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고 사귀고 싶어한다. 결혼의 대상도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려면 좋은 사람을 찾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별로 좋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좋은 것을 요구한다면 이는 이기적이며, 배타적이다. 이는 올바른 관계가 될 수 없고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기를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나부터 좋은 사람 돼야

2002년 올해는 월드컵 대회로 세계인을 만나야한다. 우리로서는 매우 보람된 일이며, 세계인에게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호기이다.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만 좋아도 우리가 세계에 나갈 때 우리에 대한 대우가 다를 것이다. 「한국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세계인에게 심어주자. 불과 130여일 남은 월드컵을 위해서라도 좋은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올해는 나라의 대통령을 뽑아야 하고, 지방 의원을 뽑아야 하고, 단체장을 뽑아야 하는 중요한 해이다. 너 나 할 것이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니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겠다. 자기가 다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다 좋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사람이 어찌 다 무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정직하기를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인격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첫째,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우리의 생각은 이익에 길들여진 생활을 하고 있다. 이익이 없으면 요지부동이다. 그리고 안주해 버린다. 외국인에게 시간을 희생해 가면서 친절을 베푸는 일, 어려운 이웃에게 인사치레가 아닌 덕담을 나눌 여유를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성경(요12:24)에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했다. 희생의 댓가는 많은 열매로 돌아온다.
둘째, 관용의 마음을 가진 자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관용이란 말은 누구나 좋아하는 말이다. 요즘 현대인들의 성향은 너무 급한 것 같다. 여유가 없다. 시간적으로, 마음적으로, 업무적으로 너무 분주하다. 사회가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 빡빡할수록 유분이 필요하다.

18만 시민 모두 좋은 사람으로

인간의 삶에 유분은 관용의 마음이다. 관용의 뜻은 '호의적인', '참을성 있는', '동정심 많은',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1-22)고 가르치셨다. 남을 비방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셋째, 가정적이며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가정이 파괴되는 세태를 맞고 있다. 이 일이 매우 큰 사회 문제이건만 문제로 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문제이다. 가정이 파괴되면 심성이 파괴되고 자기 일에 성실치 못하며 결국 사회에 큰 문제를 만들게 된다. 성경(딤전3:2-3)에 “...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딤전3:2-3)라고 했다. 좋은 사람의 기본은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내 사랑 김포인은 다 좋은 사람이기를 소망한다.

/마조성결교회 담임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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