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준 김포문화원 원장

취임 1년을 맞은 이하준 문화원장은 짧은 시간 안에 김포문화원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하준 원장은 냉철한 판단력과 뜨거운 열정, 과감한 추진력으로 '새로운 김포문화원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지난 1년을 점검하고 성공적인 2014년을 준비하느라 여념없는 그를 찾아 지난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이하준 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문화가 꽃을 피우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지난 1년간 문화원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금 신뢰받는 김포문화원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 원장은 초심으로 돌아가 하위 조직과 사업들을 손수 점검하며 1년간 발전의 포석을 깔아왔다.

"사실 경영자에게 1년이란 긴 시간이 아닙니다. 게다가 크게 기운 재정을 탄탄히 하고, 느슨해진 조직문화에 활력을 제공해야 했기에 저에게 허락된 여유는 얼마 없었습니다. 하지만 회원 여러분과 시민들께서 저에게 거는 기대를 자극제 삼아 '새로운 김포문화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자 했지요."

김포문화원의 중흥 위해 모든 역량 기울일 것

안정을 되찾은 문화원의 시급한 첫 과제로 이하준 원장은 문화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며 앞으로의 발전 청사진을 그리고자 '김포문화원 50년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일정 이상의 규모를 갖춘 조직들은,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해 10년을 주기로 역사서를 펴내기 마련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산을 소모하기 위한 사업이 아닌, 그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선배들의 업적과 과오을 알아가며, 후배들이 이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사업입니다.  그럼에도 김포문화원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역사서를 펴낸 적이 없더군요. 저는 김포문화원이 위기를 겪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자는 순수한 의미에서 시작한 사업이었으나, 곧 현실적 한계가 이하준 원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50년이라는 오랜 세월의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으며, 김포시로부터의 사업예산지원도 바랄 수 없는 상태. 그야말로 '설상가상'인 것이다.

"그러나 '김포문화원 50년사'는 제 모든 것을 걸고 완성 하겠다는 각오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스런 점은, 서서히 경영체제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과거 50년의 흔적들을 모으고 정리하는 데 힘을 쏟을 수 있는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그는 김포 문화 원로들을 찾아 자료들을 수집하고 증언을 녹취하면서 역사서 발간을 위해 직접 발로 뛰며 노력하고 있다.

"문화원장직이라는게 말이죠, 한가하려면 대단히 편하지만 일을 찾아 하면 끝도 없이 바쁜 법입니다."

김포문화원의 발전상에 대해 말을 잇던 이하준 원장이 미소지었다. 이미 이 원장은 문화원을 '회원들의 것이 아닌 시민들의 것'으로 개방하며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 노년계층을 대상으로 한 문화대학과 각종 공연 등 문화행사로 다양한 문화생활에 목말라하던 시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니, '김포 토박이'이자 학자로서 품은 고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느낄 수 있다.

"어르신들 건강을 증진시키는 요가 등 각종 스포츠와 취미생활에서부터 일반 교양 등 다양한 교과목을 지난 1년간 개설·운영했습니다. 반응이 정말 뜨거웠죠. 이에 저희 문화원은 경기도 문화재단과 김포시로부터 예산지원을 받아 커리큘럼을 확대하고 다양화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화대학을 더 체계적으로 다듬어 정규 교육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토록 노력하겠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김포문화원 필요

아울러 그는 독립된 문화원사를 만들어 독립적으로 시민들에게 문화혜택을 제공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도내에 31개 문화원이 있습니다만, 문화원이 시 시설물에 더부살이하는 경우는 몇 안됩니다. 장소가 이렇다보니 문화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다소간 제약이 있습니다. 안전행정부와 김포시의 협조와 지원을 구해 독립된 문화원사에서 더 크고 다양한 커리큘럼으로 시민 여러분께 문화혜택을 드리는 한편, 회원만의 문화원이 아닌 시민들의 문화 교류의 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단에서 후학양성에 전념하던 그에게 명지대 전신인 문리사범대학을 나온 권영우 당시 국회 건설위원장이 찾아와 대학 설립을 제안하게 된다. 권영우 의원과 함께 세명대학 설립에 착수한 이 원장은 준비에서 인가, 개교 준비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업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무던히 공을 쏟았다.

"중앙에 올라가 교육부 담당자와 조율하는 등, 대외적인 협의 업무는 거의 제가 도맡아 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400명 정원으로 시작한 세명대학교였지만 2~3년 후에는 1500명 수준으로 규모를 키워갔죠. 진실된 분들께서 곁에서 저를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세명대학교는 이후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며 단기간에 학군단을 유치하는 등, 중부권 대학에서 찾아보기 힘든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세명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몰두하고 있던 이 원장에게 또한번 변신의 계기가 찾아온다. 당시 신부였던 염수정 대주교가 이 원장에게 연락을 해 온 것.

가톨릭대학교의 교육 노하우 문화원에 헌신

가톨릭 재단 산하의 대학교는 본래 크게 혜화동에 가톨릭신학대학, 강남의 성모병원 내에 가톨릭의과대학, 부천시 역곡동에 성심여대 등 3개로 나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다른 서울 소재 대학교에 비해 집중된 성장동력이 부족한 것이 큰 한계로 작용해왔던 것. 이에 가톨릭 대학교는 캠퍼스가 나뉘어진 채 답보상태에 놓인 대학을 통합하려 했던 것이다.|

"대주교님께서 가톨릭대학교를 통합해 더 크게 발전하려고 하는데 제가 적임자라고 하시더군요. 저도 그간 경험을 미루어볼 때 가톨릭대학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통합작업이라는 점에는 공감했지만, 이미 세명대학교에 뼈를 묻으려 마음 먹었기에 가톨릭대학교로 간다는 것은 스스로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번 사양했지요. 나중에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직접 설득하시더라고요. 참 고민도 많았고 결정하기까지 힘들었습니다."

1994년 9월 1일 가톨릭대학 통합추진본부 실무 책임자로 부임한 그는 강우일 주교를 도와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3개 가톨릭대학 캠퍼스를 통합하는 데 성공, 같은 해 11월 17일에 교육부로부터 통합 인가를 받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가톨릭대학교 관계자들의 속을 썩여왔던 통합 사업이 그의 추진력으로 빠른 시간 안에 마무리 된 것이다.

"통합 후 가톨릭대학교는 전국 대학평가에서 6위까지 치솟으며 빛나는 발전을 이뤘습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자랑스럽고 뿌듯합니다."

"하늘에는 별이 있어 아름답고 우주에는 자연이 있어 아름답고 지구에는 인간이 있어 아름답다. 내가 머물렀던 20여년 세월 동안 가톨릭대학교는 사랑과 베풂에 있어 아름다웠다. 감사한다"는 짧은 소회를 밝히며 가톨릭대 학교에서 정년을 맞이한 이하준 원장. 그간의 지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5년 이상을 근속해야 주어지는 명예교수직을 받았다.

"앞으로 김포문화원을 이주인구와 토착인구가 어울리는 시민의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며 야심찬 포부를 전하는 이하준 원장. 항상 화합하는 문화의 전도사로서 몸담는 조직마다 새로운 활력과 단합력을 제공해온 이하준 원장. 먼 미래를 내다보며 대승적 지역 발전을 계획하고자 2014년 한 해도 이하준 원장에게는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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