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보는 시각 많이 달라져 다행…시 예산 좀더 늘려주길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이날 김포시는 (사)경기도 지체장애인협회 김포시지회 장성만씨 등 5개 지회장을 모처럼 높은 분들과 함께 단상에 앉히고 김포시민회관 실내체육관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한 800여 장애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치하했다.
이날 이들에게 제공된 것은 수건 한 장과 뷔페 점심 한 끼. 김포시는 예산이 부족해 진정 이들이 원하는 지팡이나 전동휠체어 선물은 하지 못했다. 장애인들이 말했다. “이건 생색내기용 선심성 행사다. 우리가 바라는 건 이런 게 아니다.”

장애인들도 일을 하고 싶어한다. 당연하다. 단지 신체 일부가 불편할 뿐, 그들과 비장애인이 다를 바 없다. 그들이 어떤 시설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찾아가 봤다. 장기동에 있는 지체장애인 작업장. 지난해 8월 마련된 이 공간은 시에서 대신 임대료와 사용료를 내주고 있다. 김포패션아울렛 주차장 한 켠에 있는 작업장 내부로 들어가려면 경사진 계단 4∼5개를 내려가야 했다. 다리 불편한 장애인은 당연히 힘들다.
내부는 상당히 깨끗하고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에 설치돼있는 주방. 여기서 점심을 함께 해먹는단다. 15명 내외의 지체장애인들이 아침 8시에 나와 일을 하고 저녁 6시쯤 들어간다. 수입은 밝힐 수 없단다. 워낙 적어서.

무슨 일을 하나 보니 차량에 들어가는 전구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이 주 종목이고, 쇼핑봉투에 손잡이끈을 연결하는 일, 양념통 뚜껑 두 개를 결합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고정된 일거리가 아니고 ‘그때그때 다르다’. 장성만 회장과 신은숙(50·통진 마송리 주공아파트) 여성과장이 공장을 찾아다니며 일거리를 달라고 ‘영업’한 결과다. 단가가 궁금해서 물으니 전구분해는 개당 5원, 쇼핑봉투는 개당 4원, 양념통은 1원이라고 하니 도대체 몇 개를 해야 제대로 된 수입이 될지 짐작이 안 간다. 씩씩하고 활발하고 목소리가 우렁차게 큰 신은숙씨가 답한다. “이걸로 돈을 많이 벌 수는 없는 거고, 집에만 있으면 이 생각 저 생각 머리만 아파지고 더 몸과 맘이 가라앉으니까 여기 나와서 움직이고 말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면 밤에 잠도 잘 오니까.”

시에 바라는 게 많겠다. “절실한 문제를 건의하면 그때마다 반응은 ‘예산이 없다’예요. 물론 예산이 부족해서 우리를 도와주지 못하는 거겠지만 타 지자체들 견학을 가서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시·군들도 김포보다 복지분야에 예산을 많이 배정해 주는 걸 볼 때마다 김포시의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담당자들은 우리가 가서 무슨 말을 하면 쳐다보지도 않아요.” 장성만 회장, 그간 받은 홀대가 못내 섭섭했던 것 같다. 그는 7살 때 강원도 홍천에서 폭발물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오른쪽 팔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우상지·하지 지체1급 장애인이다.
옆에서 동료들이 큰소리로 거든다. “시뿐 아니라 정부도 마찬가지예요. 말로만 복지를 확대하고 장애인들에 대해 지원한다고 떠들지 실제적인 혜택은 거의 없어요. 비장애인들은 우리가 나라로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많이 받는 줄 아는데 몰라서 하는 소립니다. 취업도 그래요. 기업체에서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몇 프로씩 고용해야 하는데 그걸 지키는 회사가 몇 군데나 되나요.” 그들은 할 말이 많고 쌓인 게 많았다. 막상 회사에 취업해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왕따시켜 견디지 못하고 중도 퇴사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란다. 이렇게 같은 입장의 동료들끼리 일하니 수입은 적어도 마음이 편하단다.

그래도 세상이 좋아져서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전에는 버스 옆자리에도 앉지 않으려고 하던 사람들이 요즘은 부축도 해주고 보는 눈도 별스럽지 않아졌다.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다. 북변동 명가떡집, 장기동 참새방앗간에서 떡 등 먹을거리를 종종 갖다주고 사우동 푸드뱅크 정 목사(본인 이름과 교회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아 이들도 모른다)가 밥과 국, 반찬을 수시로 갖다 나른다. 오히려 큰 기업체가 인색하고 작은 가게, 넉넉지 않은 이들이 자기들에게 십시일반 도움을 주니 감사할 뿐이라고.
자칫 가라앉기 십상인 작업장을 활기차게 휩쓸고 다니며 일하고 밥짓고 동료들을 독려하는 신은숙씨에게 어쩜 그렇게 밝고 명랑하냐고 묻자 “우리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씩씩하게, 더 극성맞게 살아야 한다”며 어린시절 자신을 고쳐주지 못했다고 평생을 미안해하는 아버지가 딸이 나가서 일하면 기 죽을까봐 염려할 때 “아버지, 괜찮아요. 나 기 안 죽어요”하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 아버지 걱정을 덜어줬단다.
마침 점심시간, 감자를 큼직큼직하게 썰어넣은 된장국에 아침에 캤다는 쌉싸름한 봄나물을 고추장에 찍어먹으니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모처럼 맛있는 점심식사였다. 서로 많이 먹으라며 권하는 그들의 끈끈한 정을 보고 느끼며 작업장을 나오니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힘을 얻었는지 한 두 정거장을 그냥 걷고 싶어졌다. 화창한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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