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윤순영 이사장

김포한강신도시 내 7개 주제공원에 ‘야생조류공원’을 만들기 위해 발벗고 뛴 남자. 지난 23년 세월 동안 재두루미를 촬영하고 보호하느라 새에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남자. 재두루미는 나의 운명이라고 고백하는 윤순영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을 만나 그의 새에 대한 사랑과 삶을 들어보았다.

운명처럼 다가온 재두루미

윤순영(61) 이사장은 김포 북변동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적 눈으로 보던 게 종이에 찍혀나오는 것이 신기해 사진에 흥미를 갖게 됐고, 중학생이 되면서 산으로 들로 사진찍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하프사이즈라고 필름을 반으로 나눠 찍는 작은 카메라가 있었어요. 24장짜리 필름이면 48장이 찍히는 카메라죠. 당시 월남전이 한창일 땐데 월남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이들 가져왔지요. 그래 그 카메라를 구해서는 참 많이 찍으러 다녔어요. 풍경도 찍고, 꽃도 찍고. 그때부터 자연을 좋아했나봐요.”

윤 이사장의 취미생활은 곧 전문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독학했어요. 집 앞이 홍도평이라 홍도평엘 자주 나갔지요. 사진 찍으러. 1992년인가 하루는 홍도평엘 사진촬영 갔는데 거기서 재두리미 7마리를 만난 거에요. 전율이 일더라고요. 외다리로 꼿꼿하게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홀딱 반했지요.”

70~80년대 김포에는 하성면 시암리 일대에 3000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서식하고 있었지만 하구둑을 쌓고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재두루미는 사라지고 만다. 사라진 재두루미는 일본으로 날아가 지금도 일본에 많은 개체수가 월동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홍도평 재두루미를 매일매일 찾아가 촬영했다. 그러던 중 예전엔 그처럼 많던 재두리미가 다 사라지고 겨우 7마리 남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보호하고 늘릴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일단 먹이를 주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볍씨와 밀, 옥수수를 주었지요. 한번에 80kg 정도 주었지요. 남의 도움도 없이 집에 있는 거 가져다 바쳤지요.”

먹이주고 촬영한 지 10년. 2001년이 되자 홍도평에 찾아오는 재두루미는 120마리까지 늘었다. 참고로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재두루미는 5000마리 정도.

두루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두루미와 저는 교감이 되는 것 같아요. 그냥 맨몸으로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더라고요.”

재두루미 촬영을 위해 윤 이사장은 새 앞 50m까지 가까이 다가간다. 두루미에게 먹이를 주며 보낸 세월. 두루미도 윤 이사장을 알아보나 보다.

“흰목이라고 내가 이름붙인 두루미가 있어요. 재두루미는 가슴에서 목까지 잿빛 줄이 이어져 있는데 이놈은 목 중간에 줄이 끊겨져 있어 목이 흰색이라 흰목이라 부르게 됐어요. 근데 흰목인 처음 봤을 때의 7마리 중 하나인데 지금도 해마다 날아와요.”

두루미는 40년 정도를 산다. 서로 싸울 때도 피가 나도록 격하게 싸우지 않는 평화의 새다.

“두루미는 평화로운 새에요. 무척 가족적이고요. 웬만한 위험에는 새끼를 보호하느라 도망가지 않고 새끼를 감싸고 있죠. 외다리로 고고하게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참 아름다워요.”

그동안 재두루미를 촬영한 필름만 10만 컷. 고고한 모습에 반해 시작한 재두루미 사랑은 이제 윤 이사장에게 따뜻한 가족애와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다.

재두루미 지키기는 나 자신과의 약속

“재두루미가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 홍도평에서 월동하고 있어요. 이 기간 동안에는 하루라도 홍도평에 안나가면 불안해서 못견뎌요. 두루미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남과의 약속이 아닌 나 자신 스스로의 약속이어서 안 지킬 수가 없죠.”

윤 이사장에게 운명처럼 다가와 일생의 화두가 된 재두루미. 윤 이사장은 ‘재두루미의 보호와 번식을 위해 지난 2005년 4월 28일 (사)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를 설립하고 이사장직을 맡는다.

협회는 겨울철새 모이주기와 재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훼손된 자연과 생물의 복원이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지만 윤 이사장은 한 번 훼손된 자연은 치유하기 어렵기 때문에 훼손되기 전 보전과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에서 수년간 진행해 온 ‘겨울철새 모이주기’도 그런 뜻을 실천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인간과 자연, 공존을 고민해야

“김포는 서울과 인접하고 있고 한강신도시 등 개발욕구가 큰 곳이기 때문에 지역개발과 환경보존을 동시에 고려한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리방안 수립이 시급한 실정이에요. 한강하구의 자연과 재두루미는 김포가 가진 유산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아름다운 김포의 자연을 훼손되지 않은 채 올바로 미래에 전달해 줄 의무가 있어요.”

윤 이사장은 올해 겨울철새의 개체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금강하구의 장관을 연출했던 가창오리의 군무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고, 한 때 120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서식했던 한강하구에는 고작 30여 마리 정도만이 찾아든다고 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데,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연을 이용하는 것을 이제는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윤 이사장은 겨울철새의 개체수 감소 원인으로 농경지 매립으로 인한 먹이터 부족,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생태환경 변화를 꼽고 있다.

‘영구적인 철새들의 안식처’ 마련이 꿈

“철새들을 위해 땅 한 뙈기 정도는 양보해야 합니다. 일찍부터 철원군은 저에게 재두루미를 탐조하고 보호하라고 5000평을 제공해 왔어요. 오히려 김포는 아직까지 협조가 부족하네요.”

운양동 1245-8번지 일대에 조성중인 김포한강야생조류공원은 윤 이사장의 지속적인 요구와 건의로 이뤄낸 성과다. 윤 이사장은 앞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모이주기 등을 통해 재두루미를 공원으로 유도하고 공원의 운영 및 관리방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김포한강신도시 건설로 나타날 수 있는 조류서식지 감소를 최소화하고 자연생태도시 건설을 위한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김포한강야생조류공원이 세계적인 재두루미 공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생명의 강, 희망의 날갯짓’ 발간

재두루미 촬영과 보호에 매진해 온 윤 이사장이 최근 한강하구 재두루미의 생태를 담은 보고서 형식의 저서 ‘생명의 강, 희망의 날갯짓’을 발간했다. 이 책은 윤 이사장이 23년 동안 재두루미를 살펴 온 관찰일지다. 책에서는 재두루미를 보전해야 한다는 절실함으로 재두루미의 먹이터인 한강하구를 조명하고, 재두루미의 습성과 생활을 담고 있다.

윤순영 이사장은 책을 통해 재두루미 보전대책을 호소하면서 "재두루미를 한강하구의 역사 속에 묻어 둘 것인가? 아니면 움직이는 미래의 자연으로 남겨둘 것인가?"고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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