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면은 양곡리, 누산리, 석모리, 마산리, 구래리, 대포리, 학운리, 유현리, 흥신리 등 총 9개의 법정리, 42개의 행정리, 113개 반으로 구성돼있는데 각 행정리마다 자연부락 지명에 대한 유래가 있어 알아본다.


1. 양곡리 (陽谷里)
양곡리는 옛날에 양릉리와 고단리(古丹里, 고다니) 곡촌(谷村) 오라리(吾羅里) 일부를 1914년의 행정구역 재편시에 양릉리라는 陽자와 곡촌이라는 谷자를 따서 양곡리(陽谷里)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양곡리 시장은 경기 서부지방에서는 큰 시장으로 유명했으며 장날은 매 1일, 6일로 되어있다.
▲양곡1구 (오라니장터)
이 마을은 ‘오라리’가 ‘오라니’로 변한 것으로 보이며, 보통 ‘오라니장터’로 부르는데 지금은 ‘양곡시장’이라 부른다. 양곡에는 양촌면사무소와 양곡초등학교가 있다.
▲고단리 (古丹里, 고단이)
조선조에도 고단리(古丹里)라 불려 왔으나 ‘고단’이라는 유래가 확실히 전하여 오지 않고 있다. 삼국시대 지명에 ‘呑’, ‘旦’은 ‘谷’, ‘村’의 뜻으로 쓰였다. 이를 참고하면 ‘古丹’은 ‘古旦’으로 보고 ‘옛 고을’ 정도의 뜻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인명, 지명을 한자로 고칠 때, ‘흰돌’은 ‘白石’으로 의미를 따라 바꾼 것은 다행이었으나, 의미를 살리지 못하고 음만을 한자로 바꾼 경우도 있다.
▲골마을 (谷村)
이 마을은 골짜기에 있다 하여 ‘골마을(谷村, 골말)’이라 부른다.
▲양릉 (陽陵)
옛날에 아기능이 있었다 하여 ‘양릉’이라 불러왔는데 ‘능안말’이라는 마을도 있다. 그리고 그 능으로 인하여 ‘양릉면’도 있었으니 그리 작은 능은 아닌 것 같다. 양릉리 옆으로 한강으로 통하는 큰 개가 있어서 포구가 있었다 한다. 그리고 양릉에 옛성(토성)이 있다 고 전해지는데 성지는 찾아볼 수 없다.
▲양곡2구 (陽谷二區)
양곡시장마을에서 분리된 마을로서 양곡시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2. 누산리 (縷山里)
옛날에 누리(樓里), 온산(溫山), 발산(鉢山), 3개리였으나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 때에 ‘樓’자와 ‘山’자를 합하여 ‘누산리(縷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산 (元山)
이 마을은 48번 국도변에서 양곡으로 진입하는 삼거리로서 대개 ‘원산’ 또는 ‘누산삼거리’라 부르고 있다. 조선조의 행정구역표를 보면 ‘온산리(溫山里)’라 되어 있는데 현재는 ‘원산(元山)’으로 부른다.
▲누촌 (樓村, 다락마을)
한강변에 위치해 있는데 다락과 같이 매달려 있다 하여 ‘누촌(樓村)’이라 칭하는데 현재는 한강변에 제방이 완벽하게 축조되어 있다.
▲구발산 (鉢山)
보통 ‘바라미’라고 부르는데 ‘바리때’[鉢]의 ‘바리’와 ‘뫼’가 결합한 ‘바리뫼’가
‘바리미’로 변한 것. 산의 형세가 그릇 모양을 닮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해평 (蟹坪, 게들이)
마을 앞 논에 옛부터 게가 많이 서식하여 게를 많이 잡는 곳이라 하여 ‘게들이’라 불린다. 한자 ‘蟹坪’은 ‘게들’의 의미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3. 석모리 (席毛里)
옛날의 석산리(席山利), 모산리(毛山里), 질곶리(蛭串里)를 합하여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 때, ‘席山里’라는 ‘席’자와 ‘毛山里’라는 ‘毛’자를 따서 ‘席毛里’라 칭한다.
▲석산 (席山, 돌미)
돗자리의 고어는 ‘돗’이었다. ‘돗뫼’가 음이 변하여 ‘돌뫼’, ‘돌미’로 부르게 되었
다. 마을 형세가 돗자리를 펴놓은 듯 편편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반월 (半月)
부락의 산 형세가 반달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질곶 (蛭串)
마을 뒤 산형세가 거머리와 같이 길게 뻗어나갔다 하여 ‘거머리질(蛭)’자를 써서 ‘질곶(蛭串)’이라 한다.
▲모산 (毛山)
지형이 ‘毛’자 형으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모산(毛山)’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지난 (芝蘭)
운요산(雲腰山) 아래에 있는 마을로서 지형이 ‘이끼야(也)’자와 비슷하다하여 ‘지야’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으나, 운요산에 난초가 많이 자란다 하여 이 마을을 ‘지난(芝蘭)’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주택마을
새로이 연립주택을 건설하여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4. 마산리 (麻山里, 마리미)
마산리는 옛 상곶면(桑串面), 대마산리(大麻山里, 麻리峰里라고도 불렀음)와 양릉면의 소마산리(小麻山里)를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두 개 이를 합하여 ‘마산리(麻山里)’라 칭하게 되었다. 마산(麻山)의 유래는, 옛날에 의류의 재료로 대부분 삼베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마재배가 번창하여, 이 마을에서도 삼[麻] 재배를 많이 한 관계로 마산리(麻山里)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마리미’의 ‘미’은 ‘뫼’가 변한 것.
▲소마산 (小麻山), 작은 마리미)
이 마을은 ‘작은 마리미’라는 뜻으로 ‘소마산’이라 한다.
▲안말 (內村)
옛날 소마산리인데 마을 중에서 제일 크고, 또 안마을이라는 뜻.
▲대마산 (大麻山, 큰마리미)
옛날 상곶면의 대마산리(大麻山里)로서 마산리 중에 먼저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옛날에는 마리봉리(麻리峰里)라고도 불러온 것으로 전한다. 이 마을은 가현산북록(歌鉉山北麓)에 위치해있다.

