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 애주가 5인방의 술 이야기


·일시 : 6월 17일
·장소 : 고촌 아우네 식당
·마신 술과 양 : 소주 다수


우리나라 주당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인 고은 시인은 소주를 일컬어 ‘내 몸밖의 혈액‘이라고 했다. 술이 내 혈액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40에서 60여년을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될까. 밥 없이는 살아도 술 없이는 못산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밥 먹는 시간보다 술 마시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것만은 자명하다. 그 세월 속에 회환과 즐거움과 우정, 인생 희로애락 속에서 살아왔으리라. 김포 애주가 5인방을 모시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글라스 잔이 넘쳤다. 지금도 술술... 술을 넘기는 의연함은 여전하다. 5인방의 추억을 더듬었다.

김윤모 "글라스로 마시던 룰을 안 지키면 사회가 혼잡해져… 술은 소통의 매개체야"
홍기훈 "술 많이 먹는다고 야단들 칠 일 아니야, 무엇을 위해 많이 마셨느냐가 중요해"
심형찬 "술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술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이대하 "난 그동안 술과 함께 인생을 살아왔다. 술은 희망과 여유를 준다"
이준안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리에 항상 술이 있었다. 술의 장점을 살리면 발전한다"



홍기훈 :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예부터 주선(酒仙)이라 했다. 오늘 모인 분들이 주선급이다. 참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즐겁게 술과 함께 해온 분들이다. 술이 있어서 행복했고, 인생이 즐거울 수 있었던 세월이다.

심형찬 : 옛날에 지인이신 김이석 소장이 찾아와서 내가 서예공부를 하는 줄 알고 어느 날 붓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사양을 하다 여러 번 부탁을 해와 고민 끝에 써 준 글이 생각난다. ‘愛酒不改天 애주불개천’ 이란 글을 써 줬다. ‘술을 좋아하는 것은 하늘에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술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술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김윤모 : 시청에 근무하던 시절 오태희 씨가 아침에 일찍 와서 면장을 나가게 해 달라고 찾아왔다. 그런데 이 사람은 술 담배를 못했다. 그래서 "면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면장이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담배도 한 대 권할 줄 알아야 하고 막걸리 대접도 해야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술담배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면장을 하겠다는 거냐"고 거절했다. 그러다 3개월이 지났는데 이 친구가 윗주머니에 담배를 넣고 찾아와서 면장에 나가게 해 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그만큼 술은 인간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개체였다.

이대하 : 술의 위력은 대단하다. 나는 코흘리며 술을 먹기 시작했다. 김포 하나로마트를 만들 때 일화다. 당시 김포에서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를 촬영하게 됐다. 그런데 출연 팀들에게 밥을 사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식사 대접이 어려웠다. 고촌농협 예치금이 몇 백억 정도 밖에 안 되던 시절에 당시 농협중앙회장이신 한호선 회장님이 무이자 자금으로 5억을 예치해 주었다. 이 자금의 대출이자로 촬영팀 식사를 해결하고 김포를 널리 홍보할 수 있었다. 이런 저변에는 한 회장님과의 관계 확보를 위해 마신 술이 큰 역할을 했다.

홍기훈 : 그러니까 술 많이 먹는다고 야단들 칠 일 아니다. 무엇을 위해 많이 마셨느냐가 중요하다.

