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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 달 특집 - 김포人] 전쟁터에서 욕심내면 죽어내가 겪은 6.25 - 이순희 전 우저서원 원장


험한 전투에 모두 다 참여했지만 천운으로 다친 데 하나 없이 살아남아
공격 명령 받은 전투는 전부 성공.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었던 거 같아
욕심 부리지 않고 양심적으로 살아서 그런가 신이 도와주었다고 믿어
숨겨준 은인, 자식들에게라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어

6일은 제59회 현충일. 올해는 6.25전쟁 휴전 61주년이다. 호국의 달을 맞아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은 이순희 전 우저서원 원장의 전쟁 체험담을 들어본다.<편집자주>

지금 사는 데는 풍무동 77-1번지이고 바로 옆인 풍무동 69번지에서 태어났어. 삼형제 중 둘째로. 30년생이니 올해 85세야. 아버지는 마을 구장을 보셨어. 농사지으시면서. 소작도 하고 자작도 하고. 난 김포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로 올라갔어. 학교 다니느라고. 해방은 중학교 1학년 때 맞았어. 그래서 만날 공부는 안 하고 근로봉사만 다녔어. 비행장에. 김포비행장에서 흙 파내고 나르고. 군사훈련도 조금 받고. 제식훈련 받았지.

중학교 6학년 때 6.25 발발
중학교 6학년 때 6.25가 났지. 그때 우리 아버지가 대한청년단 단장일을 보시고 계셨어. 그래 빨갱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잡으려고 했지. 그래 온 가족이 피난갔어. 아버지 어머니는 아산으로 가시고, 막내가 18살인데 혼자 집 보고 있고. 형님은 결혼하셔서 고촌에 살고 계셨지. 그래 나는 형님댁에 가 있었는데 밤에 동생이 빤스바람으로 찾아왔어. 빨갱이들에게 장릉에 끌려가서 두드려 맞았대. 아버지하고 형 있는 곳을 대라고. 그래 맞다가 다 불었으니 잡으러 올 거니까 도망가라고 밤에 온 거야. 그래서 검단 외가집으로 통진 이모집으로 서울 연희동 매형집으로 며칠씩 숨어다녔지. 피난 가기에는 늦었으니까. 피난은 못 가. 처음부터 남하했으면 되는 건데 인민군이 벌써 대구로 어디로 다 내려갔다니까 피난 갈 수 없고 숨어 지내야지.

그러다 9월 15일날 인천 상륙한다는 걸 알았지. 20일쯤 연세대 있는 데서 교전을 하는데 아군이 입성을 못하는 거야. 그래 교전하는 데를 뚫고 넘어와 아군 있는 데로 갔지. 그러니까 아군이 잡을 거 아니야. 그래 내가 여기 숨어 있었는데 아버지 시체라도 찾으러 가야한다고 했지. 그때 아버지가 김포 내무서에 잡혀 계셨거든. 어떻게 잡혔냐면 아산에 아버지가 피난가신 곳에 김포 사람의 고향 집이 있었어. 그 사람이 꾀임에 빠져서 아버지에게 가서 형제 3명이 다 잡혀서 죽게 생겼는데 아버지가 가면 아들들이 살아날 수 있다고. 그래 아버지가 김포에 가서 자수했지. 자식들 땜에. 가서 속은 걸 알았지. 그래서 내무서에 잡혀 계신 거야. 그러다 인천 상륙 때 인민군들이 다 도망가고 몇 시간 비어있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 아버지가 도망해서 고촌 형님댁에 가 계신 거야. 그래 내가 고촌 형님댁에 가니 모든 식구들이 한 사람도 상한 것 없이 다 무사한 거야. 제대로 피난살이한 거지.

간부후보생으로 임관 후 소위로 참전
9.28 수복되고 난 간부후보생 시험을 봤어. 나도 참 바보지. 왜 간부후보생을 가. 소위 달면 소모품 소위야. 별명이. 하루살이 소모품. 1월 1일날 부산 동래 육군종합학교에 입교했어. 9주 교육받고 3월 3일 임관해서 9사단에 배치받았어. 9사단은 동해안에 있었지. 28연대 10중대 3소대장으로 부임했지. 부임하자마자 공격명령을 내리는 거야. 오대산 줄기 고지에.

공격을 하는데 도저히 고지로 올라갈 수가 없는 거야. 위에서 기관총으로 갈겨대는데 후퇴할 수도 없고. 소대원이 다 죽게 된 거야. 한참 생각하다가 총류탄 생각이 딱 나는 거야. 그래 총류탄을 구해다가 칼빈총에 껴서 기관총 진지에 쏘니까 그대로 기관총 진지에 직통으로 딱 떨어지는 거야. 내가 아무리 쏜들 들어가겠어. 신이 쏴 준 거라고 믿어. 그래 무사히 점령했지. 그게 첫 전투야.

