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탐방·인터뷰 김포사람
[내가 겪은 6.25] 권영주 전 6.25참전유공자회 대곶면 지회장동기 200명 가운데 13명만 살아남아


구성진 피리소리와 함께 물밀듯 몰려오는 중공군과 전투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다치지도 않고 운 좋게 살아남아

올해는 6.25전쟁 64주년. 20살 청년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뛰어든 전쟁터. 불나방처럼 포탄을 향해 돌진하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청년들은 이제는 80이 넘어 허리가 굽은 채 이 날을 추억하고 있다.

전쟁을 모른 채 전쟁이 남긴 평화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들. 머리를 숙여 참전용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참전용사 권영주(84) 어르신의 전쟁 참여기를 들어본다.

대명리에서 외아들로 태어나

대명리에서 태어났어. 8대조부터 거기서 살고 있지. 나는 외독신인데 위로 누님이 5명 계셨지.

대명리에는 철광이 있었어. 지금도 여기저기 구덩이가 남아 있지. 많이 메꿔졌지만. 대명리에서 초지로 건너가는데 소교라고 섬이 있어. 거기까지 철광 굴이 들어갔다는 거야. 굴이 엄청 크다고. 거기 굴에 물이 차니까 두레로 물 퍼내는 일에 동네 분들이 많이 끌려갔다고 하더라고. 내가 쪼그마할 때니까 잘 기억은 안 나.

왜정 때 초등학교 다녔어. 수남초등학교 나왔어. 학생이 32명이었는데 교장 겸 담임선생 겸 혼자 가르쳤지. 수남 나오고 나서 인천 동산중학교에 들어갔어. 그런데 댕기다가 1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학교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집에 와서 농사짓고 살았지.

전쟁을 피해 영종도로 피난

6.25나던 해는 어떻게 가물었는지 못자리 해 놓은 게 다 말라버렸어. 근데 문수산에서 방어하고 있던 군인들 30명쯤이 이쪽 대명으로 후퇴해서 오는 거야. 그래 전쟁 난 줄 알았지.

지금은 대명리에 배가 수십 척이 있지만 그땐 고기잡는 배 두어 척 있었어. 그래 그 군인들이 배를 타고 인천으로 갔어. 그리고 우리들은 전쟁이 났으니까 다 피난가는 거야. 그때 영종에 우리 6촌이 살아서 사촌형하고 몇이서 배를 타고 영종으로 피난을 간 거야. 근데 가니깐 영종도에서 자지도 못하게 하고 어서 피난을 가라는 거야. 그래 밥도 못먹고 되돌아나와서는 세류도로 건너갔어. 물이 바짝 썰 때는 그냥 걸어갈 수 있어서 걸어서 건너갔지.

세류도에 들어가서 좀 있으니까 얘기 들어보니 김포는 내일이나 모레쯤 수복된다고 하더라고. 그래 물때를 맞춰서 바지는 벗어서 머리에 이었어. 젖지 말라고. 영종으로 건너와서는 대명리 가는 배 얻어타고 김포로 돌아왔어.

군인으로 입대, 동두천 6사단에 배속

그러다 20살에 영장 나와서 군인갔지. 김포군청에 모여서 트럭타고 영등포에 가서 기차타고 대구 교육대로 갔지. 훈련이라고 하는 거는 M1총 총알 장전하는 거 하고 구리스 묻은 총 닦는 거만 했어. 대구 훈련을 마치고 50년 12월 28일 동두천 6사단으로 배치됐어. 김포사람들이 몰려다녔는데 떨어지면 죽는 줄 알고. 그래 200명쯤 됐나봐. 200명이 함께 6사단으로 갔지.

