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산건설 신승진 대표

토목쟁이 아들로 태어나 자수성가
덤핑공사 NO! 20년 거래처 다수
맡겨진 역할 사심 없이 책임질 것

우리나라 사업가에게 아이엠에프는 벼락이다. 신승진 대표 역시 거래처 17개 가운데 14개가 부도를 맞았다. 연쇄부도는 당연했다.

당시 신 대표는 유일하게 남은 집을 팔았다. 거래처 대표를 회합해 집 판 돈을 내놓고 빚잔치를 했다. "다음을 기다려 달라고 인간적인 실정을 밝히자 비슷한 처지에 있던 협력업체 사장님들이 사정을 이해하고 기다려 주시기로 했습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가장 어려운 고비를 적극적으로 해결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신 대표에게 성실성을 인정한 주변의 지인들이 손을 내밀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잊지 못하는 한 분이 길기주 실장이다(당시 라인건축 실장). 길 실장은 신 사장에게 공장신축 건을 주며 일을 맡겼다. 가진 것이 없는 신사장에게 맡겨준 건축 의뢰는 다시 재기하는 힘이 됐다. "지금도 은인처럼 생각하면서 모시고 삽니다. 대쪽 같은 실장님의 성격과 일처리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과 일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며 당시의 은혜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길 실장의 지원은 계속됐고 신 대표가 재기하는데 많은 힘이 됐다. 이처럼 은인은 사람을 구한다. 공장을 짓는 데 전문성이 확보된 진산건설은 신용과 성실성이 지역에서 인정받으면서 일취월장했다. 공장을 지어 임대를 놓기도 하는 부동산 개발업도 병행해 자산을 늘렸다. 김포의 개발바람과 공장 개발에 편승해 회사가 크게 성장했다.

신승진 사장은 외모와 달리 과감하다. "저는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정리하여 결정합니다. 그리고 추진하되 후회하거나 연연하지 않습니다"고 말했다. "또 단체 일을 하면서도 사심 없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조직에서 각자 역할을 맡되 신뢰하고 위임하며 결과를 기다립니다." 스마트한 경영스타일임을 알 수 있다.

그가 애정을 갖고 활동하는 향우회에서도 지회의 일반회원으로 시작해 꾸준하게 활동을 쌓았다. 성실성과 헌신을 인정받아 호남향우회 김포시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았다. "어깨가 무겁고 다양한 선후배들을 모시고 향우회를 키우기 위해 과감성과 겸손함을 겸비하고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든 해태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그의 몸에 밴 스타일이다.

"사심 없이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물러날 때 박수받고 이임하는 단체장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간절함으로 소속회원들과 함께 하길 빌고 또 비는 마음으로 하고자 합니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관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을 중요시한다. 아이들에게 그래서 잘 놀기를 항상 주문한다. 행복하게 크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어릴 적 남양건설 현장소장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저는 한글보다 도면을 더 먼저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토목을 전공했고, 이제는 건축은 제 인생이 됐습니다"고 건설의 길이 타고난 것처럼 그에게는 자연스럽다.

신 사장의 고객 가운데는 20년 동안 거래하는 고객도 많다. 하자 없는 건물을 짓기 위해 그만의 고집스런 원칙을 지킨다. 덤핑건축은 맡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다. 작업을 맡고 보자는 심정으로 덤핑으로 건축을 맡아서 짓다보면 구조적으로 하자가 발생한다.돈 잃고 사람 잃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인지 진산건설이 짓는 건축물은 하자발생이 거의 없고 철저하게 A/S처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는 어릴 적부터 토목쟁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대한민국을 평지로 만들 원대한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규모에 앞서 마음의 굴곡을 평화롭게 만드는 마음의 토목쟁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인생 50, 진산건설 신승진 대표의 생각이 더 단단하게 영글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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