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톱상사 정종문 최화순 대표

한우물·전문성과 정직한 생활에 자부심
소음 등 불편함 참아준 이웃들에 감사
딸 유학 끝난 뒤 청소년시설 운영이 꿈

김포시 양촌읍 학운리에 위치한 한양톱상사 정종문(59세) 대표는 36년 외길을 걸어왔다. 20대 때부터 톱과 관련한 일을 시작해 36년을 오직 한길을 걸어온 것은 긍지와 끈기 덕분이다.

정종문 대표는 인천의 목재소 근무를 계기로 톱 일을 시작했다. 친척이 운영하는 목재소에 발을 디디면서 업무를 배우고 기술을 익혔다. 보통 중소기업 사장들이 그렇듯, 정 대표 역시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열심히 뛰며 살아왔다. "그동안 빚 없이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24시간 밤잠을 자지 않고 뛰었습니다. 직장생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한 곳이라도 더 서비스를 하기 위해 열심히 다니다 보니, 내 회사를 운영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물론 아내의 뒷바라지와 응원이 절대적이었기도 합니다." 정 대표는 말수가 없는 사람이지만, 아내의 응원은 잊지 않았다.

한양톱상사는 산업용 톱을 가공한다. 주로 목공용 톱이다. 30미터 크기의 톱도 있다. 과거에는 톱날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했지만 지금은 많은 과정이 자동화됐다. 이곳 업종은 톱을 가공해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목재가공업체마다 맞는 톱을 가공해 직접 출장해 관리 및 AS를 해줘야 한다. 목재가공회사가 회사마다 톱관리자를 채용하던 걸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톱 생산회사에 관리까지 위탁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양톱상사와 같은 회사는 일이 많아졌지만 기술자 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서 톱을 가공하는 기술자도 부족한데, 거래처 관리와 현지 기계를 다룰 줄 아는 기술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사람 난으로 인건비와 관리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나마 배울 사람이 없어 인력난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대부분이 옛날에 기술을 익힌 50이상의 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걱정이다"고 이런 현실을 밝혔다.

이곳 역시 정 대표가 가장 많은 일을 맡고 있다. 운영과 관리, 거래처 관리도 정 대표가 가장 많이 맡아 뛰고 있다. "기술을 물려주고 싶어도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아들은 자기 길(직업군인)을 가겠다고 선언하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억지로 회사를 물려 받으라고 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가끔 현장에 취직을 하겠다고 온 청년들은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모두 떠났다고 한다. 배고픈 시절을 견디고 살아온 정 사장 시대의 기술자 출신들과는 의지와 끈기가 다르다. "저희가 일할 때는 걸어서 거래처를 다니며 한두 시까지 점심도 못 먹고 일할 때가 부지기수 이었다. 밤을 낮 삼아 일할 때도 허다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절도 아닌데도 젊은 사람들은 아예 현장 일을 하지 않으려 드는 우리 현실은 중소기업과 일자리를 위해서 분명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사장이 기술을 배울 때만 해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한 시절이다. 기술자마다 기술차이가 많이 났고 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만큼 노력도 많이 했다. 결혼하고도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남편이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몰랐다.

"남편이 하는 일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현실을 잘 몰랐습니다. 남편 월급봉투만 받아오다 어느 날 남편의 기술과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내가 너무 훌륭한 기술을 더 이상 썩히지 말고 회사를 차려서 운영할 것을 권고해서 2003년 회사를 차리고 2007년 김포로 건물을 지어 이사를 왔다.

부부의 한 지붕 일터에서 마주보기 생활도 이때부터다. 체신공무원을 그만둔 아내 최화순 씨의 힘은 정 대표에게 제2의 도약의 밑거름이 됐다. 정 대표는 그동안 공장에서 소음이 날 때도 많았을 텐데, 불편함을 잘 참아준 이웃주민들에게도 감사함을 표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에게는 김포인상은 포근함이다.

이들 부부는 자식농사도 열심이다. 중소기업을 하면서 미국 유학생 뒷바라지는 녹녹치 않다. 연간 1억원대의 유학비는 어려운 중소기업에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서는 어려운 게 현실. 딸은 미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을 진학했다. 다시 허리띠를 잡고 기쁨과 인생의 여정을 다졌다.

아내 최씨는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2년만 더 고생을 각오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인생 아니겠어요."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남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무슨 일이든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한우물을 파고 모범을 보이고 완벽한 전문성을 위해 노력할 것과 아직도 현장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잊지 말 것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딸 유학이 끝나면 준비과정을 거쳐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돌봄센터나 대안학교와 같은 청소년 시설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여생과 재산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사용하려는 뜻이다. 직업은 톱날을 날카롭게 세우는 것이지만 인생은 모나지 않는 공동체적 삶을 꿈꾸는 정종문 최화순 부부, 개인적인 부의 축적과 만족에서 끝나지 않고 제2의 인생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며 꿈꾸는 이들 부부의 삶이 겸손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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