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섯 번째 <빨간 부채 파란 부채>

박수영 책찌짝찌 독서모임 회원

색깔이 주는 느낌이 있다. 이야기 속에서 빨간 부채는 부채질을 받는 사람의 코를 길게 만들어 주고 파란 부채는 다시 짧게 만들어 주는 요술 부채다.

빨간색은 북돋아 주고 열을 올리는 색이라면 파란색은 진정시켜 주는 색이다. 그래서 영어의 ‘Blue’는 진정이 지나쳐 ‘우울한’이라는 뜻도 있다. 그리고 핫플레이스, 핫템 등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에는 ‘Hot’이라는 접두사가 붙기도 한다.

얼마 전 20년지기 친구와 아주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나의 안부를 묻길래 난 요즘 댄스배틀 프로그램을 보고 처음으로 입덕이라는 것도 해 봤다며 서태지와 아이들, 에이치오티도 피해 간 덕질을 이제와서 하고 있다고 호들갑스럽게 내 안부를 전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평소처럼 허허 웃었지만 어째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물었다.

“넌 요즘 뭐가 재미있니?” 하니

“난 요즘 예전처럼 막 재미 있는게 없어” 그런다.

“그래...그런 날도 있지...요즘 베이지색이야?” 하고 물으니 친구는 내 말의 의미를 알아 듣고.

 “그레이야” 라고 대답했다.

문득 예전 변비약 광고에서 중년 여성배우의 말투와 똑같이 “그레이색이야!!”라고 하며 한바탕 웃었다.

웃음 끝에 나는 “그래...어떻게 매일 핑크핑크할 수 있겠어...그레이도 괜찮다~ 겨울 기본 컬러잖니...더 진해질 것 같으면 전화해. 무지개색 비타민 하나 사 줄게” 하며 컬러로만 이야기 하다 통화를 마쳤다.

단어가 글자로만 있고 단어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다면 우리의 대화는 거의 외계어 수준일 것이다. 인간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의 파장에 의한 색깔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색과 관련한 많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굳이 과학적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색깔의 옷을 입거나 악세사리 등을 한다.

그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색을 기가 막히게 찾는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다른 사람들의 기분 컬러는 뭘까,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컬러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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