은인을 만나 죽음의 고비 넘겨
그러다 5월 초순경 9사단 3사단 5사단 3개 사단이 포위당하게 됐어. 전선이 동해안은 쑥 올라가 있고 서쪽 서울 쪽은 내려와 있었어. 그래 우리가 있던 동해안 쪽에서 위로 올라가 있으니까 중공군 놈들이 옆에서 들어와 허리가 잘려 포위당한 거야. 포위망을 뚫고 나와야 하는데 지금 진부리 조금 위야. 포위망 뚫고 평지에 집결지에 모였는데 기습을 받아 전부 뿔뿔이 헤어지게 됐지. 안전지대인 줄 알고 낮잠 자다가. 그래 낮에는 자고 밤에만 움직여서 산을 하나씩 넘어서 남으로 내려와야 했어. 사병 7명이 날 따라왔어. 계급장 보고. 내가 장교니까. 날 의지해서 나하고 함께. 일주일 쯤 그짓을 하고 내려오는데 배는 고프고 그래서 식량을 구하기로 했지. 그런데 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는 독립가옥이 하나 있더라고. 그 집이 근방에서 꽤 사는 집이었는지 산 밑 마을 사람들도 많이 피난와 있더라고. 호주머니에 두 달치 봉급받은 돈이 있었었는데 그래 그 집 영감에게 봉급을 다 주고 콩을 삶아달라 했지. 콩을 삶아서 8명이 허리춤에 차고 산을 넘는데 근데 앞산에 벌써 중공군이 꽉 들어찼더라고. 그래 영감보고 길 안내를 해 달라고 했더니 자신이 없다고 아군이 올 때까지 뒷산에 숨어 있으라고 하더라고. 밥은 해준다고. 그래 삼시 세끼를 그 집에서 밥을 해서 산으로 올려다줘서 먹고 그러면서 지냈지. 그래 하도 고마워서 그 집에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밥을 안 먹고 죽을 먹고 있더라고. 우리는 저녁을 밥을 먹었는데. 죽도 멀건 게 숭늉같아. 그래서 그 영감보고 우리 먹는 거 하고 같이 죽을 쒀서 먹자 했지. 그러면 죽이 아주 멀겋게 되진 않을 거 아냐. 그랬더니 영감이 안 된다 이거야. 우리들은 군인으로 적을 만나면 싸워야 하고 산을 넘어야 하는데 죽을 먹고 되겠냐는 거지. 은인을 만난 거지. 그러다 아군이 들어온 다음에 좋다고 뛰어나와서 그냥 왔어. 주소라도 적어놓고 와야 했는데. 한번 찾아가서 자식들에게라도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찾을 수가 없더라고.

전장에서 재물이나 여자 밝히면 죽더라고
하진부리에서 전부 다 모였지. 오대산에서 3개 사단이 뿔뿔이 헤졌다가 다시 모인 거지. 거기서 원대복귀해서 중부전선 포천으로 갔어. 거기서 철원 높을 고자 고대산 공격 명령을 받았지. 1개 소대 병력만 갖고. 맨 앞에 척후병 둘 세우고 올라가는데 척후병 두 놈이 소총을 다 쏘고 소대장님 어서 올라오세요 하더라고. 올라가 보니 호 속에 중공군 놈들이 우글대는 거야. 중공군 십여 명을 사살했어. 포로 둘 잡고. 포로 데리고 고지에서 내려오려는데 밑에 보니까 중공군이 새카맣게 몰려오는 거야. 그래 거기를 뺏기면 철원이 다 넘어가는데 물러날 수가 있나. 중대에 지원요청하고 죽기살기로 지켰지. 끝나고 보니까 장교는 부상당한 중대장하고 나 하나 남았더라고. 중대장이 날 부둥켜안고 울더라고. 내 덕분에 살았다고. 천운으로 난 다친 데 하나도 없이 살아남았어. 그래서 내가 악하게 살지 말자. 선하게 살자. 그래 다짐하고 있지. 전쟁터에선 욕심내면 죽어. 멧돼지 새끼 하나 잡아도 먹지 않고 놓아 주곤 했어. 재물이나 여자 밝히면 죽더라고.

백마고지 전투에 참여
백마고지 전투하기 전이야. 백마고지 전투는 51년 10월에 벌어졌지. 5월에 신임 장교 둘이 전입 왔어. 하난 연 소위고 하난 김 소위야. 그때 난 중대 부관으로 있었지. 그때 백마고지 위쪽 동북 방향에 500고지라고 있는데 여기가 중공군의 전초부대가 있었어. 여기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는데 안 하면 좋겠는데 안 할 수가 있나. 할 수 없이 공격하다가 점령도 못하고 부대가 다 망했어. 김 소위는 다리를 잘렸어. 그러고 나서 500고지에 있던 중공군들이 백마고지에 쳐들어온 거야. 그게 백마고지 전투지. 근데 내놓을 수가 있나. 그걸 내놓으면 철원이 다 넘어가는데.

10월 초에 초등군사반 교육을 마치고 원대복귀 했지. 중대장으로. 10월 6일 새벽에 그놈들이 백마고지에 쳐들어왔어. 근데 하루 전에 대대장이 전부 호출하더라고. 그래 갔더니 중공군 장교가 하나 귀순했는데 중공군이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있는데 신빙성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 미리 대비하고 있었지. 하루에 두 번씩 주인이 바뀌는 전투를 한 거야. 밀고 올라오면 내 주고 바로 다음 부대가 치고. 숨 쉴 틈을 안 주는 거지. 한참 박격포 지휘를 하고 있는데 주위가 조용하더라고. 다 도망가고 나 혼자 남은 거야. 보니까 중공군이 머리 위에 있더라고. 그래 급하게 호를 뛰어넘어서 굴러내려가 간신히 살았어. 백마고지 전투는 6일부터 15일까지 꼬박 벌어졌어. 24번이나 주인이 바뀐 전투였지. 아군이 3천명 이상 죽었어. 중공군은 그 몇 배나 죽었고.

휴전 될 때까지 꼬박 이리저리 험한 전투에 모두 다 참여하고 그 속에 살았어. 후방 근무는 교육받은 거 그거 몇 달 뿐이고. 공격 명령을 받은 건 꼭 성공했어. 내가 전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군가 도와주고 있는 거 같았어. 욕심 안 부리고 양심적으로 살아서 그런가 신이 도와주었다고 믿어. 그래 살아남은 거야. 다친 데도 없이. 휴전되고도 좀 더 군생활을 했지. 그러다 1967년에 만 17년 군생활하고 제대했어. 소령으로.

김종훈 기자  gimpo12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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