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 명예교수

2022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주변을 온통 뒤덮고 있는 어두운 소식과 부정적인 환경을 넘어, 밝은 사실과 긍정적인 견해로 희망의 시간을 만들어 보기를 바란다. 한 신문의 신년 사설이 확 다가온다. “이젠 선진국이다. 국민소득 5만 달러 앞당기자” 이 제안에 동의하면서 그 성공을 위해 바탕이 될 세 가지 덕목을 덧붙인다.

돈만 많다고 졸부가 양반(신사)이 될 수 없듯이, 국민 각자에게 소득 5만 달러가 주어진다고 우리나라가 졸지에 선진국 반열에 드는 것은 아니다. 걸맞은 가치관의 구비가 필요하다. 

첫째, 믿음의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나라는 불신으로 뒤덮여 있다. 근본적으로 서로의 말을 믿지 않는다. 불신의 만연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모호하게 만들고 정직을 불필요한 고집으로 오해하는 꼴불견의 사회를 초래했다. 이제 소크라테스처럼 독배를 마시더라도 진리와 정의의 존재를 용감하게 말하고 실천하는 정치지도자들을 찾아 신뢰를 보내자.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하는 기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자. 진심으로 고난을 감내하는 종교인에게 존경심을 가지자. 아이들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따끔한 질책을 겸비하는 교육자들에게 자녀들을 맡기자. 무엇보다 대한민국을 선진국이 되기까지 헌신한 분들에게 정쟁을 그치고 경의를 표하자. 나라의 발전은 자기 신뢰를 동반하면서부터 가속이 일어난다. 새로운 눈으로 믿음을 세우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둘째, 소망의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절망으로 뒤덮인 나라가 바람 앞에 타는 등불과 같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지성인들이 많다. 안보가 불안하고 허둥대는 국정의 각종 난맥상이 국제사회의 미아가 되는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이 넘친다. 이런 환경에서 결혼이나 출산은 자연스러운 개념으로 자리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K방역은 영미보다 못하지 않고, 경제지표는 느낌과는 다르게 괜찮은 것으로 국제 전문경제학자들은 보도하고, 세계적 불황 속에서도 한국의 기업은 매출과 이익지표에서 우월하다고 평가되고, 한국의 문화와 전문인의 활동과 영향력은 날로 더 커진다는 사실은 객관적 모습이다.

그 뿐만 아니라 빡빡한 서민의 생활고에 반해 국민의 구매력이나 동력은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열등하지 않음이 소비를 통한 국내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힘들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열두 척의 배가 있다.’라는 이순신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 잠재력의 상징으로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소망을 못 가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셋째, 사랑의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 증오와 시기로 가득한 사회가 우리의 현실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여야 정치인들의 일구어 놓은 사회는 구정물 자체이다. 이대로 대선을 치르고 나면 도대체 한 나라로 존재할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이전투구가 끝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책임 없는 흑색선전으로 정책을 실종시키고 험담과 뒤를 캐는 모의로 날밤을 새운다. 

그러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헌신 하느라 찬 겨울을 달구는 봉사자들이 늘었다고 한다. 수입은 줄었어도 기부는 더 늘었다는 복음은 아직도 이웃과 사회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고대 철학자 헤라이클레토스는 말한다. “사랑은 구성요소를 모아 사물의 존재를 생성하고, 미움은 그것들을 흩어 존재를 소멸시킨다.” 사회를 (제대로) 만들고, 사람을 만들고,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된 사람은 모임을 통해 공동체를 건설하고, 못된 사람은 모임을 통해 분열을 이룬다. 갈라치기와 적대화는 공동체의 숨은 적이다. 새해에는 화합을 위해 그 원동력인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활동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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