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가 좋다 

 

이나명

 

나무와 나무 사이, 집과 집 사이, 너와 나 사이

사이가 좋다 사이가 투명하다

투명한 속으로 깊게 들이 쉬는 바람, 따뜻이 스며드는 햇빛

사이가 있어 너에게 손을 뻗고 포옹하고 사이가 좁아 숨이 막히면 다시

사이를 만든다 사이가 있어 네가 있고 내가 있다

사이가 있어 전화를 하고 문자를 띄우고 이 메일을 보낸다

그 사이에 푸른 강물이 흐르고 회오리바람이 불고 찬 빗줄기가 내린다

사이가 있어 너는 내게로 오고 나는 네게로 간다

사이가 있어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가고 사이가 있어 다른 별을 향해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사이가

있어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을 바라본다

별과 별 사이에 꽉 차 있는 어둠을 바라본다

어둠과 어둠 사이에 내가 있다 깜깜한 어둠 사이에서 내가

꿈틀거린다 살아 있다

 

시 감상

사이가 있다는 것은 공간이 있다는 말이다. 공간이 있다는 말은 거를 것은 거르고 기댈 것은 기댈 수 있다는 말이다. 계절과 계절 사이, 온기와 온기 사이, 앎과 모름의 사이, 사이가 있어 너는 내게로 오고 나는 네게로 간다는 본문이 사이좋게 느껴진다. 사이가 줄어든다는 것은 나이가 든다는 말이다. 자문해보자. 우린 어제보다 사이가 늘었는지, 줄었는지. 사이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프로필

강원 원주, 현대 시학 등단, 시집 <중심이 푸르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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