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형
안동대학교

(철학)명예교수

나는 지난 1년을 드론에 빠져 살았다. 20대 초반부터 이론 중의 이론인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며 평생을 산 사람이 눈에 보이는 기체를 손가락으로 조종하는 일은 처음 맛보는 당황스러운 실기(實技)였다. 게다가 70이 다 된 나이는 이런 실습에 부자연스러움을 더했다. 그래서 두 달 정도이면 통과할 기초 과정을 거의 매일 종일토록 했는데도 자격시험에는 번번이 낙방하였다. 세 번의 시도 끝에 넉 달 만에 가까스로 취득하였다. 20시간의 비행 끝에 따는 자격을 7, 80시간을 거치고 겨우 따낸 것이다.

실패의 여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80시간의 추가 비행 기록으로 교관과정에 진입하여 연수를 받고는 1차 시험에서 역시 낙방, 두 달 뒤 추가신청으로 간당간당한 턱걸이 합격을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비행은 줄기차게 이어졌고, 다른 사람보다 3, 4배의 비행으로 교관들의 눈치를 봐야 했으나, 비행욕이 이를 간과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실기평가자 과정에 등록하여 또 비행시간을 50시간 추가하였는데, 그간의 비행은 나를 드론 비행광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 자신의 비행이 눈에 들어오고, 동료들의 비행에서는 눈길이 멀어졌다. 내가 조종사라는 것을 의식하면서 비로소 비행 자체가 즐겁고 몰입되는 경험을 하면서, 10월 말의 실기평가자 시험을 응시했다. 10월 첫째, 둘째 주에 교육원 젊은 선배 두 명의 1차에 합격은 나를 설레게 했다. 날씨까지 화창했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5개의 과정 중 2개만 실격이고 심사위원 3명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던 점이 격려되었다. 곧바로 11월에 재입과 등록을 하고 12월 17일로 시험 일자에 응시하였다. 내심, ‘12월로 자격증 취득은 종료한다’라는 다짐을 하며 꿈에 부풀었다. ‘1년 만에 그것도 최고위 자격증까지 취득하다니!’ 그런데 2주 전 일기예보는 당일의 날씨가 금년도 최악임을 보여주었다. 설마 했던 날씨는 예보대로 나타났고, 자신의 다짐과 주위의 바람과는 반대로 실제 비행은 내 실력이 이런 날씨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음을 단호하게 증명했다. 아직도 내 비행은 주어지는 조건에 참가하는 수준이지, 바깥 조건을 극복하여 목표에 도달하는 정도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앞이 캄캄하였다. 모든 것이 무너진 느낌이었다. 아직도 이 정도인가? 이런 비행을 지속해야 하나?

하룻밤의 반성 끝에 갑자기 중세를 지킨 로마가 생각이 났다. 중세의 중심은 로마제국이다. 로마문화의 성립은 알고 보면 통합적 인간공동체를 구현하는 기독교를 통해 완성되었다. AD 4세기쯤에 시작된 중세는 철학적으로는 교부철학과 스콜라철학을 통해 정신적인 토대를 놓고, 논리학, 법학, 의학, 신학 등을 체계화하는 한편, 원로원을 통한 정치와 군사적 조직과 훈련을 도입한 부국강병의 틀을 완벽하게 갖춤으로써 천 년을 유지한다. 아마도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나 문명도 이런 일체적이고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년 왕국을 가져 본 일이 없다. 특히 그 영향이 계속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이를 근간으로 합리적이고도 조직적인 문화의 틀을 창의적으로 조합해 갈 문화란 없을 것이다. 서구의 열강들이 부지불식간 중세를 표방하고 있음을 그들의 공통적 상징 동물인 독수리가 말해준다.

서구문화라고 약칭되고 선진문화라고 특칭되고 자유민주주의라고 통칭되고 공화정이라고 표방되는 로마문화는 미래에도 세상사를 선도할 것이다. 그러기에 로마문화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 선진으로 가는 길이다. 첫 번째 전제가 그것은 하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개별화하면, 우리 삶의 각 부분은 어느 것 하나 단번에 혹은 특정 시간에 그 활동을 완성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선진국 진입을 세계기구로부터 인정받았다. 이 말은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가 선진화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자체의 실패를 쌓아가며 성공의 새 길을 나서야 한다. 어느 교수의 지적대로, 선진국은 선도국 a leading nation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는 국가 a first mover nation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부족한 드론 실기 여행도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첫발을 내딛는 국가의 활력을 보태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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