5. 구래리 (九來里)
구래리는 원래 상곶면의 구래동 상곶리와 양릉면의 오라니 일부를 병합하여 구래리라 부르게 된 것인데, 현재의 행정리는 구래동, 구지, 가오대, 오라니, 성산 등 5개리로 분리되어 있다.
▲구래동 (九來洞)
옛날에 궁중의 내시부(內侍府)에서 근무하던 내관 또는 환관들이 퇴직하여 내려와서 살던 마을인데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하여 ‘아홉 번이라도 다시 와서 살고싶은 마을’이라 하여 ‘구래동(九來洞)’이라 불러왔다고 전한다.
▲구지 (九芝)
이 마을 뒷산에 율사라는 절이 있어서 지금도 ‘밤절굴’이라 부르는데 이 절이 이름난 절이 되어 시인들이 모여 작시(作詩)를 하였는데 구지(九芝)라는 시구절(詩句節)을 많이 썼다 하여 이 마을이름을 ‘구지(九芝)’라 불러 왔다 한다.
▲가오대 (嘉塢垈)
가현산맥(歌鉉山脈)에서 구래동을 거쳐 궂지로부터 내려와 꾸불꾸불한 토성곽(土城郭)과 같이 생기고 마을터가 아름답다고 하여 가오대(嘉塢垈)라 부른다.
▲오라리 (吾羅里, 오라니)
원래 양릉면(陽陵面) 오라리(吾羅里)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조정 때에 구래리로 편입된 마을이다. 그러나 전하여 오는 말에 의하면 ‘오아리(烏亞里)’ 또는 ‘월안리(月案里)’라 불리웠다고 한다.
▲성산
오라리에서 분리된 마을로 성산아파트가 건립되어 생긴 마을이라 하여 ‘성산아파트촌’이라 부른다.

6. 대포리 (大浦里)
원래 향모포(香毛浦), 황포(黃浦), 대포리(大浦里)와 검단면 금곡리 일부를 합하여 대포리로 부르게 된 것이며, 행정리로는 향동(香洞), 황포(黃浦) 등 2개리로 되어 있다.
▲향동 (香洞)
옛날에 마을 아래에 포구가 있어서 ‘향모포(香毛浦)’라 불리다가 행정구역 병합시에 금곡리 일부를 합하였다. 옛적의 포구가 없어졌으므로 ‘포(浦)’자를 빼고 ‘향동(香洞)’이라 부르게 된 것인데, 옛날에는 마을에 향나무가 많이 있어서 ‘향나무골’이라 불리던 것을 ‘향동’이라 부르게 됐다.
▲황포 (黃浦)
원래 대포리와 황포리의 두 개의 포구마을이 있었는데, 현재 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선생의 대포서원(大浦書院)이 있는 곳이 대포리이며, 그 아래 마을이 황포인데 이 곳에는 옛날에 포구가 있어 ‘황개울’이라고도 했던 곳이다.

