의 어리석은 선입견은 그대로 사라졌다. 최 회장의 삶에서 나오는 조용조용하고 사려깊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시가 되었다.

곱게 나이 든 여인에게서는 향기가 난다. 장미꽃 진한 향기가 아닌 한적한 시골길 길가에 핀 코스모스의 은은한 향기. 시인으로 김포문인협회 회장이자 대명항 함상공원 문화관광해설사로 바쁜 인생 2막을 보내고 있는 최종월 회장(68) 얘기다.

탄광촌의 문학소녀 섬마을 처녀선생님이 되다

태어나 고등학교시절까지 태백에서 머물던 최 회장은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 국어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첫 부임지는 경남 남해의 자그마한 섬 창선.

“바다라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봤어요. 아버지께서 일본 유학 후 태백 장성광업소에 근무하셨기에 태백에서 태어났지요. 바다를 처음 봤을 때의 그 바다냄새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였는지 교사생활을 서울 아니면 섬 학교에서 하겠다고 마음먹었지요.”

1년여의 섬 학교 선생님 생활을 마치고 섬을 나올 때의 모습을 회상하는 최 회장의 눈에는 아련한 추억이 감돈다.

“첫 정을 쏟은 학생들이었죠.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날 부슬비가 내렸어요. 아이들도 울고 나도 울고. 삼천포를 지나 진주까지 오는 동안 내내 울었으니까요.”

이렇듯 순수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천상 시인인가 보다.

김포를 고향 삼아 문화관광해설사로 새로운 길 도전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 한 최 회장. 십여 년 전 우연한 기회에 김포로 온다. 낯선 고장이지만 최 회장의 눈에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김포는 한마디로 안개의 도시였어요. 마법의 성처럼 아파트가 어느 순간 안개에 잠겨 사라져버리고요. 이곳의 신선한 공기는 서울에서는 맡아볼 수 없었던 것이었죠.”

퇴직 후 편안한 삶을 마다하고 최 회장은 입시학원 국어강사로 또 상담교사로서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역할을 맡아 바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대명항 함상공원 문화관광해설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고민 끝에 지원했지요. 개인시간도 해설사를 하면 좀더 자유롭고요. 특히 대명항은 바다잖아요. 바다냄새도 그립고.”

최 회장은 익숙한 학교를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재미있어요. 길이가 100m 가까운 큰 배라 운동도 되고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설사를 하고 싶어요.”

관람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유익한 해설을 하기 위해 각종 자료를 찾고 함상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얘기도 취재해 해설 시나리오를 만든다.

“급여요? 자원봉사 개념이예요. 교통비와 식대 정도 나오죠. 하지만 그나마도 시의 예산이 줄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해설을 해요. 한 달의 반 이상은 해설사가 현장에 없는 셈이지요. 안타까운 일이예요. 이런 곳에 올 땐 반드시 예약을 하든가 아니면 해설 시간에 맞춰서 해설을 듣고 견학했으면 좋겠어요. 해설을 듣고 보면 많은 것이 달라 보이지요.”

평생 아이들과 함께 하며 터득한 강의 기법으로 해설 역시 탄탄한 내공을 자랑한다.

진심이 담긴, 솔직한 시를 써야

꿈 많던 소녀시절부터 지금까지 ‘시’에 천착해 평생 시에 매진한 최종월 회장. 평생 업인 시의 세계에 빠져든 데에는 아픔이 있다.

“고 3때 둘째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교복을 입은 채 문집 만든다고 설치면 늘 응원해주던 오빠예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니 세상에 없었어요. 모든 것이 헛되다 느꼈지요. 그 아픔을 표출하는 길이 글쓰기밖에 없구요.”

최 회장의 작품은 곧 존재에 대한 고민이 출발점이다. 평생 시를 쓴 시인의 입장에서 시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했다.

“난해한 시는 없어요. 그러나 나쁜 시는 있죠. 시는 어렵다 생각 말고 쉽게 접근해야 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기교 부리지 말고 진심이 담긴, 솔직한 시를 써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한하운 시인 시비 건립되어야

은퇴 후 김포에서 여유로운 삶 대신 해설하랴 시 쓰랴, 협회 일 보랴 젊은이보다도 치열한  삶을 보내고 있는 최종월 회장. 바쁜 틈틈이 써왔던 시를 다시 꺼내 정리하고, 운봉함 갑판 위에서 느끼는 감상을 담은 시를 꾸준히 쓴다. 시에 대한 사랑은 김포문인협회 회장이라는 일까지 기꺼이 맡게 됐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한 문장,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간다는 것이었다’라는 한 구절을 가지고 양평군은 서종면에 소나기마을이라는 황순원문학관을 꾸몄어요. 없는 것도 만들어 관광홍보로 알리는 세상인데 우리 김포에는 한하운 시인이 있잖아요. 장릉부터 유택 앞까지 ‘시인의 길’도 꾸미고 걸포공원에 한하운 시비도 건립해서 문화콘텐츠를 만들어야 해요.”

이제 30만 도시에 어울리는 문화도시를 만들 때라는 최 회장의 말에는 단호함과 결의가 차 있다. 항상 소녀같은 때묻지 않은 고고함, 일에서는 카리스마 넘치는 최 회장. 최 회장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원해본다.

김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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