심형찬 : 조선조 영조 때 성혼(우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임금이 나라가 복잡하니 술은 한잔씩만 하라고 어명을 내렸다. 하지만 애주가이었던 성혼은 양이 차지 않아 큰 잔을 만들어 한 잔 마셨는데, 어느 날 영조가 불러 취한 상태로 영조 앞에 갔고, 영조는 왜 한 잔만 마시라고 했는데 술이 취했냐고 하자 집에 가서 커다랗게 만든 술잔을 가져다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런 성혼은 중국에 보낼 외교 문서를 써야 하는데 술을 마시고도 한 자도 틀리지 않고 쓸 정도로 술은 마셨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생활했다고 한다. 정신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홍기훈 : 술이란 사회의 악이지만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김포막걸리는 유명하다. 하성면 가금리, 월곶면 용광리에는 아직도 전통 동동주가 나온다.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난다. 80년대 일이다. 염보연 경기도지사가 오지마을 순회반상회를 하던 때다. 김포 가금리에서 연 지사가 반상회를 마친 후 음식이 나왔는데 빨간색의 막걸리(김포농주)가 나왔다. 당시 염 도지사는 대단한 애주가였다. 경기도 각 지역의 시장 군수가 지사보고를 하려면 관사로 새벽에 찾아가서 했다. 그럴 때마다 보고 차 온 군수 시장에게 도지사 관사로 가 새벽에 빈속에 양주를 글라스로 한 잔 먹이고 자신도 먹을 정도로 그 정도로 연보현 도지사는 애주가 이자 말술 이셨다. 이런 염 지사가 김포 농주를 마시고 대취해서 돌아갔다. 김포술빨(발)이 역사적으로 센 것이다.

심형찬 : 만사를 해결하는 데는 술이 70% 정도는 영향을 줬을것이다. 밥은 깔깔해서 잘 안 넘어가도 술은 술술 넘어간다. 술은 참 매력 있고 좋은 것이다. 주성(酒聖)이라 하는 이태백이 죽으며 남긴 말은 '살았노라 마셨노라 읊었노라' 이다.

김윤모 : 농림부 감사관이 특별감사를 위해 김포로 왔다. 경기도 김포가 특별감사의 샘플로 정해지고 좋은 결과로 감사가 끝났다. 감사 중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밀주(농주)를 가지고 감사관을 찾아가 감사관들은 밀주 5병을 마신 후 감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준안 : 74년도 산림조합 상무이사 시절 홍 조합장님이 당시 시청 농무과장 시절 이야기다. 그 시에는 산림조합에 감사원 감사 4명이 와서 많이 괴롭혔다. 농무과장이 왔다가 그냥 가셨다. 40년 전 일이지만 당시 홍기훈 회장님께 많이 섭섭했다.(40년 전 섭섭함이 아직도 남아있다고 해서 웃음)

이대하 : 붓글씨를 잘 쓰지는 못하지만 김삿갓(김병연)이 술을 많이 마시고 주막에 들어오는데 주모가 멋이 있었다. 능수능란한 솜씨로 주모와 하룻밤 같이 하게 되었는데 출장 간 남편이 일찍 집에 당도했다. 당황한 김삿갓은 대청마루에 꿇어앉아서 남편에게 지필묵을 달라고 했고 (장한자길 대취기 하고 도화일지 란만개라 종수하필 대로변이냐 절자위기 식자비다) "장안에서 어제 술이 대취해서 오는데 복숭아 꽃 같이 아름답게 핀 꽃을 보았더라. 종자 받을 나무를 왜 대로변에 심었느냐. 꺾은 사람이 망하냐? 심은 사람이 망하냐?" 그래서 봉변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일화가 재밌다. 술은 풍류와 함께 인간적으로 만든다.

이준안 :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산림조합과 인생을 같이 해온 나 역시 술과 인간, 조합원들의 여론을 듣고 소통하는 자리에 항상 술이 있었다. 물론 시대가 변해 지금은 많이 세태가 변했지만, 사람끼리 마음을 드러내는 데는 역시 술이 최고다. 그리고 나를 주는 데도 역시 술이 최고다. 술은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홍기훈 : 술의 위력이 대단함을 느낀 사건이 있었다. 옛날 군청이 북변동 구 경찰서 자리에 있을 때 내가 내무과장 때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침에 감사원 감사반이 들이 닥쳤다. 김포는 아닐 것으로 알고 있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지방자치제 감사 당시 샘플감사로 은행나무 밑에 감사장을 설치하고 25일 동안 25명이 감사를 했다. 참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데 경기도를 대표해 김포가 감사를 받았는데 좋은 결과를 받았다. 그것은 그만큼 수많은 교감을 한 결과였다. 당연히 술의 역할이 가장 컸다.