6사단 7연대에 배치받았지. 가서 이틀 정도 자고나니깐 새벽에 1.4후퇴가 일어난 거야. 동두천 시민들하고 함께 몰려서 후퇴하는데 철길 근처에서 인민군들이 엎드려서 총을 쏘는 거야 어휴... 양놈들은 후퇴한다고 차하고 포탄들 죄 불질러서 연기는 하늘을 덮고 시체는 그냥 어휴... 그 시체를 타넘고 그냥 후퇴했지. 걸어서 시방 잠실교, 잠실교 건너면 광주야. 밤에 잠실교에 도착했지. 같이 있던 군인 중에 이재철이라고 광주사람이 있었어. 걔가 길을 다 아는 거야. 근데 한강이 얼어서 배를 못 띄우는 거야. 저 건너가 재철이 지네 집이니까 재철이가 배 임자를 데리고 와서 배를 타고 앞에서는 얼음을 깨뜨리면서 강을 건넜지. 그래 재철이네 집으로 가서 우리가 스물몇 명이었는데 밥을 해줘서 먹고 잠을 잤지.

1.4후퇴로 동두천에서 청주까지 후퇴

용인에서 집결하도록 돼 있었지. 그래 용인으로 넘어가다가 공비하고 맞닥쳐서 한 사람이 죽었어. 그래 서로들 죽은 사람을 메고 용인으로 갔어. 보급이 안 돼서 배가 무척 고팠어. 두 명이 배가 고프니까 돌아다니다보니 저기서 돼지를 잡더래. 그래 고기를 사서 우리들 있는 곳 회관으로 돌아왔어. 근데 그걸 신원병이라고 일등중사가 그걸 보더니 그게 뭐냐 묻더라고. 그래 샀다고 했지. 그러니까 그 신원병이가 군인한테 돈 받고 파는 놈이 어딨냐고 화를 벌컥 내는 거야. 그러더니 그곳으로 가서는 누가 돈 받고 팔았냐고 돈 받은 사람을 밝혀서는 신원병이가 칼빈으로 쏴 죽여버렸어. 어휴....

그 이튿날 진천으로 해서 청주까지 후퇴했지. 신발도 다 떨어지고 해서 발이 부르트고 난리였지. 그래 민간인집에 가서는 여자들 저고리를 꺼내서는 발싸개를 하고, 치마고 뭐고 옷이란 옷은 죄 얻어다가 배낭에 집어넣었지. 발싸개 하려고. 그러고 일주일만에 청주에 내려간 거야. 청주가 집결이야.

진천에서 처음 전투에 참여

청주 도립병원에서 훈련을 받다가, 일주일 있었드랬나. 거기서 다시 진격을 했지. 그때까지는 전쟁 구경도 못하고 있었어. 근데 진천 앞산 쯤에 주전선이 형성돼 있었어. 거기서 전투가 벌어졌지. 그래 그때부터 전투를 시작해서 휴전 때가서야 멈췄으니 얼마나 전투를 많이 한 거야. 진천부터 휴전될 때까지 화천으로 금화로 철원으로 백마고지로 엄청 전투했어.

강원도 용문산에서도 무척 죽었어. 휴전 직전 전투에서 무척 죽었어. 되놈들은 점령하러 올 때는 피리를 아주 구성지게 불어요. 삐삐삐삐 하고. 장구치고. 저녁엔 중공군들이 어디에 있는지 다 보여. 불 펴놓고 있으니까. 트럭을 갖다 대고 부상자들을 볏가마 양쪽에 들듯이 주워 실었어. 가다가 트럭이 덜컹하면 부상자들이 떨어져서 죽고. 에휴...

정전되고 후방교대해서 보니 6사단 동기 200명 중에 사단 연병장에 13명만 남았더라고. 난 다치지도 않고 운이 좋았지. 휴전되고서 전후방 병력을 교대해서 논산 116육군부대 건설하는 데 배치받았지. 그리고 1년쯤인가 1년 채 못 되게 군대 생활 더하고 제대했어. 일등중사로.

-김종훈 기자

김종훈 기자  gimpo1234@naver.com

<저작권자 © 김포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김종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포토뉴스
  • 1
  • 2
  • 3
  • 4
  • 5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