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

김포중앙교회

원로목사

 

2006년 추석 명절날, 우리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 되시는 증조할아버지 형제분의 묘소가 있는 월곶면 소창굴에 소재한 공동묘지에 갔더니 묘지 앞에 ‘이곳이 개발되니 속히 이장하라’는 표지가 있어 명절이 지나 시청 담당자를 찾아 갔더니 한 주간 안에 정리하면 이장 비용과 납골묘를 김포시에서 지원해 주겠다는 것이다. 곧바로 가정의 어른들과 의논하여 다음 날 이른 새벽에 파묘하여 화장한 두 분의 유골을 하성면 양택리에 새로 조성된 납골공원묘지에 안치했으니 적은 비용으로 큰일을 잘 처리해서 감사했다. 장로이신 막내삼촌과 나는 우리 가정의 믿음의 조상이신 두 분의 유골을 기도하며 정중한 마음으로 모셨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막내 삼촌께서 “아무래도 양택리 납골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 우리 직계를 위한 납골묘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시면서 “내가 재원을 마련하겠으니 내가 생존해 있는 동안에 강화에 있는 파라다이스 추모원에 준비하여 선산에 계신 분들도 파묘하여 옮기도록 하자”라고 하신다. 사실 선산 벌초 때마다 인원 동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 지역이 도로부지로 책정되어 있어 언젠가는 옮겨야 되는 실정이다. 해서 파라다이스에 묘지를 매입(2011년3월14일)하여 장손인 내 명의로 등록을 했으니 재원을 마련해 주신 막내삼촌께 감사드리며 선산에 있는 묘 11구도 파묘하여(2017년7월11일) 화장해서 양택리 추모공원과 강화 파라다이스 추모원에 가계별로 나누어 안치하면서 증조할아버지 두 분 중 동생이 되시는 친할아버지는 양택리에 있는 큰댁 직계로, 큰 할아버지는 강화 파라다이스에 안치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제 우리 가정의 믿음의 뿌리를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우리 증조부 형제분 중에 형 되시는 분의 호적명은 ‘용헌(容憲)’이요 본명은 ‘덕배(德培)’(1846년9월15일生-1914년4월13일卒)시며, 동생 되시는 우리 증조부의 호적명은 ‘용연(容連)’이요 본명은 ‘덕삼(德三)’(1859년1월19일生-1919년6월1일卒)이시다. 이 두 분께서 한국 초대 장로교 선교사이신 미국 언더우드 목사에게 전도를 받아 예수를 영접하셔서 우리 가정의 믿음의 뿌리가 되셨으니, 내가 어렸을 때 이웃집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두 분이 겸상을 하여 식사를 하시다가 언덕길에 행인이 지나간다고 하면 잡수시던 수저를 놓고 누가 먼저 전도할 것이냐 하면서 뛰어나가 전도를 하실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형에게는 후손이 없어 동생의 두 아들 첫째 ‘정원(正遠)’(1892년11월9일生-1952년9월12일卒)과 둘째 ‘선원(善遠)’(1899년7월10일生-1962년6월30일卒) 중에 큰 아들(정원)이 큰 집으로 양자로 가시게 되었으니 동생인 우리 조부님께서 우리 증조부님의 맏이가 되었다.

첫째 되시는 정원 할아버지는 슬하에 3남 2녀를 두셨으며 2남과 3남의 자녀들만이 천주교로 개종하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둘째 되시는 우리 할아버지는 슬하에 4남 2녀를 두셨으니 첫째는 나의 부친이신 ‘천희(天喜)’(1920년8월22일生-1975년1월23일卒)요, 둘째는 ‘영희(永喜)’(1924년7월14일生-2008년1월28일卒), 셋째는 ‘상호(商鎬)’(1927년7월11일生-1986년12월15일卒), 넷째는 큰 딸 ‘영순’(1931년生.권사)과 다섯째는 둘째 딸 ‘영애’(1934년生.권사) 여섯째는 ‘상구(商九)’(1937년2월6일生.장로)이시다.

장남이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김수녀(金壽女) 권사와의 사이에 5남 2녀를 두셨으니 맏이인 나를 비롯하여 ‘동준’(장로) ‘경숙’(권사) ‘기준’(집사) ‘은숙’(권사) ‘대준’(목사) ‘인준’(집사)으로 7남매 중 4째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6남매가 모두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사명을 감당하고 있으니 우리 형제들 중에 목사2, 장로1, 권사3, 집사2 이며, 5대를 내려오면서 현재 증조부님의 후손 가정에 목사2, 장로2, 권사7, 집사8인이 있으니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장손인 나는 도서관학과를 졸업한 ‘최승희’(崔承喜)와 결혼하여 남매를 낳았으니, 첫째 딸 ‘인’(仁)이는 백제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을 다녀와 서울장신대학교 예배찬양사역대학원을 나온 후 ‘김현민’(金賢民)과 결혼하여 다시 미국으로 가서 10여 년 간 훈련을 받고 돌아와 부부가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둘째 아들 ‘주석’(柱碩)이는 숭실대학교 법대대학원을 졸업하고 외삼촌 사업을 맡아 감당하고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중학교 교사로 봉직하는 ‘박상미’(朴相美)와의 슬하에 딸 ‘세아’를 두어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맡겨진 일들을 열심히 감당하며 행복하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할아버지 후손들의 신앙이 이처럼 든든하게 이어져가는 것은 아마도 아버지 외가의 뿌리 깊은 신앙의 힘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우리 할머니(金善愛)는 대곶면에 소재한 송마리교회 창립 멤버이신 김범현 안수집사의 장녀로 1918년에 송마리교회당에서 담임목사의 주례로 결혼을 하였으며, 송마리 광산김씨 가문은 송마리교회를 개척한 신실한 신앙의 가문이다.

성경에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딤후1:5)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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