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택 룡(인천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언젠가 TV의 한 프로에서 눈물짓는 한 양봉업자의 얘기를 소개 한 적이 있다. 농약을 마구잡이로 써서 양봉 농사를 망쳐, 결국 생계마저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양봉업자 한사람의 슬픔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그 문제란 꽃가루를 옮겨 주는 벌들이 몰살당해서 꽃이 수정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자연생태계의 파괴가 곧 인간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에 더 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은 해충을 없애고 인간을 살리려는 농약이 오히려 죽음으로 끌고 가는 저승사자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 양봉업자의 얘기를 단순히 개인의 불행과 변으로만 돌릴 것인가, 매우 심각하고 엄청난 사건이다.

우리는 60년대 이후 개발과 발전의 이면에는 인간과 자연환경을 너무도 많이 훼손해 왔다.

우리는 외식이 잦은 문화가 됐다. 그러나 안심하고 외식 할 수 있는 식당은 별로 없는 것 같다. “TV소비자 고발”실상을 보면 기가 막힌다. 뷔페식당을 비롯한 많은 식당들은 먹다 남은 반찬을 재탕하는가하면, 시내에 설치된 커피자판기의 불결한 관리 등 위생상태가 엉망인데도 관계자들은 강 건너 불구경만하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건강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햇빛과 산소, 물, 소금, 비타민 씨와 지자기(地磁氣)가 적절히 보급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은 과연 생명존중을 위한 환경 친화적이라 할 수 있는 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고향에 찾아 갔다. 바짓가랑이 걷어 올리고 친구들과 같이 논바닥을 뒤졌다. 농약이 없는 거기에서 게, 붕어, 미꾸라지들이 살았고, 그것들을 잡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어떤 친구는 참게를 잡아 손을 들어 보이며, “나도 여기 잡았다!” “와~”여기저기서 소리소리 지르며 좋아하던 그날, 그 광경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었다.

쾌적한 자연환경이 보장 안 되면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없어서 수명이 단축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땅과 물이 오염되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것은 분명한데,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외면 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독일가정의 저녁식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남편의 실수로 사용하던 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졌다. 주부는 깨진 그릇을 얼른 주어서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닦고, 조각난 그릇은 종이에 싸서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이는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부엌에서부터 신경을 쓰고 있다는 얘기다.

생태학자 ‘뒤보아’(Rene Dubos)는 “만일 인간의 삶이 거미줄 같은 사슬에서 유기체를 끊어버린다면, 결국은

자신도 파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파멸의 씨가 생태계의 모든 지평에 재난을 몰고 오는데도, 그 자각의 시급함을 왜 모르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성장과 발전이 거듭해 오는 동안 인간이 지구를 위험스런 유기체로 만든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동양적 자연관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러니까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외면한 서구적 합리성에만 몰입해 온 것이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벌써 개발이 파멸을 자초했다는 것을 뉘우쳤다. 그래서 공해와 소비의 낭비적 제도화, 쓰레기의 최소화, 일회용의 편리 속에 환경피해를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즉 자연환경 생태계의 파괴가 생명의 위협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지구는 온실가스의 증가로 온난화 현상을 가져와 해면이 높아짐으로서 해안이 침수되는 엄청난 재앙이 밀어 닥치게 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천혜의 자연경관인 캐나다의 록-키 산맥! 아름드리나무들, 그 광활하게 펼쳐진 수려한 산림은 정말 장관이었다. 온 국민이 손 놓고 나무만 팔아도 백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토록 웅대한 록-키 산맥이 버티고 있는데도, 지구 온난화로 무너져 내리는 빙하를 지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녹아떨어져 나가는 거대한 빙하의 모습은 마치 인간의 살점을 깎아내는 듯 무자비한 조각가의 심술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이대로 보고만 있을 것인가. 대기오염, 공해의 방지는 어느 한나라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이대로 놔두면 지구가 침수되는 엄청난 재앙이 밀어 닥치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접장생활을 마친 나는 ‘제3의 인생’을 쾌적한 농촌에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갈만한 곳이 쉽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서글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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