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박정희 명(목)따러 왔소!!

지금으로부터 41년 전인 1968년 1월 21일 김신조를 비롯한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였습니다. 또 지난 10월 26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지 30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때를 기해 중앙일보의 오종택기자가 김신조목사와 나눈 대화가 하도 흥미로와서 옮겨 봅니다.

오기자 “어떻게 살아 남으셨습니까?”

김신조 “다른 공비들은 청와대 앞 교전에서 패한 뒤 삼삼오오 흩어져 퇴각 하였습니다. 나는 홀로 다른 길로 도망치다가 잡혔습니다.”

오기자 “박정희의 멱(목)을 따러 왔다는 말은 영화 실미도에서 인용되어 화제가 되었었는데”

김신조 “내 역할을 맡았던 배우가 나를 닮았던데 실미도에서 한국군이 받은 훈련은 훈련도 아닙니다. 그래가지고 김일성의 멱을 어떻게 따요?”

오기자 “68년 생포당시 김신조 식 훈련이 화제가 되었지요?”

김신조 “특수부대에서의 훈련은 생존(生存)에 관한 문제지요, 해발 1000m이상의 산에서 혼자 살아남는 훈련을 받은 10만 명의 요원 중 최 정예 31명을 청와대로 보낸 것입니다.”

오기자 “북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되나요?”

김신조 “부모님이 인민재판에서 공개 처형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오기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신조 “ 당시 난 김일성이 왜 박정희대통령을 죽이려는지 몰랐지요. 그런데 남에서 살다보니 알겠더라구요. 가난한 나라가 부자가 되는 게 두려웠겠지요. 경제가 살면 돈이 들어오고, 돈으로 무기를 살 것 아닙니까. 김일성이 볼 때 남한 공산화를 위해서는 박 대통령을 죽여야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난 박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 남파 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박대통령을 존경하게 됐어요.”

오기자 “한국에서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데요.”

김신조 “고도 경제성장의 업적은 인정해야죠, 지금도 북한은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데, 남한에서는 이념 대립과 빈부격차로 민심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으니 걱정이예요, 이럴 때 일수록 강한 카리스마 리더쉽이 필요해요. 대북정책에는 원칙이 있어야 해요?”

오기자 “요즘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어떻게 보십니까”

김신조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니 기가막혀요. 제 (김신조) 이름도 모르고, 대한항공 폭파범 김현희도 모른다니 참 딱해요. 자신이 먼저고 이웃과 국가는 나중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 가슴아픕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념대립은 여전하고, 경제는 어렵고, 북의 도발은 핵과 미사일로 더해가고, 한미 연합사는 해체된다고 하고, 정치인들은 개판만 계속 치고......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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