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한국인이 되어 자랑스런 줌머인으로 살터

로넬(RONEL)씨는 불혹의 나이 40세의 가장이다. 줌머인 중 유일하게 귀화해 한국인이 된 로넬씨는 94년 처음 한국에 온 뒤 가구공장 등에서 일을 했고 2003년에 아내와 아들이 모두 한국으로 왔다.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난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 지는 말이 필요 없는 현실. 고국에서는 약국을 운영하는 사업자였지만 한국에선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하는 노동자다. 다행히 영어를 잘해 영어 강사를 하면서 살던 중 한국 시민단체들과 인연을 맺어 지금은 줌머인들의 한국생활을 돕는 활동가로 활약 중이다.


시민단체 친구들이 생기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한국말을 익혀 지금은 대화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한국말을 잘한다. 활동가로 살면서 직업을 갖는 것이 불편해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한다는 로넬 씨는 한때 아름다운 재단의 후원으로 상근 활동가 생활도 했다. 지금은 파트타임 영어 강사와 시민단체 행사의 강연 등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활동가로서의 역할을 져버리지는 않을 작정이다.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것에 대해 “불교문화권이고 한국의 경제성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꿈을 안고 한국에 왔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꿈은 사라졌다, 다만 내 아들과 줌머 아이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노동현장에서 고생하면서 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다”고 한국생활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2011년 한국으로 귀화한 것에 대해서도“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이제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주민등록증이 없이 한국에서 살아가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리고 지금은 중학생이 된 아들의 교육이 절실해서라”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아이티 강국 한국에서 주민등록 번호가 없으면 인터넷 사이트 하나도 가입을 할 수가 없고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단다. 인터넷 게임을 하고 싶어하 는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 아빠로서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아들의 작은 바람조차 해줄 수 없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치열한 인권 활동가로 살아가는 로넬 씨는‘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밖에 없다“며 ”경제 교육 사회 모든 부분에서 똑똑한 한국 사람이 되어 자랑스런 줌머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하며 밝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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