7. 학운리 (鶴雲里)
옛날의 삭시리(朔是里), 학현리(鶴峴里), 고음달리(古音達里) 등 3개리를 합하여 ‘학운리’라 하였는데, 뒷산의 형국이 ‘학이 구름을 타고 나는 모양’이라 하여 ‘학운산’이라 했기 때문에 이름도 학운리(鶴雲里)라 부르게 되었다.
▲고음달 (古音達, 곰딸)
옛날에 마을 뒤에 백운사(白雲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밤이면 가끔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하여 ‘고음달(古音達)’이라 불렀다고 한다.
▲학현 (鶴鉉, 하우개)
마을의 고개가 학의 목처럼 생겼는데 그 곳에 작은 고개가 있어서 ‘학현(鶴鉉)’이라 부른다. 학고개가 음이 변하여 하오개, 하우개가 된 것이다.
▲삭시 (朔是)
세종조의 명시인 삭녕최씨(朔寧崔氏) 최항(崔恒)이 은퇴하여 이 마을에 와서 처음 살게 되어 삭녕인(朔寧人)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삭시’라 부르게 된 것인데, 마을 형국이 ‘삭녕의 최씨 마을과 같다’하여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현재도 최씨의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싸렴
학운리 앞 개펄에는 섬이 셋이 있어서 삼도(三島)라 불리는 섬 중의 하나인 싸렴이다. 8·15광복 직후에 간척사업으로 이 섬이 육지와 연결되었으며 6·25전쟁 이후에 피난민들이 입주하여 정착하기 시작하여 3개 섬에 3개의 행정리가 신설된 부락이다. ‘쌀섬’이 변하여 ‘싸렴’이 된 듯하다.
▲삼도 2구 (三島二區)
이 부락은 세 섬 중에 맨 끝의 섬이다. 이 섬 근처에는 염전이 있었다.
▲첫섬
세 섬 중에 첫 섬이기 때문에 ‘첫섬마을’이라 부르고 있다.

8. 유현리 (柳峴里)
옛날의 사류지리(四柳芝里), 서현리(棲峴里)를 1914년에 四柳芝里의 ‘柳’자와 柳峴里의 ‘峴’자를 따서 ‘유현리(柳峴里)’라 부른다.
▲사류지 (四柳芝)
이 마을 뒤에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네 귀에 버드나무 네 그루가 서 있어서 ‘사류지(四柳芝)’라 불렸다고 하는데, ‘지(芝)’자를 붙인 것으로 보아 뜻을 달리 해석한다면 ‘버드나무버섯’이라는 뜻도 된다 하겠다.
▲서현 (棲鉉, 괸돌개)
서현 부락 앞에 큰 개가 있어서 ‘나루세기’라는 곳에 나룻배를 이용하다가 괸돌다리를 놓고 이용하게 되어 ‘괸돌개’라 하는데, 마을 뒤에 산림이 우거진 고개를 왕래하던 사람들이 많이 쉬어갔다 하여 ‘서현(棲鉉)’이라 부른다고 한다. 한편 ‘서오(棲烏)재’라고도 불렸다고 하는데 이것은 까마귀가 쉬어 간다는 뜻이다.

9. 흥신리 (興新里)
옛날의 신촌리(新村里), 불당동(佛堂洞), 배올리(培兀里)와 가잠리(佳岑里) 일부를 1914년 개편때, 배올리 내에 흥양(興陽)이란 마을이 있어서 ‘興陽’이라는 ‘興’자와 ‘新村里’라는 ‘新’자를 결합하여 ‘興新里’라 부르게 된 것이다.
▲불당골 (佛堂)
옛날에 이 마을 산에 배암사라는 절, 불당이 있어서 ‘불당골’이라 불리워 왔다고 한다.
▲흥양 (興陽, 신촌, 배올)
신촌(新村), 배올(培兀), 흥양(興陽), 가잠리(佳岑里) 일부를 합한 이(里)로서 新村은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고, 배올(培兀)이라 함은 배올산(培兀山)이 있는데 그 산의 이름을 따라 ‘배올’이라 하던 것이 변하여 ‘배울’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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