權 彛 赫박사
왠만한 사람에게는 좌우명이 있다. 어린 학생시절에도 좌우명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난다. 성실, 근면, 인내등 자신이 아니라 부친이 써 주신 좌우명을 벽에 붙여놓고 늘상 대하면서 지내던 일이 떠오른다.
입학시험 합격을 목표로 하는 좌우명이 흔한 시절도 있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좌우명의 글귀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의 경우에는 조금 나이가 들기 시작한 후 부터 앞서 적은 평범한 좌우명외에 조상으로 부터 내려오던 가훈(家訓)을 즐겨 쓰기도 하였다. ""心中大德 經世彦人' 즉 마음속에 큰 덕을 쌓고 세상을 다스리는 선비가 되라는 뜻이다. 이 가훈은 13대조이신 南岡공이 남기셨는데 우리 문중에서는 이 가훈이 널이 알려져 있고 집안의 항렬 글자도 이 문장의 문자가 바탕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차차 나이가 들면서 나의 좌우명은 다시 바뀌었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 는 좌우명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에게 즐거움을 주고 도움을 주는 일 같이 고귀한 것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이 일이 말과 같이 쉽지 않다는 현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좌우명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넓은 ‘사랑' 과 풍요한 ‘정신적 건강' 이 전제가 된다.
참다운 사랑은 변치 않고 영원한 것이다. 참다운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위력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은 주어도 주어도 아깝지 않은데서 이루어진다.
나의 대학생 시절에는 독일어가 제일 외국어였다. 당시 의학이나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독일어가 필수 과목이었다. 대학예과 과정에서 1주일에 13시간 정도 교육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독일이나 독일 사람들에 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나는 헤르만 헷세에게 끌렸다. 그는 독일의 국민적 시인이자 대문호였다.
헷세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여러가지 말을 남겼는데 그중의 하나가 언제나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는 지극히 간단하고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음미해 볼수록 운치가 있다.
몰론 사랑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헷세 자신은 40이 넘어서 큰 사랑, 나라사랑을 깨닫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어쨌던 어떤 사랑이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한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을 받은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말도 우리들 주변에서는 항상 들려온다.
한편 사랑과 정신건강은 사물의 표리와도 같다. 건강에는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그리고 사회적 건강이 있다. 이 세가지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데서 참다운 건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세계 보건기구(WHO)의 해석이다. 제 아무리 신체적으로 건강하다 해도 정신적 건강이 부족하다면 쓸모가 없게 된다. 정신적 건강이 부족한 사람에게 사회적 건강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이 세가지 건강중에서 정신적 건강에 가장 무거운 비중을 둔다. 정신적 건강이야 말로 모든 건강의 바탕이 되는 까닭이다. 정신적 건강은 사랑과 맥을 같이 한다.
정신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에서 사랑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며 이러한 사람이 남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더 더욱 없는 일이다.
오랫동안 학교 생활을 했던 까닭에 나에게는 제자들이 많다. 그래서 나이들은 오늘날 까지도 결혼식 주례를 맏을 기회가 많다. 나의 주례사의 내용은 언제나 사랑과 건강이 중심이다. 모든 힘을 다해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룩하라는 것이 언제나 나의 주문이다. 아름다운 가정이란 남에게, 이웃 가정에게 즐거움을 주는 가정을 말한다고 강조한다.
원래 좌우명이란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이다. 자신을 감독하고 자신을 격려하는데 있어서 자기자신 만큼 중요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좌우명을 실천해 나갈 때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의 가정, 더 나아가서 우리들의 사회는 언제나 맑고 명랑할 것이다.
<본지 고문.전부장관.성균관대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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