심형찬 : (홍기훈 회장이 심형찬 국장에게 권주가를 요청)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하지 마라
술은 백약지장(百藥之長)(술은 백약 중에 제일이다)이고 술은 미록(美祿)이다(아름다운 녹봉). 이 말은 변하지 않는다는 천진(天眞)미록과 같은 뜻이다. 술은 변함이 없는데 사람이 변하는 것이다.

이대하 : 술과 같은 인생이라면 죽을 사람은 없다 술은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생의 새로움을 찾아주고, 절망적인 사람에게 희망을 찾아주기도 한다.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힘을 주고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다. 난 그동안 술로 인생을 살아왔다. 술의 덕을 많이 보고 살아왔다.

심형찬 : 탁주 오덕(五德)이 있다. 술(막걸리)을 먹으면 허기를 면한다, 천천히 취한다, 몸이 더워진다, 기운이 생긴다,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이 탁주 오덕이다. 요즘 소주는 과거 탁주와 다르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대하 : 고촌 출신으로 김포군 4H연합회장을 하며 청소년활동을 했다. 그 뒤 중동을 다녀와서 새마을 협의회장과 고촌농협조합장을 거쳤다. 그런 나에게는 술은 해악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나를 도와 준 인생의 동반자였다. 술로 자기인생을 꿋꿋이 걸어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줬다. 지금도 술은 나와 같이 가고 있다.

심형찬 : 집에서 술을 담가 먹던 시절 밀주단속이 많았다. 당시 단속은 양조장에서 술 판매가 잘 안되면 제보를 해서 밀주 단속을 했다. 배고프던 시절 농주는 양식이었다. 콩장을 안주삼아 농주를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 농주와 막걸리가 양식대용으로 마시던 시절이 좋았다. 막걸리는 퇴비이고 소주는 비료다. 술은 나의 인생과 함께 가는 동반자다.

김윤모 : 오늘 점심 때 술자리가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술이 간에 기별도 안 온다. 우리 식(글라스 잔)으로 한 잔씩 하자. (본인부터 원샷하고 돌림) 그래도 술을 마신 것 같지도 않아.

홍기훈 : 이렇게 마시는 건 오기인데. (제가 오늘밤에 할머니 제삿날이라 일찍 가봐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누구 할머니 제삿날 아닌 사람이 있느냐며 속는 분위기가 아니다.)

김윤모 : 아무튼 평소 하던 대로 해. 술의 룰을 깨면 사회가 혼잡해져.

이준안 : 선배님들 모시고 좋은 자리를 갖게 되어 감사하다. 언론사와 연결이 되어 소통이 되는 그래서 사회가 소통하고 화합하여 발전하길 빈다.

김윤모 : 대부분의 면장들은 50대 60대일 때 나는 37세에 김포면사무소 면장을 했다. 당시 지역에는 방석집들도 많았다. 그런데 하도 눈이 많아서 방석집에를 드나들면서도 소위 2차를 못했다. 아쉬움이 많다.(웃음) 요즘을 놓고 되돌아보면, 면장시절 김포인구가 7만~8만일때는 10사람 중 5사람은 인사를 주고받았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그 당시가 더 태평성대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회고할 수 있는 이런 자리를 마련한 김포신문사에 감사한다.


● 대담 뒷 이야기

다섯시 반부터 식당에서 술자리를 시작했다. 도착하신 분들 대부분 벌써 낮술에 취기가 돌았다. 이준안 조합장은 그 도가 넘었고, 김윤모 전 조합장은 취기의 티가 나지 않은 상태다.

각 두 병 이상의 술병이 비워질 무렵, 김윤모 조합장의 컵(맥주잔) 돌리기가 시작됐고, 그 잔은 의연하게 돌았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간에 기별이 안 간다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다음날 점심약속을 다지고 "그 때 만나자"며 약속을 대신했다.

김윤모 조합장은 차에서 내리면서 한잔 더하자고 했다. 간에 기별이 안 간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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