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李 珖 烈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최근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유행어에 대한 이해는 그 사회의 현주소를 알게 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문화·정신적 유산 후대에 물려줄 가치관 확립 절실

노블레스는 ‘사회 고위층 인사는 물론 높은 사회적 신분’이며 오블리주는 그에 ‘상응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이 의무의 발단은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적 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초기 로마 사회는 고위층의 봉사와 기부·헌납 등의 전통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엄밀히 말해 ‘노블레스 오블리주’ 자체는 서구 봉건제 특유의 정신적 유산이며, 곧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에 쌍무적 계약관계를 설정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해 왔던 오랜 역사적 전통으로 확립된 것이다. 실제로 이들의 삶은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이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8군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전사했으며,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다. 이런 의미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왜 이 말이 자주 사용되는가? 우리 사회에는 이런 정신이 없거나 약하다는 의미에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속한 사회의 지배층 인사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기대가 충족될 때 우리는 상류 계층 사람들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는 철학과 도덕성을 갖춘 진정한 상류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되면서,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곧잘 인용된다고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상류계층으로 불리는 관료· 정치인·고급경영인·법조인·군장성·전문가(의사·교수·예술인·종교인 등) 집단의 사람들이 행하는 후안무치한 도덕적 부재(병력비리, 뇌물수수, 자녀들의 이중국적 등)를 질타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요구되는 시대에 이에 맞는 정신적 잣대는 무엇인가?

섬김의 가치관을 갖자

이 시대의 도덕적 해이는 필연적이다. 그 이유는 모든 지식과 기술이 모방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비밀이 있을 수 없다. 지나친 경쟁으로 성장 위주의 운영체제가 도덕적 무기력을 낳은 것이다. 여기서 모방할 수 없는 정신적 자산이 있다. 이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남보다 많은 부와 명예와 지위를 가졌지만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사회를 위해 봉사, 헌신, 기부 등을 생활화해야 하며, 남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지만 나약한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나만이 실천할 수 있는 가치관이다. 우리 모두가 이 사회를 유기적 존경의 사회로 만드는 것은 바로 나의 도덕적 가치관이다. 인간의 도덕적 가치관은 배움과 훈련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도덕적 정신의 가치관을 생각해 보자.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장 11절-12절) 이는 어떠한 형편에서든 군림하는 자가 아닌 헌신과 봉사 그리고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주어진 권리보다 자신에게 부여된 의무를 더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덕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와 사회의 이상향으로 꿈꾸어 왔다. 우리 사회에 흔히 떠드는 개혁이란 목소리도 스스로 나눔의 철학과 베풂의 미덕이 앞섰을 때 진심으로 실천되는 일이다. 이는 ‘섬김을 받으려면 먼저 섬겨야 하는’ 평범한 진리가 요구되는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시대에 이 사회의 ‘노블레스’들은 사회의 복지(Welfare)를 위하여 ‘오블리주’를 감당하여 베풀고 섬기는 일이 명예가 되는 사회를 만들어 진정한 존경이 있는 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유산을 후대에 물려 줄 수 있는 가치관을 확립시켜 나가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말이 부정적으로 사용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마조성결교회 담임목사·
본지 편집위원·성결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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